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나는 열다섯 살이다.
요즘 따라 부쩍 외모가 신경 쓰일 나이.
걸그룹처럼 날씬했으면, 반짝반짝 광이 나는 피부를 가졌으면, 무엇보다도 매끄럽고 윤기 나는 머릿결을 가졌으면 좋겠다.
난 심한 곱슬머리다.
손으로 뒤통수를 쓸어내리면 올록볼록 튀어나와 있는 머리카락들이 가득하다.
엄지와 검지를 날카롭게 세워 그것들을 뽑아낸다.
어떤 것은 라면처럼 구불구불, 어떤 것은 스프링처럼 꼬불꼬불, 또 어떤 것은 아예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그날은 시험이 끝난 주의 토요일이었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반에서 제일 친한 친구 윤진, 미리, 연희와 함께 유명하다는 여대 앞 미용실을 찾아갔다. 윤진이가 받아온 전단지엔 학생 할인 기장추가, 숱추가 없음이라고 쓰여있었다.
매직파마를 하고 싶다고 말하자 디자이너 언니는 내 머리를 이리저리 패대기치며 말했다.
‘하아... 숱 많고 곱슬 개 심하네.’
오전 11시에 시작한 머리. 생머리인 윤진이와 미리는 깔끔하게 다듬기만 해서 30분이 안 걸렸고, 나와 같이 매직파마를 한 연희는 숱도 적은데 곱슬도 심하지 않아서 한 시간 반 만에 끝이 났다. 미용실 언니들은 연화제를 바를 때도 중화제를 바를 때도 잠시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2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척척 결제하는 어른 손님들을 신경 쓰느라 여념이 없었다. 언제쯤 끝나냐는 물음에 나는 악성 곱슬이라 처리 시간을 길게 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민은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두시가 다 돼 가잖아?
아무래도 오늘은 못 본다고 해야겠다.
수민은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보낸다.
[나 오늘 영화 못 봐.]
얘는 맨날 핸드폰만 보고 있는지 메시지를 읽었다는 숫자 표시가 금세 없어졌다.
곧이어 왜?라는 답장이 왔다.
[머리 하러 왔는데 오래 걸린대]
[괜찮아. 저녁 시간으로 바꿔 놓을게. 천천히 와]
수민이 그냥 다음에 보자고 몇 번이나 얘기해도 정훈은 오늘 꼭 와달라고 몇 번이나 얘기한다.
머리 헹구라는 미용실 스태프의 말에 수민은 일단 알겠다고 대충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저녁 6시가 돼서야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미용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참고 참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고 미역보다 더 미끈하게 얼굴에 딱 달라붙은 머리는 눈물에 젖었다.
절망적이었다.
오랜 시간 약을 방치한 데다 앞머리까지 삐죽삐죽하게 잘라놓아 촌스럽다는 말로도 이 처참함을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괜찮아 귀여워’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고갤 돌려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 꼴로 내일모레 학교를 어떻게 가... 딱 죽고만 싶다.
전화가 울린다.
벌써 다섯 통째 정훈이의 전화를 거절했다.
혹시 다치거나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그 애의 걱정이 전화벨과 진동에 섞여 흐른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왜 하필 오늘이야. 이 꼴로 어떻게 영화를 봐.’
다시 전화가 울린다.
수민은 전화를 받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분을 토한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난 네가 미워 죽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