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집 없는 설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ㅣ 해나를 위해서라도 한숨을 줄였으면 해.
집 안 공기를 한숨이 채우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어쩌면 결혼과 동시에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신혼집을 구하려 부동산을 돌던 때부터 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내 직장, 처가댁과의 거리를 고려해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신혼집을 얻기로 했다. 집을 얻는 첫걸음은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이다. 언젠가부터 남의 집에 들어가 볼 일이 별로 없는데 덕분에 여러 살림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런 살림들 저런 살림들, 우리는 어떤 살림에서 시작하게 될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것 같다.
"지금 전셋집 구하지 말고 저기 신축 아파트 사세요."
그런 우리에게 어느 부동산 사장님께서 능글맞게 말씀하셨다.
33평에 7억이라고 하셨다. 입주를 포기한 매물이라고 하셨는지는 아물가물하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일단 가용 예산과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빚을 내서 집을 산다는 인식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역 근처 신축 아파트라지만 강북 끄트머리에서 7억 원이라는 액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잠실 아파트가 10억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실 아파트가 30억이 넘었대..."
한숨을 깊이 내 쉬던 아내는 내게 이런 말을 꺼냈다.
"음..."
딱히 할 말이 없어, 해석할 수 없는 신음 소리만 냈다.
"그래, 당신은 항상 관심이 없지..."
속이 쓰리고 배가 아픈 것을 넘어서 어리둥절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아파트 실거래가는 18억 정도 한다. 2.5배가 올랐다. 잠실 아파트는 3배가 뛰었다. 세상에는 '벼락거지'라는 말이 등장했다. 안타깝지만 나도 그 말 안에 갇히게 됐다. 아내의 깊고 긴 한숨은 그 거지 같은 말 안에 갇혀버린 자의 간이 호흡기인 셈이다.
사교육과 부동산, 내가 우리나라를 망치는 원인으로 꼽는 두 가지다. 정작 나는 그 둘을 적극적으로 밀어내지도 않았고 현실로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어정쩡하게 구부러진 자세를 취하는 동안, 아이 학원도 아내 몫이었고 주택 청약도 아내 몫이었다. 아내가 하겠다고 하면 알겠다고, 그러라고 할 뿐이었다. 이 학원을 왜 다니는지, 저 아파트에 왜 청약을 넣는지 이유를 몰랐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망국의 원인인 저것들에 내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 홀로 독야청청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아내의 짙은 한숨을 맡으며 숨 쉬는 해나를 바라보았다. 아내에게서 한숨을 빼려면 아내 혼자 인고의 시기를 겪게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마음을 먹었다. 부동산 공부를 해야겠다. 나도 부동산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아내에게 보여줘야겠다. 남들처럼 부동산에 진심인 척 코스프레라도 해야 했다. 부동산 관련 유튜브 채널을 검색했다. 끌리는 얘기, 끌리지 않는 얘기 모두 듣는다. 각자의 논리를 메모하고 정리하고 있다. 아내에게 먼저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누가 그러는데 지금 이런 상황이래. 이 꽉 깨물고 기다려보자."
아내는 '피식' 비웃는다. 그렇지만 혼자서 애태우던 때와는 인상이 사뭇 달라 보인다.
ㅣ 사회는 내게 좀처럼 시선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순간이 많다. 문제가 있었더라도 둔촌 주공 청약을 넣어야 했다. 아니, 총각 시절에 아파트 청약을 받았어야 했다. 아니, 처음부터 청약통장을 만들지 않아야 했다. 그때라도 그 부동산 사장님 말을 듣고 그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아니, 부동산을 망국의 근원이라며 치부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아내는 고집스럽고 가난한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걸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서울 아파트 아파트 평균 매매 금액이 12억 원을 넘었다. 십이억 원이다. 어떤 전문가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0억이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LTV 50%, 절반만 빚을 내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파했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안드로메다에서 오신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5억 원은 매달 400만 원씩 십 년을 갚아도 원금을 갚기에 부족한 액수다.
지난 9년 간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 옛 말은 사실이었다. 먼저 가볍게 전세를 얻고 청약통장으로 자리를 잡겠다는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서 청약 시세도 뛰었다. 로또 청약이라는 광풍이 불면서 1자녀만으로 뚫을 수 있는 괜찮은 지역은 없었다. '아파트 아파트' 하는 노래가 나오기 전 아파트를 사두지 않았던 게 절대패인이었다.
여러 상황들에서 사람들은 양단에 서게 된다.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 합격한 사람 낙방한 사람, 인싸 아싸 등. 대다수 인파들처럼 나도 가능하면 나은 쪽에 서기를 바란다. 하지만 내가 반드시 좋은 쪽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이것이 내 삶의 지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로 인해 아내까지 그럴 수는 없다. 해나도 그럴 수는 없다.
