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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리 Nov 20. 2024

가을 기억

붉어져 붉어질 가슴으로 가을이 물들어 가.

그대 가을을 닮았었다.

빨갛게 사랑하다 빨갛게 떠나갔어.

서로 물들 때 혼자 머금고 떠났지.


물들 때부터 슬퍼지고 떨어질 때부터 외로웠다.

길 위에 낙엽을 피해서 걸었다.

벌써부터 걱정이다.

쌓이면 이젠 피할 수도 없는데


붉어져 언제부터 떨어지고

당신 오라 해도

가을만 돌아왔지.

물들어서 떠나서는

물들어 돌아왔어.


떨어지던 그날이 나에게로 떨어져

불현듯 말한 듯 아닌 듯 그런 듯

잠시 어긋나도 계절로 돌아오리

어긋난 가을 없이 또다시 물든 가슴

서성거리며 바쁘다 그리움아

 

벌써 물들었니

아직 물들어 있는데

가을 기억 겨운 기억

길 돌아갈 곳 없는 가을이

나를 막아선다.



- 가을 기억 -




봄은 자라고 여름은 무성하고 가을은 물들고 겨울은 쌓입니다.

물드는 가슴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 여운의 흔적이 물드는 것이겠지요.

풍성하던 푸름이 넘치면 가을로 넘어갑니다.

오르막길의 끝에서부터 이제는 내리막길

어렵게 사랑하고 쉽게 이별하듯 앙성 한 가지만 남기고 가벼워집니다.


먹을 듬뿍 묻힌 붓을 대면 한지에 스며들며 퍼지는 느낌.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점점 퍼지는 느낌.

가을 낙엽이 물들면 나를 대신해 붉게 물드는 느낌.

그 안에 있는 먹먹함이 가을을 지나치지 못하게 합니다.

한 글자씩 서성이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서성거림의 흔적이 여기에 물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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