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 Mar 16. 2022

달콤 쌉싸름한 천국

악마의 유혹

“손님 음료 좀 준비해 드릴까요?”

머리에 염색약을 잔뜩 발라 기름진 석고상 머리를 하고 책을 보던 내게 원장님이 유혹의 한마디를 던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커피? 차? 뭘로 드릴까요?”

1초가 그렇게 긴 시간이었던가. 나는 순간 갈팡질팡 엄청나게 고민을 한다. 중증 역류성 식도염으로 커피도 끊고 약을 먹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커피 주세요.”

‘아~~~~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아직 판단을 내리기도 전인 것 같은데 요망한 입이 빨랐다, 망했다’

1분도 되지 않아 손잡이가 달린 연둣빛 플라스틱 컵홀더를 씌운 종이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믹스커피 한잔이 영롱하게 담겨 나왔다.


평소엔 원두를 직접 갈아 내려마시던 나인데 지금은 이 믹스커피 한 잔이 어떤 고급 커피보다 향긋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뜨끈할 때 드셔야 맛있어요, 얼른 드세요.” 원장님의 한마디.


‘암요 암요, 알지요,’ 속으로 외치며 나는 눈을 감고 향기를 맡은 후 한 모금을 넘긴다.

그 순간 입안을 훑고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부드러운 달콤함이란 커피 꽃밭에 풀썩 드러눕는 것 같았다. 내 등이 꽃밭에 떨어지는 순간 주변엔 온통 커피꽃(커피 향이 나는 꽃이 있다면…)이 날아오르고 등 뒤로 느껴지는 꽃베드는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아 이 행복한 달콤함과 부드러움의 향연이라니~ 온몸은 목을 빼고 기다리던 카페인이 들어와 환호성을 질러대고 나는 나른한 만족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 모금 한 모금을 어찌나 소중히 마셨는지 줄어드는 게 아쉬웠다.  원장님 고견처럼 이건 식기 전에 마셔야 했으므로 나는 다 마실 때까지 연둣빛 플라스틱 잔을 귀한 영국 왕실 도자기 잔이라도 되듯 고이 감싸 쥐고 한 번도 내려놓지 못했다.


코비드 19 사태를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2년 만에 찾은 미용실이었다. 머리를 가뿐하게 자르고 밝은 톤으로 염색을 했다. 그리고 커피의 악마 같은 맛과 향, 카페인에 굶주린 나의 몸은 천국을 경험했다. ‘믹스커피 한잔에 이럴 일이야?’ 싶었지만 아니다. 매일 커피를 달고 살다 끊어 본 사람을 알 것이다. 이럴 일이라는 것을. 죄책감과 함께 내 목은 조금 더 타들어가는 것 같지만 괜찮다. 달콤 쌉싸름한 천국에서 에너지를 가득 얻어왔으니까. 미용실을 나서자 호주의 기록적인 긴 장마 끝에 나타난 태양이 화사하게 나를 반긴다.  말끔해진 내 머리 위로 정겨운 햇살을 경쾌하게 쏟아부어 주면서.




이전 05화 빗속에서 춤을 추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