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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공포증과 소외감

by 조태진

코로나가 돌기 한참 전에 조선시대 왕인 정조가 세웠다는 화성을 보기 위해 수원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전에 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티브이 드라마를 보았기에 대낮의 햇빛을 받고 서 있는 화성을 보며 드라마 속 여러 개의 장면들이 두서없이 흐릿하게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꽤나 먼 발걸음을 했기 때문에 수원에 온 김에 화성 말고 다른 볼거리가 또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수원 시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규모가 꽤 큰 미술관 하나를 발견했는데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문 근처에는 시각 설치미술 장르에 속할 듯한 작품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여러 명의 사람들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 표정은 묘사하지 않아서인지 주변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제 갈길만 가는, 좀 근사하게 표현하면 "소외된 현대인들"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날 이 시각 작품을 보자 제 머릿속에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광장 공포증"의 원인에 대한 의문이 다시 떠올랐는데 흐릿하고 막연한 느낌이었지만 광장 공포증이 어쩌면 그날 본 시각 설치미술 작품이 드러내는 삭막하고 조금은 괴기스러운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대도시에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게 눈 한번 돌리지 않고 그저 원자화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파편화된 삶의 모습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느낌을 오히려 더 강하게 자각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광장 공포증이란 "볕 좋은 광장에서 떠들고 웃으면서 지나쳐 가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심한 불안이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구나"라는 자각과 그에 이어서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겪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아니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겠구나'하는 자각이 들면 순간 눈으로 보는 광장의 풍경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 그 광경으로부터 홀로 멀리 동떨어진 것 같은 두려운 느낌 때문에 갑자기 숨이 막히고 질식할 것만 같은 심한 공포가 밀려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마치 그저 가까운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일 뿐 속내를 드러내기엔 심리적 거리가 너무 먼 직장 동료와 이제는 그저 형식적인 안부만 묻게 된, 역시 심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진 옛 친구들 때문에 혼자 밥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어떤 젊은 직장인이 늦은 시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면서 밝고 따뜻한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밖은 저리도 환한데 왜 내 마음은 이리도 어둡기만 한 걸까? 하면서 한숨 섞인 괴리감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절망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외로움은 현대의 질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텐데 산업혁명으로 기차 같은 장거리 이동수단이 만들어졌고 도시를 중심으로 상품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공장들이 들어서서 그 공장에서 임금을 받고 일할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농사지어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농부들은 경제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동네 사는 가까운 이웃이라는 이유로 남의 집 일에 이 참견 저 참견하던 작은 공동체들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와 반비례적으로 익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사는 도시의 삶은 점점 더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쟁할 필요가 거의 없었던 중세, 즉 영주나 왕이 소유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수화한 농작물의 태반을 소작료로 바치고 나머지 농작물로 생계를 이었고 아직 상품이 지금처럼 종류와 수량에서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구매력도 거의 없던 농노들이 공동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과는 달리 산업화로 인해 가내공업을 하던 예전과 비교해서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한 상품들이 시장에 쏟아지자 이제 상품을 구매할 여력이 생긴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들을 찾아 구매하게 되었고 이는 소비자의 눈을 더 끌만한 상품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으려는 돈 많은 사람들의 무한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된 도시의 삶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제 자신의 사적 영역(privacy)이 침범되는 것이 싫고 나의 결정과 그에 따른 행동이 간섭받는 것도 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시의 삶이 제공하는 익명성의 그런 장점은 거꾸로 소외감이나 고립감을 부추겨서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도시의 삶이란 무한경쟁의 텃밭과도 같아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몇 명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속을 드러내 보이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누가 간도 빼 줄 것 같이 살갑게 접근하더라도 또는 술자리에서 형 동생 사이처럼 허물없어 보이는 사이더라도 제 물질적 또는 심리적 이익을 챙기느라 수작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르거나 제 이익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색을 확 바꿔버릴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던 상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던 시절, 그래서 돈 좀 가진 사람이면 너도 나도 상품 생산에 뛰어들어 한몫 단단히 잡으려고 덤벼들던 호시절이 가고 이제는 어떻게든 여력이 있는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쥐어짜듯이 자극해야 상품을 팔 수 있게 되었고 게다가 호시절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돈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법의 허점이라도 노려서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갑에 들어가야 마땅한 물질적 대가를 자기 주머니로 옮기고 사실상 말을 듣지 않으면 모가지가 잘린다는 뜻을 내포한 협박으로 같은 값에 더 많은 노동력을 구매해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으로 자신의 이윤을 보존하고 나아가 확장하려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그렇지 않아도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소비자의 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는데 이 악순환은 임금이나 월급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피고용자들을 더 족치는 현상으로 악화될 수 있고 이는 내가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거나 언제 누가 내 뒤통수에 칼을 들이댈지 모른다는 심하고 만성적인 불안을 야기하는 "피 말리는 무한경쟁"을 가속화하기도 합니다. 이 현상은 70년대 유행했던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처럼 내 옆에서 나에게 친근하고 살갑게 구는 사람이더라도 경계의 끈을 좀처럼 놓을 수 없게 만들어서 그로 인해 결국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비관론에 빠져 "차라리"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게 낫다는 우을한 사회 현상마저 낳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말을 섞지 않아도 모여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누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하는 바렘을 놓아버릴 수 없어서 성가시지도 속을 긁지도 내 이익을 침범하지도 않는 존재인 반려견이나 반려묘 같은 생명체를 키우면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말하고 싶을 때는 어떡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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