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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나 Jul 26. 2024

"불안이 혐오를 만든다"

소수자의 철학, 마스 누스바움의 사상 요약 설명



다양성의 중요성


우리는 이미 다양성이 민주주의에서 왜 필요한지 앞서 확인해보았습니다. 다양성은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다양성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매우 실용적이죠. 다양성은 기업과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팀은 문제 해결에 유연하고 효율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할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성은 사회적 연대와 공감을 촉진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은 상호 이해와 공감을 증진시키고, 사회적인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이익만을 위한 주장을 하는 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나고, 인식하고,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이타적인 것 같습니다. 다양성은 포용적인 문화를 만듭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태도는 사회적인 분열을 줄이고, 모든 개인들이 자신을 포함시키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하죠.





다양성이 없는 사회의 위험성


다양성이 없는 사회, 다양성이 없는 조직에선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경험한 것에 한하면 공무원 집단이 정말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는 곳이었는데요.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창의성과 혁신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있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접근 방식이 부족해지죠.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접근 방식이 부족해지고, 조직의 문제 해결 능력이 제한됩니다. 공무원 조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 혹은 사회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죠.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경제적 성장이 제약될 수 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다양한 인재가 부족하면 기업들의 성장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 집단주의와 획일적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편견과 차별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집단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경우,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배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혹은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집단에서는 주류 가치관과 다른 사상이나 행동은 비판받으며,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이 제약되죠. 개인은 집단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해야하기에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선택이 제한됩니다. 개인의 고유한 발전이나 성장이 어려워지죠. 다양성이 없는 집단에서는 모두에게 획일적이고 공통적인 기준의 성장이 있으며 그것만이 의미있는 성장, 정답으로 여겨집니다.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주류의 가치관과 다른 개인을 배척하는 결과로 사회적인 분열과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젊은 인구의 증가율은 낮은 반면,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노인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젊은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진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이민을 받아야한다는 주장, 받으려고 해봤자 그들한테 우리나라가 매력적인 이민 국가도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요. 물론, 우리 나라는 이미 이민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다문화국가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재로 존재함과 별개로, 한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한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 다문화국가라고 말하기는 주저됩니다. 





차별이 위협하는 다양성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마스 누스바움은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미국 문화에 주목하며 다양성과 차별에 대해 연구했는데요. 그녀는 이민자, 성 소수자, 인종 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 집단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배척되거나 차별받는다며 여러 형태의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이민자들이 접하는 문화적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 성 소수자들이 직면하는 사회적 편견과 혐오, 인종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인종 차별 등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누스바움은 정치적인 분열과 사회적인 불안이 증가함에 따라 차별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회적 불안은 특정 정치적인 성향이 강화된 적대적 태도를 유발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낳고, 이는 다시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협한다는 것이죠. 


소수 집단 혹은 약한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다양성과 포용성에 어떻게 작용할까요?


차별은 그 자체로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다양성을 제한하거나 억압합니다. 전통적이지 않고 주류가 아닌 낯선 집단 혹은 낯선 개인의 관점을 무시하거나 배척하죠. 차별은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를 부정하고, 그들을 무시하거나 비하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합니다. 이런 식으로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배척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사회적 결속력을 파괴합니다. 상호이해와 공동체의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사회적인 분열을 촉진하죠. 

그래서 누스바움은 차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포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수자 차별의 구조


누스바움은 권력과 구조가 소수자 차별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적 결정, 법률, 사회적 제도 등의 권력과 구조는 종종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식으로 소수자들을 차별한다는 것인데요. 또한 제도화 되지 않은 문화와 사회적 가치도 소수자 차별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특정 문화나 사회적 가치가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거나 비하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차별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슬람의 문화적 전통은 여성의 인권을 소외시키죠.


물론 차별은 완전히 구조의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이 차별을 만들기도 하는데요. 선입견, 편견, 차별적인 태도 등은 사회적으로 차별을 유지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낯선 것에 대한 이질감은 본능적이기도 합니다. 이 본능적인 것이 사회의 주류 구조와 결합하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단단하게 만들죠. 그러나 본성이라는 것이 모든 걸 정당화하지는 않죠. 마스바움은 차별을 만드는 구조와 개인의 본성을 인식하고, 차별에 대한 인식을 높여서 구조적인 변화와 개인적인 태도 변화를 통해 소수자 차별을 극복해야함을 강조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혐오가 된다


누스바움은 사회적 불안과 두려움이 혐오로 이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타집단에 대한 혐오 뒤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인데요. 혐오를 만드는 두려움이란 뭘까요?


예를 들어, 경제적인 불안정이나 사회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험을 느끼게 될 수 있으며, 이는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다시 타집단에 대한 혐오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정치적인 분열로도 이어지고, 정치적인 갈등과 분열은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불안감을 유발하죠. 


누스바움은 두려움이 다양한 것들에 대한 혐오로 변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두려움을 느끼게 된 개인은 자신의 불안과 불안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에 이유를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삼거나, 다른 집단을 타겟으로 삼아 혐오를 표출하는 거죠. 사람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강화합니다. 그 집단이 혐오 당할 만하다고 일반화하고, 나의 혐오를 정당화하는 거죠


현재 자신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것, 사회적 불안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유로 사람들은 ‘새로운 요인, 새로운 유입’에 주목하며 외국인이나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종종 이민과 다문화주의에 대한 혐오로 변하기 쉽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가치를 흔드는 성 소수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차별과 혐오로 이어집니다. 특정 인종이나 종교에 대한 혐오로 변할 수도 있고요.


또한 사회적 불안은 사람들 간의 신뢰를 흔들어놓을 수 있습니다. 불안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의심하고, 사회적인 관계에서의 신뢰가 저하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불안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피하거나 줄이게 되죠.


이렇듯 두려움과 사회적 불안이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기에, 누스바움은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구나 소수자가 된다


우리는 살면서 언젠가는 소수자의 위치가 됩니다. 혹은 상대적 약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소수자와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높은 사회가 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당장의 내가 소수자가 아니더라도요.  


공감은 지능 문제라는 말도 있더군요. 그 말의 맥락상의 요지도 알겠지만, 저는 선택적 공감의 위험성에 더 주목하는 편입니다. 자신의 실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만에 대한 공감은 물론 무엇보다 진실되고 강력하겠지만, 이타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공감되지 않는 것을 헤아려보려는 노력, 본능적이고 감정적으로 우러나오진 않아도 너그럽고 따듯한 이성과 합리로 이해해보자 하는 태도에 더 넓은 범위의 이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감보다는 이해를 권하고 주고받는 사회이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해봅니다. 





허울 좋은 소리는 아닐까


이방인이나 소수자를 위한 정책은 자주 논쟁거리가 됩니다. 역차별이 아니냐는 반응도 뒤따르지요.

누스바움의 이론은 종종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과도한 낙관주의를 보이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합니다. 너무 추상적이라는 거죠. 또한, 주류의 문화나 가치관에 자정작용이 필요하듯, 소수자의 문화나 가치관에도 자정작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주류의 문화에서 소외되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빈자라고 선하거나 약자라고 선한 것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누스바움의 이론은 사회적 혐오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해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유를 알면 해결이 뒤따라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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