유튜브를 들여다보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사람 말이 맞는지, 저 사람 말이 맞는지. 어떤 분은 부동산 가계 대출이 심각하다고 한다. 어떤 분은 집은 대출받아서 사는 것이고 용기가 따라야 한다고 한다. 아무튼 적당한 때에 적당한 집을 장만하고 이 코스프레 복장을 벗었으면 좋겠다. 훗날 집을 사게 될 때는 아마 나도 그 '용기'란 걸 낼 것 같다. 우리 돈으로 해보고 싶었지만 너무 멀리 가버렸다.
평소 길을 다닐 때 구걸하시는 분들을 잘 지나치지 못했다. 특히 나이 든 여성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는 내 돈이 내 돈이 아닌지라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요새는 웬만하면 그런 분들께 시선을 두지 않는다. 일단 시선을 두면 마음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우리 사회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입장이 됐다. 하지만 사회는 내게 좀처럼 시선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ㅣ 청년들이 갖춰야 할 용기가 주택담보대출만은 아니길
"힘내세요. 님도 언젠가 저처럼 될 수 있을 거예요."
낙심스럽던 하루, 포털 사이트에 뜬 글을 엿보았다. 먹을 것 입을 것 놀러 갈 것 아껴가며 2억 원을 모았는데 올라버린 집값을 보니 비통한 마음이 들어 울음이 터졌다는 내용이었다. 그 심정이 공감되었다. 댓글이 보였다.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30대 나이에 ㅇㅇ동 아파트를 보유하게 되었단다. 가끔 창밖을 바라보면 자신이 여기에 산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단다. 그러면서 글쓴이도 언젠가 자신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하였다.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 생각들이 떠올랐다. 결혼 초, 집값이 오르기 시작할 때 집을 사지 못해 속상해하는 나를 보며 한 친구는 킥킥댔다. 내가 두 번이나 축의금을 냈지만 내 결혼식 축의금은 안 보냈던 녀석이다. 그래서 수준이 그런가 보다 했다. 얼마 전 지인분께 둔촌 주공 살리기 정책이 원망스럽다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분은 그 정책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설파하려 하셨다. 심히 좋아하는 분이었지만 속상하니 그만 듣고 싶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집이 있는 자와 집이 없는 자 사이가 쩍 벌어졌다. 서로 어리둥절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해한다. 그러다 보니 한쪽은 대출받을 용기를 내지 못해서 그리 되었다고 면박을 주고, 한쪽은 그놈의 대출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성질을 낸다. 집 없는 게 잘못한 일도, 집 있는 게 시기받을 일도 아닌데, 단지 현상일 뿐인데, 우리는 광화문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터부시 하고 있다. 참 슬픈 일이다.
나는 대출에 대해서 보수적이지만, 대출을 레버리지로 선택하신 분들을 비난하고 싶은 맘이 정말이지 없다. 하지만 한 표가 모여서 천만 표를 받는 대통령이 탄생하듯, 선택과 선택이 모인 결과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지 걱정스럽긴 하다. 우리나라 가계 대출 규모가 GDP 대비 100%에 임박했단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세자금대출까지 고려하면 100%가 훌쩍 넘은 상황이라고 한다. 이 상황이 무얼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에도 집값이 폭등하고 가계 대출이 늘었던 시기가 있었다. 나라가 급성장하는 시기였다. 일자리도, 소득 수준도 빠르게 늘었던 때다. 웬만한 대학교는 대부분 졸업 전 취업이 되었다. IMF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국내 전자회사에 다닌다. 최근 주가가 폭락한 후 기를 못 펴고 있다. 회사 미래가 장밋빛은 아닌 듯하다. 정기 채용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경쟁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수시 채용하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대학생들은 예전 나보다 훨씬 똘똘하지만 일할 곳이 없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당장 내 집이 없는 것보다 장차 우리나라가 어찌 될지 훨씬 더 걱정스럽다. '당신, 쫌!' 하는 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듯 하지만, 그래도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버린 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기성세대는 비싼 집에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겠지. 다음 세대는 집 장만은 커녕 임대료도 감당 못해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진 않을까? 그들이 성실한 노동을 하려고 할까? 노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까?
'힘내세요. 님도 언젠가 저처럼 될 수 있을 거예요.' 하는 댓글을 남기신 분도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원했던 것은 30억 원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저 성실히 일한 딱 그만큼만, 자신이 계획한 것과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었으리라. 훗날 이 땅을 이끌어가야 할 청년들이 혹여나 이 땅에서 살아가기를 절망하게 된다면... 아유, 상상조차 하기 싫다.
(3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