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내에 수술하셔야 돼요. 담관에 담석 박혀서 막히면 아시죠? 바로 응급실 가셔야 합니다."
그는 집 근처 종합 병원의 간담췌 외과 진료를 보기 위한 소견서를 써주며 심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한 달이 지났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복부 CT 도 찍고 피/소변 검사도 하고 엑스레이도 찍었다. 다행히
CT 상 담관은 깨끗해 보이고 간/신장/심장 등 다른 장기는 이상이 없단다. 오늘은 입원을 위한 코로나 PCR 검사를 마쳤다. 미열에 목 통증도 없으니 아마도 결과는 음성이리라. 이제 동그란 8mm 담석 두세 개가 자리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든 담낭을 떠나보낼 준비를 마쳤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 이런저런 걱정도 쌓인다. 과연 절제술이 최선일까? 약 복용이나 식단 관리를 하면 1년은 버티지 않을까, 혹시나 기적적으로 담낭이 회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미련이 마음 여기저기서 돋아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버텨온 담낭이기에 이제는 놓아줄 때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몸은 하루가 갈수록 낡아가고 녹이 슬어간다. 보다 튼튼한 담낭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어린 시절 군것질을 덜했더라면, 진작에 관리를 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속에 파묻혔다. 이미 수년 전부터 지방질을 섭취하면 소화가 되지 않았다. 체한 것처럼 명치가 답답하고 트림도 나오지 않는 답답한 나날들. 여행지에서 급ㅅㅅ 신호에 안절부절, 가까운 공중 화장실로 달려가던 기억들. 조금이라도 과식하면 수시로 덮쳐오는 편두통의 괴로움. 이미 내 담낭은 기능을 멈추었고 형태만 남았을 뿐이다. 담즙을 보관, 배출하는 담낭의 기능은 아마도 하부 담관의 일부에서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으리라.
오히려 난 홀가분해지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덥수룩한 머리를 짧게 깎고 비죽한 수염도 다듬었다. 멀리 떠날 사람처럼 힘닿는 대로 집 안팎을 정리했다. 거뭇한 물때가 낀 욕조와 식탁을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았다. 진공청소기를 분해해 그득한 먼지를 비웠고, 흐르는 물에 부품을 씻어냈다. 가끔 허리를 굽힐 때마다 뻐근하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등어리를 훑고 지나간다. 그래도 응급실을 찾을 만한 격통이 아닌 게 어딘가. 난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는 줄지어 뚝뚝 떨어진 물방울들을 마른 수건으로 훔친다.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다 흘린 듯한, 허연 자욱도 남김없이 닦아냈다. 허리를 펴고 천천히 일어서자 베란다의 통창이 눈부시다. 숨 막히는 대낮의 열기는 지난 폭우의 흔적을 빠르게 증발시키고 있다.
다음 주에는 분명.. 지금껏 겪지 못한 고통에 직면하겠지만.. 어찌했든 난 견디고 버틸 것이다. 침상에서 뒤척이다 사나흘 후, 지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가 아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리라. 아이들은 처음엔 내 눈치를 보다가 지들끼리 한바탕 수다를 떨고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다투곤 하겠지. 기력이 회복되는 대로 솔과 연이 얼마나 자랐는지 내 방구석의 키재기 벽에 나란히 세워봐야겠다. "아빠, 나 얼마나 자랐어요?" 뒤꿈치를 모아 살짝 치켜 세운 걸 아마도 못 본 척해야겠지. 기대에 찬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본다. 볼펜을 들어 짤막한 선을 긋는 내 손이 가볍게 떨린다. 아이들이 밝은 웃음을 짓고 계속 자라나는 한.. 난 건강을 회복할 것이고 그들과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