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는..

by 라미루이

솔과 연이 이른 새벽부터 방문을 빼꼼 열더니 슬그머니 거실로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살금살금 어스름한 어둠을 헤치고 거실에 놓인 각자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이내 터지는 탄성.

"우와, 선물이다."

"언니야,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갔나 봐."

큼지막한 선물 박스를 둘러보며 기뻐하는 아이들.

이미 거추장스러운 포장지는 간밤에 제거했기에 아이들은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챈다.

"연아, 난 말하는 앵무새인가 봐."

"언니, 삐약삐약 노래하는 병아리라고 쓰여있어."

잔뜩 흥분한 아이들이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아내와 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한다.

지난밤 아이들이 완전히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리느라 늦게 잠들었기 때문이다.



<5시간 전>


안방의 불이 환히 켜져 있다. 살짝 방문을 열어 보니 아내는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애들 잠든 거 같은데? 슬슬 세팅하자고."

아내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아이들 방으로 향한다. 조심스레 문에 귀를 대 보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솔이 잠귀가 밝은데 괜찮겠지? 설마 눈치 없이.."

"기어 나오진 않을 거야. 걱정 말라고. 괜히 분위기 어색해지는 거 뻔히 알 나이니까."

아내는 조용히 대꾸하고는 주방 문을 열고 나가 다용도실에 숨겨둔 선물 두 박스를 가지고 들어온다.

비닐 포장을 가위로 사정없이 잘라 뜯어낸다.

[찌이익, 찌익.]

진회색 비닐 포장이 눈치 없게도 온 집안을 찢을 듯한 비명 소리를 질러댄다.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닐 포장을 벗기고는 내게 건네준다.

산타 할아버지 이외 누군가가 선물을 전달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남기면 안 된다.

난 현관문을 열고 밖에 비닐을 버린다. 내일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버리면 눈치 채지 않겠지.

다시 안으로 들어오니 아내는 선물 두 박스를 식탁에 올려 두었다.

"식탁보다는 각자 책상에 놓아두는 게 낫지 않을까? 서로 다른 선물이니까 괜히 트러블 생기지 않게 말이야."

아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작은 게 연이 선물인가?"

"응."

"그렇군."

노란 앵무새가 투명한 플라스틱 창 뒤에서 날 바라본다. 솔은 어려서부터 사람 말을 곧잘 따라 한다는 앵무새를 기르고 싶어 했다. 진짜 앵무를 기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모이를 주지 않아도 되고, 털갈이도 하지 않는, 새장 밖으로 날아갈 염려가 없는 장난감 앵무를 집에 들이는 수밖에.

그럴듯한 새장도 포함된 구성이니 아이도 만족하겠지. 박스를 책상에 올려두고 그 옆에 베프 Y가 보낸 편지를 놓아둔다. 간밤에 산책도 할 겸 밖에 나왔다가 우편함에 비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Merry Christmas!' 색연필로 쓴 글씨가 사선으로 써져 있고, 크리스마스 씰을 포함한 우표가 네 장이나 붙어 있다.

이 정도면 아이가 실망하진 않겠지. 작년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오른다.

"작년처럼 울고불고 투정 부리진 않겠네. 안 그래?"

"올해도 그러면 내년엔 선물 없는 거지. 뭐."

쌀쌀맞은 아내의 목소리가 어둠에 잠긴 거실을 울린다.

지난해에는 노트와 연필, 지우개 같은 학용품을 선물해줬는데 솔은 그것을 보자마자 실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한참을 울었다.

"솔직히 말해. 크리스마스 선물, 다 엄마 아빠가 선물해 주는 거지. 산타 없는 거 맞지?"

9살과 6살 딸아이의 해맑은 동심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절대 아니거든. 솔이 네가 올해 동생이랑 많이 싸우고 울려서 그런 게 아닐까? 연이랑 좀 더 사이좋게 지내고 공부 열심히 하면 내년에는 원하는 선물 받을 수 있을 거야. 믿어도 좋아."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아이의 뺨이 눈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나도 원하는 선물 받을 수 있는 거지?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착한 일 많이 하면.."

옆에 서 있던 동생 연이 눈치를 보다가 두 손을 꼬옥 모은 채 눈을 반짝인다.

"그럼, 산타가 연이 소원도 꼭 들어주실 거다. 그 할아버지는 절대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아. 아빠 어렸을 때도 그랬어."

하지만 난 어릴 때 내가 원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던 적이 없다. 집안 형편에 맞지 않는 과한 선물을 바라서였을까?


이번엔 언니의 책상 반대편에 모로 놓인 핑크색 책상으로 다가간다.

크레파스와 그림이 그려진 이면지가 어질러진 연의 책상 위를 한 데로 밀어놓고 빈자리에 샛노란 병아리가 담긴 박스를 올려둔다.

크리스마스 선물 세팅은 끝났다. 다행히 아이들의 방문은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줄을 모른다.

이제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아 기대에 가득 찬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자신의 선물을 발견하는 순서만 남았다.



다행히 솔과 연은 실망하지 않았고, 눈물을 비치지 않았다.

사전에 아내에게 말을 해 두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뜩이나 우울한 한 해를 보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이들이 원하는 거 해 주자고. 그래야 2020년 연말을 그나마 해피하게 마무리하지 않겠냐고.

아이들은 사람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앵무새와 뒤뚱거리며 거실을 걸어 다니다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는 병아리를 가지고 노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오후에 라디오를 틀었더니 어떤 가족의 사연이 흘러나온다.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려서는 우리 집에 못 올 거 같다고 아이에게 말했더니 정말 서럽게 우는 거예요. 글쎄.]

"아빠, 저 집에 오는 산타는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네?"

연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내게 묻는다.

"우리 집에 오는 산타는 코로나 따위는 겁내지 않아. 산타도 여러 명인 거 알지? 이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한 사람으로는 안 되는 거야."

소파에 앉아 앵무새를 쓰다듬던 솔이 아는 체 한다.

"연, 산타 할아버지 백 명 넘는 거 알지? 저번에 책에서 봤잖아?"

"배, 백 명? 그렇게 많다고. 그럼 저 집에 사는 아이는 선물 못 받은 거야? 불쌍하다."

"글쎄, 다른 산타가 대신 오지 않았을까?"


라디오의 애타는 사연이 마저 이어진다.

[그래서 올해는 산타 대신 엄마, 아빠가 더 좋은 선물 해 주겠다고 했더니 아이가 금세 울음을 그치는 거 있죠.

어차피 언젠가는 오픈하려고 한 데다 더 이상 숨기기도 어려워서.. 요즘 아이들이 눈치가 워낙 빠르잖아요.]

요란스러운 웃음소리가 라디오에서 터지기에 재빨리 다가가 꺼 버린다.

솔과 연은 라디오 옆에 엉거주춤 선 내 눈치를 잠시 보다가 관심 없다는 듯 앵무새와 삐약이를 한 손에 들고는

자랑질하기 바쁘다.

"앵무야, 내 말 따라하는 거 봐. 진짜 앵무새보다 훨씬 똑똑한 거 같아."

"내 삐약이는 쓰다듬으면 코오~하고 코 고는 소리도 내 거든. 이렇게 바닥에 내려놓으면 걸어 다니기도 하고.."

"칫, 내 건 부리도 움직인다고. 요렇게.."

슬슬 자매간의 싸움질로 이어질 거 같기에 가볍게 경고를 한다.

"크리스마스 날 다투면 알지? 산타 할아버지가 다 보고 계시는 거."

시무룩해진 아이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는 거리를 둔다.

당분간은 집안이 삐약삐약, 꽥꽥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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