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우리가 느끼는 대로 흐르는 것일까?
"즐거운 시간은 날아가고, 지루한 시간은 기어간다."
어릴 적, 방학 마지막 날 밤이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침부터 종일 길게만 느껴졌던 하루가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책을 덮고 시계를 보면 어느새 자정. ‘아니, 분명 10분 전이 9시였는데?’
시간이란 녀석은 우리의 감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제멋대로 흐른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좋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찰나 같던 시간이, 병원 대기실에서는 모래시계 속 모래알 하나하나가 제각각 멈춘 듯 더디게 흐른다.
시간이란 건, 때로는 토끼처럼 빠르고, 거북이처럼 느리다. 어쩌면 시간은 물이 아닐까? 컵에 따르면 컵 모양이 되고, 호수에 고이면 잔잔히 퍼지듯, 우리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제 모습을 바꾸는 것이 시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시간을 화살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흐르는 강물이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풍선껌 같다고 생각한다. 늘어날 때는 쭉쭉 늘어나고, 끊길 때는 툭 끊겨 버린다.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풍선껌을 씹으며 놀이기구를 기다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2시간을 기다렸는데 놀이기구를 타는 시간은 겨우 2분 남짓. 그러고 보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준비하는 데는 한참이 걸리는데, 정작 좋은 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 지금을 놓치면 나중에 이 순간이 그리워질지도 모르잖아."
할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눈 감았다 뜨면 10년이야.” 그 말을 들을 땐 웃어넘겼지만, 문득 거울을 보다 보니 그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된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했던 나였는데, 어느새 어른이 되어, 다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결국,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스쳐간다. 한 스푼의 여유와 한 줌의 행복을 더해서 흐르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 속에서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할까?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허둥지둥 따라잡으려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만다. 반대로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멈춰 있으려 하면, 세상은 어느새 나를 지나쳐 버린다. 중요한 건, 시간을 의식하면서도 그 안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작은 순간을 음미하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시간의 흐름을 부정하지 않고,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아마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일상의 작은 변화를 주고, 새로운 취미를 시도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우리 편이 되어줄 수 있다.
"시간을 다스리는 자가 인생을 다스린다."
하지만 단순히 새로운 경험만으로 시간을 지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자세다. 시간을 원망하기보다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현재에 집중하고, 작은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가다 보면,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질 것이다. 오늘 하루도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새로운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보거나, 처음 보는 책을 읽거나, 예고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그렇게 시간을 길게 늘여 쓰다 보면, 인생도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잘 쓴다면, 시간은 우리를 잘 대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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