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멈출까 고민되는 순간

지금도 그림 동화책을 즐겨 그립니다. 그림이 너무 어려워 보여 꺼냈다가 다시 책장에 꽂기를 반복했던 동화책들을 이제 꺼내 한 페이지씩 그립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책을 구입해서 따라 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책의 일부를 따라 그릴 수도 있지만, 그림이 쉬운 동화책을 선정해 전체를 다 따라 그리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가 전체를 따라 그렸던 일곱 권의 책은 각각 다른 그림 실력을 키우는 연습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여섯 사람'은 개미 같은 병사들과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인내심을 가지는 법을,

'책 읽는 두꺼비’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진 재료로 최대한 표현하는 법을,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는 흐물거리는 붓펜과 친해지는 법을,

'이제 너랑 절교야'는 낯선 재료인 수채색연필 사용법을,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복잡한 그림에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그리는 법을,

'VERY FAR AWAY'는 똑같이 반복되는 주인공들과 배경에 정성을 들이는 법을,

'THE WAY TO THE ZOO'는 다양한 재료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려면 날마다 용기가 필요했죠. 빈 종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스케치북에 펜을 찍는 순간 어쩔 수 없습니다. 계속 그리는 거죠.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면 자꾸 지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주춤거리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초보는 오히려 펜으로 그리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저도 연필로 그리지 않고 펜이나 색연필로 바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면 지울 수 없으니 한발 내딛는 순간 일단 묵묵히 가야 합니다. 멈출까 고민되는 순간(항상 그 순간이 옵니다) 그냥 그립니다. 어쨌든 오늘의 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만두기로 합니다. 마음에 안 들고 미흡해도 날짜를 쓰고 사인을 합니다. 그림이 점점 더 나아 보입니다. 사진을 찍으면 더 나아 보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 해도 계속 그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멈출까 고민되는 순간, 그냥 계속 가는 것입니다. 매일 그리면 오늘의 그림이 좀 미흡해도 내일이 있으니까 안심이 됩니다. 


오늘의 글쓰기도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날과 같네요. 시작하기도 힘들고 마무리도 잘 안되지만 날짜를 쓰고 올립니다. 언젠가 다가올 ‘내일’은 더 잘 써지겠죠. 





이전 23화 위험을 감수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