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저냥 괜찮았던 마음이 오늘은 천근만근이다. 이렇게 갑자기 올라오는 두려움은 다루기가 어렵다.
아침을 먹다가 갑자기 병원 이후의 삶이 무서워졌다. 식사를 어떻게 챙겨야 할지, 출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재발의 공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불특정 다수들과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을지, 괜찮은 줄 알았던 내가 안 괜찮음을 인지한 후 그걸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 혹시라도 승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괜찮을 수 있을지...
살면서 되지도 않는 욕심을 낸 적은 없었다. 노력했고,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성과를 바랐던 것이 과한 것이었을까?
감각이 돌아오면서 수술 부위가 찌릿찌릿하다. 내 몸이 자꾸 알려준다. 내가 어떤지.
입원한 날 의사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5~7년 전부터 시작된 거다’
비로소 생각해 본다. 지난 5~7년간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작은 아이를 놓치면 안 된다는 공포감, 즐거웠지만 긴장의 연속이었던 미국 생활, 돌아온 자리의 변함없는 기막힘, 큰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녹녹지 않음을 인지하게 된 여러 사건과 여러 사람들.
나는 한 계단 올라가기 위한 출발선에 섰고, 저마다의 욕심으로 나를, 내 능력을 이용하는 사람을 겪었고,
인간관계는 계속해서 고민의 지점에 있고, 그 과정에서 과거를 강제로 복기하고, 승진은 실력 순이 아니라는 노골적인 얘기를 들어야 했고, 그래서 은근하고도 은밀하게 나를 밀어냄을 받아 내야 했다.
써 놓고 보니 아플만했네.
사이사이 힘들었겠지만 나는 그걸 마음에 꼭꼭 넣어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큰 기억 없이 지났겠지.
그럼 괜찮아야지. 정신 따로, 몸 따로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가?
강한 정신력이 문제인지, 그 정신력에 못 미치는 몸이 문제인지.
오른쪽 팔목에 찬 팔찌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팔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접근금지를 알려주는 팔찌.
그래서인지 나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정신력이 0인데?
앞 침대에 있는 분이 본인의 병에 대해 얘기를 꺼낸다. 3년쯤 지난 나랑 같은 병.
어떻게 발견했고, 어디서 수술했고, 이 시점에 왜 입원했고,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치료들이 어떤 것인지,
본인도 다 했던 것임을 마구 쏟아낸다. 이 병을 가진 사람들 모두는 매뉴얼이라도 있는 거처럼 같은 순서로 본인의 얘기를 시작한다. 아프면서겪은, 혹은 겪고 있는 마음의 오르내림이 서로 거의 같아서 동병상련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반복해서 들으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듣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날 이후 하루도 혼자 있지 못했다는 걸. 그래서 시원하게 울지도 않았다는 걸.
혼자 있고 싶다고 느꼈는데 그러질 못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혼자 있을 기회를 만들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