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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망 Oct 18. 2024

죽었습니다. 계속 일하시겠습니까?  

소설 연재

[프롤로그]    

  

의식을 되찾은 수민.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다.

몽롱한 기분. 몸이 무겁고 눈꺼풀은 더 무겁다.

희미하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다 점점 선명해진다. 일어나 앉으니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수십에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지나간다.


눈치껏 재빨리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눈앞엔 여섯 개로 줄을 나누어 서있는 수백 아니 수천의 사람들이 보인다.


“분명 택시를 탔는데... 여긴 도대체 어디지?” 가방이 없다. 핸드폰도 없다.


“기다릴 텐데...” 전화부터 해야 한다.


“저기... 전화 한 통만.”


“죄송한데... 여기가 어디예요?” 사람들은 대꾸도 없이 쌩- 지나간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비교적 한적한 곳을 찾아 커다란 기둥에 기대앉는다. 태어나서 이렇게 커다란 기둥을 본 적은 없다. 아파트 두세 채를 겹친듯한 크기였다.


기둥을 기준으로 나선형 모양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고개를 쭉 내밀어 살펴봐도 그 길 끝에 뭐가 있는진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여기 처음이야?” 고개를 드니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서 있다.


“네... 근데 할아버지, 도대체 여기가 어디예요? 그보다 혹시 핸드폰 있으세요? 전화 한 통만 써도 될까요? 누굴 좀 만나러 가던 길이었거든요.”


할아버지는 폭풍처럼 말을 쏟아내는 수민을 측은하게 봤다.


“전화가 어딨어. 저기 가서 줄이나 서. 그나마 진열이 제일 나아.”


“할아버지 잠깐만요.”


그는 쏜살같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줄을 서야 했다. 사람들은 각자 어느 줄의 설지 정확히 아는 듯 보였다. 그녀는 제일 가까운 줄 끝에 섰다. 할아버지가 말한 진열이라는 것을 찾고 싶었지만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줄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한 얘기들을 나눴다. ‘어디는 인원을 줄인다더라.’ ‘일은 여기가 더 편하다, 저기가 더 편하다.’ ‘관리자들은 다 멍청이다.’ ‘일을 왜 이따위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 무슨 일을 말하는 거지?” 여기가 어딘지 갈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한참이 지나서야 수민의 순서가 됐다. 몸은 말랐는데 코가 유난히 뚱뚱한 남자가 다짜고짜 마트 계산대에 달린 스캐너를 수민의 손목에 가져다 댄다.


삑- “신규 사원이시네요. 교육 먼저 받으실게요. 대각선 왼쪽에 보이는 교육장으로 들어가세요. 다음분이요.”

 

“잠깐만요.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교육이라뇨?”


“일을 하려면 교육을 받아야 될 거 아니에요.”


“저는 일하러 온 게 아니에요. 전 직장이 있어요.”


“아 예. 왜 아니시겠어요. 일 안 하실 거면 저기 저 뒤로 가시면 됩니다.” 남자가 무뚝뚝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아까 본 기둥이 있었다.


수민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저기가 어딘데요?”


“가보면 알겠죠. 이제 그만 옆으로 좀 비켜주세요. 다음분이요.”


기둥 뒤쪽은 텅텅 비어 있었다. 좋은 곳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사람들이 다 저리로 갔겠지.


“전화 한 통만 쓰게 해 주세요. 딱 한 통이면 돼요.”


“아 참, 비키라고요 좀. 뒤에 줄 선거 안 보여요?”


수민은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와중에 피곤함은 누적이 되었고, 아득함과 답답함에 미칠 지경인데 관리자로 보이는 남자의 무례함에 간신히 붙어있던 인내심이 끊어져 버렸다.


“저기요. 제가 뭐 죽을 죄라도 지었나요? 오늘은 내 생일이라 택시를 타고 약속에 가는 중이었어요. 내 친구는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 거고요. 근데 여기는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나보고 줄을 서라 질 않나. 교육을 받으라 질 않나. 나한테 왜 이래요 진짜. 도대체 여기 어디냐고요? 네? 내가 왜 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있는 거냐고요!”


남자가 처음으로 수민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눈빛은 먹이의 목덜미를 물고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맹수의 그것과 같았다.

수민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팔로 감싸 안았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야, 당신이 죽. 었. 으. 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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