일상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하듯 오늘을!

오늘 나의 마음은 '서핑해'

by 김나현 작가



'와, 오늘 파도 진짜 좋다!'

어느 봄날의 강릉 바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면서 이 파도가 얼마나 서핑하기 좋은 파도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변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함께 오늘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어느 타이밍에 패들을 더 강하게 해야 할지, 어떤 느낌일 때 팝업을 해야 할지, 팝업 후에 자세는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머릿속에서 저 파도 위에 내 몸을 띄웠다.

"엄마! 이거 봐. 조개껍질! 엄청 예쁘지?"

"응! 이렇게 하면 꼭 인어공주 같지 않아?"

파도에서 시선을 옮겨 나를 보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만 볼 수 있을 아이의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예전엔 동해 바다에 오면, 한 번은 파도를 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어떻게 하면 남편의 마음을 사서 바다에 풍덩 내 몸을 담글 수 있을지, 바삐 시나리오를 짜 보고는 했다. 그런데 이 날은 타기 좋은 파도를 보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늘의 파도는 정말 타기 좋은 파도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파도였다. 여유가 허락하는 어느 날, 이처럼 좋은 파도를 또 만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전에는 서핑을 할 수 있는데도 미룬다는 생각에 갑갑해 괴로웠다면, 이제는 내가 즐겁게 탈 수 있는 파도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을 마음 편하게 두둥실 띄울 수 있는 그 시간을 말이다.



융통성 없는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가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변화였다. 결혼하기 전의 삶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오는 삶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지식을 쌓았고, 쌓은 지식으로 원하는 성적을 받고, 자격증을 따고, 직장을 얻었다. 가족을 일구고 엄마와 아내가 된 다음에도 범생이의 자세로 참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내가 소진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나 같이 이기적인 사람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 이후 바로 엄마가 되었고, 어느새 '엄마'와 '아내'의 경력이 10년이 되었다. 결혼 10년 차, 바다에서 오롯이 내 몸 하나를 보드 위에 띄우는데 애쓴 시간 동안, 엄마와 아내가 되는 삶은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바다와 파도는 무작정 노력하기보다 요령 있게 노력하는 지혜를 선물해 주었다.

'바라보아야 할 파도'인지 '내가 몸을 풍덩 신나게 담글 파도'인지 파악하고 파도를 타는 여유를 배웠고, 패들링 하듯이 힘을 주어야 할 일과 힘을 뺄 일을 구분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요령을 배웠다.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파도를 즐기면 된다는 깨달음도 큰 선물이었다.



글을 쓰면서 오롯이 혼자 발리를 느끼고 만끽한 시간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그곳으로 한번 더 여행을 떠났다. 발리의 일상과, 파도 위에서 느꼈던 절망과 행복을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어 곱씹는 일은, 꼭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일 같았다. 발리에서의 시간을 꼭꼭 씹어 음미하면 할수록, 긴 겨울을 겪어낸 봄나물처럼 쓴 맛 뒤에 단 맛이 떠올랐다. 쓴 맛이라 여겼던 발리 여행에서의 좌절과 실망스러움 뒤에는, 삶의 깊은 풍미를 더하는 단맛이 있었다. 여행의 과정을 글로 쓰면서 쓴 맛과 단 맛이 한데 어우러졌다.



발리 여행에서 일상에 지치고 힘든 마음을 감싸줄 조각보를 만들고 싶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그런 천 조각은 없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꽁꽁 싸매어 가리고 막아내는 대신, 드러내고 펼쳐 볕을 보이고, 온몸으로 지혜롭게 겪어낼 때, 당면한 삶 속에서 '자유'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의 새로운 꿈은 바다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때로는 나의 꿈을 향해 높게 솟아오를 줄 알고, 때로는 잔잔하고 가볍게 흔들거릴 줄 아는 삶. 계절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때'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듯, 아내와 엄마로의 역할에 저항하지 않는 삶.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낼 줄 알며, 누군가를 띄워 멀리 보내기도 하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되기도 하는 삶. 그런 바다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일상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하듯 오늘을!
그렇게 자유롭게.
오늘, 나의 마음은 서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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