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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사랑을 관찰하는가

<우리는 왜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가> 담론 - 1

by 김채미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미디어에서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와 분노와 피로가 가득 쌓여있었을 즈음, 종종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 한 공지가 올라왔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채널인 만큼, 이번에 구독자나 채널을 즐겨보는 사람들 몇 분을 만나 다양한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글이었다. 모임을 1주에 한 번씩 진행이 되었고, 적혀있는 글처럼 과학, 법, 사랑, 철학, 인문 등 다양한 주제가 적혀있었다. 모임은 모두 참가하여도 괜찮고, 참가하고 싶은 모임을 개별적으로 선택해도 된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주제를 쭉 훑어보다가 한 문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우리는 왜 사랑을 관찰하는 걸까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색을 잃어가고 있는 현재와 동떨어진 문장이었지만, 실제로 실현되고 있는 문장이기도 했다.


그러게. 사람들은 왜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쏟아지는 연애 프로그램에는 그렇게 목매어 바라보는 걸까. 호기심에 이끌러 모임을 신청했고, 약 3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었던 사랑에 대한 담론은 정말 재밌고 즐거웠다. 이번 글에서는 그날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사랑을 관찰하는 걸까, 진실한 사랑이란 존재하는 걸까, 존재한다면 그 사랑은 어디에 있는 걸까.




Q.1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보시나요?


첫 번째 질문은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보냐는 물음이었다. 물음을 듣자마자 나는 2월과 3월 초, 회사와 친구들 단톡방에 쏟아졌던 <나는 솔로> 영상 클립을 떠올렸다. 일명 '영식 씨의 괴랄한 행동'이 큰 화제가 되어 단톡방이 불이 나도록 메시지가 쏟아졌던 것이다. 회사 사람들은 '불쌍하면서도 소름 끼친다.'라며 점심시간에 연일 화제를 올렸고, 나도 사람들이 보여주는 영상 클립을 보며 만난 적도 없는 '영식 씨'의 괴랄한 행동에 대해 알게 됐다. 이렇게 연일 연애 프로그램이 화제에 오르고 있음에도 나는 정말 신기하게도 연애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 모임을 신청한 거였다. '사람들은 왜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것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렇게 열광하는지.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하면 열불 나고 답답해서 보기 싫어질 법도 한데, 왜 화를 내면서 끝까지 그들의 답답한 행동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인지.


우선 내가 왜 연애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를 타인보다 '나'에게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남이 무얼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크게 관심이 없다. 특히 일상에 대해서는. 타인이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궁금하지만, 그 외에 표면적인 것들. 어디로 이사를 했고, 오늘은 어떤 일정이 있고, 어떤 연애를 하고, 단순히 관찰에 그치는 정보는 관심이 없다. 단편적인 파편은 무의미한 정보에 불과하니까. 서로가 공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단순한 파편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만드는 정보들에 거리감이 들었다.


우리는 단순히 조각만으로 그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가? 영식 씨는 정말 불쌍하고 소름 끼치는 사람일까? 방송은 모두 연출이 들어가고 작위적이다. 프로그램 피디와 작가의 손에 조작된 프로그램을 우리가 진실이라고 받아들였을 때, 그곳에 출연했던 사람들은 방송 피디의 입맛에 맞는 탈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은 많았다. 사람들은 실제로 연애를 할 때 도움이 되어서 보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이 계속 화두로 꺼내니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이기에 본다고 했다. 나는 한 회사 동료가 부부끼리 같이 보면서 "나도 저래?"라고 물어보며 서로 행동에 대해서 되짚는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고다. 그러자 "그러다가 싸우기도 하죠."라며 한 분이 웃었다. 다른 분은 "나는 솔로는 그나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온 것 같아서 보는데 하트 시그널이나 솔로 지옥? 그건 너무 인플루언서들이 나와서 거리감 들어요. 실제 연애는 그렇게 멋지지 않잖아요."라며 프로그램마다 성향이 다르다고 짚었다.






Q.2 왜 사람들은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할까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연애를 '관찰'하는데 열광하는 걸까. 이에 대해 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하나는 지난 3년 간 강제성을 지녔던 환경적 요소를 꼽았다. 코로나 시대 이후 단절된 시간을 메우고 싶어서 연애 프로그램이 각광받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지나고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연애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온기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으니 이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끔, 보이게 만드는 연애 프로그램이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막 20살이 되었지만 3년 동안 대학 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나, 비대면으로 인해 관계망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던 20대 30대 청년들은 프로그램을 보며 만족을 느낀다.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상상해 온 연애를 대입해보기도 하고, 고독과 단절감을 해소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욕망과 환경적 요소에서 비롯된 심리적 요소이다. 우리는 비대면 속에서 아예 접촉하지 않고 살았던 게 아니다. 오히려 네트워크 속 관계망이 활성화되면서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온라인 속에서는 서로 알고 지내는 관계망이 더욱 확장되었다. 과거에 우리 지역에 사는 사람만 알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 미국과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스타나 유튜브와 같은 SNS를 통해 우리는 관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진정으로 나를 아는 사람을 누굴까? 오히려 과거보다 나를 아는 관계는 현저하게 사라졌다. 우리 고장에서 살고 내 삶의 역사를 모두 알았던 사람들이 아닌, 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심지어 꾸며진 나의 모습만 아는 사람들이 관계망에 들어선 것이다. 더욱이 가족들하고도 떨어져서 사는 초 핵가족 시대에 가족조차 나를 모른다. 내 주변이 온통 나를 모르는 사람 투성이라면 내 존재는 어디서 확인을 받아야 할까.


과잉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고독과 불안감은 더욱 극심해졌다. 그 때문에 우울증 환자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SNS 팔로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가는데 그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 아이러니함이 주는 고독감이 오히려 더 큰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연애 프로그램에 시선을 돌린다. 그 안에서 진정으로 관계를 맺고 진심을 주고받는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어쩌면 나도 저렇게 우연히 조성된 환경 안에서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안고서 말이다.


인터넷 속에서는 언제나 진정한 사랑이 없을 것이라 모두가 떠들지만, 사실 모두가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 한다. 외양이 아닌, 수치가 아닌, 숫자나 이미지가 아닌 본질을 알아주는 사람. 그 어느 때보다 본질과 사랑의 가치가 격하받는 이 시대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모두가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 진실을 마주하게 될 때 내 존재가 너무나 작고 서글프게 느껴져 외면하고 있는 것일 뿐, 모두가 사랑을 관찰하며 진실을 찾아 나서고 있는 셈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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