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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을 하면 앉을 공간이 충분히 나올 것이다.

by 글하루

사랑은 공간의 문제와 무관해 보이지만 결국 공간에 얽힌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랑의 거리이기도 하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람과 닿아 있어도 너무 멀다.

그리고 너무 멀리 있어도 항상 가깝게 있다.

그 거리 사이에 무엇이 자리 잡는지에 따라 사랑은 시작되기도 하고 끝나기도 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공간이 있다면, 그 공간은 물리적인 크기와 상관없이 관계의 크기를 품는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앉을자리를 찾는 여정이기도 한다.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 생텍쥐베리 -


어느 날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테이블은 좁았고, 의자는 단 두 개뿐이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고 시선은 광활한 대지보다 넓어 보였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두 잔의 커피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로 얽힌 두 손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었다.

공간은 부족해 보였지만 오히려 두 사람에게 너무나 넓어 보였다.

부족한 공간은 사랑을 채우기에 충분히 여유로웠다.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사랑을 하면 앉을 공간이 충분히 나올 것이다.


사랑은 공간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 마음은 세상의 어떤 좁은 틈에서도 넉넉한 자리를 찾아준다.

내 자리를 내어주고도 나는 좁지 않고, 내가 불편한 자리에 있어도 그 사람의 자리가 조금이라도 편하다면 나는 그곳이 소파보다 안락하다.

구석자리가 그들의 우주가 되고, 자그마한 벤치가 하나의 세계가 된다.

중요한 건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그 공간을 채우는 마음이다.


"사랑은 우리가 있는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불꽃이다."

- 파블로 네루다 -


사랑은 부족함 속에서 피어난다.

빈틈과 허기를 느낄 때, 그 사이로 스며드는 감정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 이상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디든 충분해진다.

사랑은 서로의 마음 안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완성된다.

서로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함께 숨을 고르게 된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시간을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쌓여 사랑은 더욱 단단해진다.


"사람들은 공간을 나눠 쓰지만, 사랑은 마음을 나눠 가진다."

- 누군가의 말 -


어느새 카페의 연인은 자리를 떠났고 어쩐지 내 안에는 그 여운이 남는다.

빈 공간 속에 여전히 사랑은 둥둥 떠 있다.

잠깐 드는 생각의 순간.

사랑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영혼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지 않을까.

사랑을 하는 순간 어디든 둘이 앉을 공간이 충분히 나올 것이라는 것을.

사랑할수록 좁은 자리가 반갑고, 보이지 않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마음일 것이다.


사랑을 하면 어디든 앉을 공간이 충분히 나왔던 그때로 잠깐 돌아가 본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한다."

- 헤르만 헤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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