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거 없어, 그냥 재밌게 살고 싶어

10/14~15 인생 노잼 시기

by 오뚝이



10/14 화요일


저녁을 먹고 걸으러 나갔다.



밤의 도림천의 물살은 낮보다 더 센 거 같다.

요즘 산책을 할 때는 일부러 음악을 듣지 않고 자연의 소리를 온전히 듣고, 느끼려고 한다. 도림천의 물살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호기심 많던 강아지. 자꾸 멈춰 서서 옆을 쳐다봤다.

나중에는 오리들을 보고 흥분해서 물에 들어갈 기세였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주인에게 허락받기도 뭐 하고 해서 그냥 눈으로 담았다.



산책을 하는데 내가 힘들 때마다 연락하는 호주에 사는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나의 최근 브런치 글을 보고 연락을 했나 보다.


바다(긴장) 상태는 어떠니?

라고 물어주는 언니가 고마웠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그러기 쉽지 않은 세상이니까. 더구나 수험 생활이 길어지면서 먼저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내가 예민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서 말 한마디라도 조심하려고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누군가 내게 먼저 연락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말이든 좋으니까…

언니의 연락을 받고 힘이 나서 조금 더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시험 신청이 내일부터 시작된다.

다섯 번째로 하는 원서접수.

내 인생 마지막 원서접수.

고사장을 3지망까지 쓸 수 있는데 부디 1지망에 쓴 학교로 배정되면 좋겠다. 작년에는 3지망 안에 쓴 학교들이 모조리 안되고 엉뚱한 곳에 배정 됐었다.


오늘 이상하게 아침부터 내내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다 했더니 화요일이다. 일주일 중 화요일이 제일 힘들다. 아마 일요일에 있었던 특강의 여파도 있는 거 같고. 피곤할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을 어떻게 그만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도대체 왜 이렇게 피곤한 거야? 나만 이렇게 피곤한 거 같아. 나만 이렇게 공부 진도가 팍팍 안 나가는 거 같아. 하는 생각을 멈추고 싶다.

생각 자체를 멈추고 싶다.


사실 나는 인생에서 크게 바라는 게 없는데.

그냥 재밌게 살고 싶은데.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먹고사니즘이 어느 정도 해결돼서 내 앞가림을 할 수 있고, 건강하고, 취미 하나 정도는 있고, 친구들이 있고, 엄마, 아빠가 건강하면 되는데. 이게 내가 바라는 전부인데.

그런데 괜히 눈만 높아서 내 능력, 내 주제에 맞지 않게 오르지 못할 산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눈은 언제부터 높아진 걸까?

꿈이 없었던 시절보다 꿈이 있는 지금이 더 힘든 이유는 뭘까. 예전에는 꿈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적당히 취업해서 적당히 사는 삶은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곧 죽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적당히 취업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고 적당히 사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흠… 내 인생 어떻게든 되겠지. 죽으란 법은 없으니.

사는 것은 힘들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좋으니까.




@어느 한 북카페


10/15 수요일


학원 애들이 정말 많이 예민한가 보다.

학원 전체 문자 공지가 왔는데 개별 클레임을 해서 감정싸움 문제가 생기고 있고 서로 클레임을 거는 경우도 있으니 절대 개별적,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말하지 말라는 내용이었고, 클레임 한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공부가 인간성을 상실시키는 걸까 아니면 애초에 인간성이 안 좋은 사람이 이 공부를 시작한 걸까.


학원 공지 문자를 보면 가끔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다 큰 성인들끼리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가 있더라.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들만 빽빽하고 좁은 공간에 모여있지, 시험은 매일 보지, 매일 등수와 성적이 게시되지, 몸은 힘들지, 팔팔한 청춘들이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서 책만 보고 있어야 되지… 거의 수녀님, 스님처럼 살아야 한다. 진짜. 리얼로. 그래서 사람이 유치하고 치사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고시촌, 학원이 아닌 곳에서 만났으면 학원 사람들 중 몇몇과는 좋은 친구가 됐을까?


확실한 건 요즘 학원의 분위기는 거의 전운마저 감돈다는 것이다.


@고시촌 아침 하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잔 거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에 이걸로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나갔는데 오래간만에 하늘이 맑다.

오늘 공부도 맑음이면 좋겠다.


@고시촌 아침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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