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나는 열다섯 살이다.
요즘 내가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수민이다.
작은 키와 하얗고 동그란 얼굴, 사소한 것에도 깔깔대며 웃는 그 아이를 좋아하게 돼버렸다.
일부러 준비물을 안 가지고 가서 빌리고, 괜히 내 소지품을 맡아달라며 억지로 떠넘기고, 체육시간에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오버하다 손가락이 부러졌고, 손이 부러져서 수업 필기를 못하니 대신해달라고 조르고, 싫다고 하면 빵과 우유를 사주며 달래고, 수돗가에서 그 아이에게 물장난을 치고, 윤호에게 내가 제일 아끼는 게임 아이템을 주고 수민이와 짝꿍이 되는 번호표를 얻었다.
이 바보 같은 모든 행동이 너 때문이란 걸 모르겠지. 주수민은 어지간히도 눈치가 없으니까.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간 알람을 자청하며, 시험기간 두 시간만 자고 공부할 거라는 수민이를 깨웠다.
"수민아. 두 시간 지났어. 이제 일어나야지."
"응..."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민이의 목소리가 귀엽다.
아직 비몽사몽 할 때 슬쩍 물어볼까?
"시험 끝나고 이번주 토요일에 영화 볼래?"
"응..."
다음날 수민은 그런 적 없다고 박박 우겼지만 난 이미 예매까지 했다며 취소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거기서 수민이 한번 더 싫다고 했으면 나도 더 이상 강요는 못했겠지만 잠시 나를 째려보던 수민은 입을 삐죽거리는 것으로 우리의 첫 데이트를 수긍했다.
토요일 오전 11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역에 있는 영화관에 도착했다.
‘아... 너무 일찍 왔나? 영화는 2시인데...’
나는 수민이가 좋아할 만한 팝콘과 음료를 미리 봐두고, 불편하지 않게 화장실의 위치도 파악해 두었다.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기다려 보려 했지만 좀처럼 명치부터 아랫배가 꿈틀꿈틀 요동을 쳐대는 통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곧 2시니까 수민이가 오겠지?’
생각하며 열두 번도 더 들락거린 화장실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머리모양과 새로 산 재킷의 매무새를 살폈다. 띵! 메시지가 울린다. 기대하며 핸드폰을 연 순간 머리 하는데 오래 걸려 오늘 영화 못 보겠단 수민의 통보가 보인다.
‘안되는데... 오늘 꼭 영화 같이 봐야 하는데.’
나는 티켓오피스로 달려가 저녁 7시 영화로 바꿔달라고 했지만 이미 영화가 시작 돼서 변경이 어렵다는 직원에 말을 들었다.
‘어쩌지? 수민이한테는 저녁 시간으로 바꿔 놓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다음 달 용돈 받을 때까지 좀 굶지 뭐.’
"티켓 새로 살게요. 7시에 두장이요."
저녁 6시 50분, 수민이가 영화관 입구로 들어온다.
아까 전화할 때 엉엉 울더니 여전히 훌쩍거린다.
얼굴과 눈이 퉁퉁 붓고 표정은 심각하다.
머리 때문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가 없었다.
수민이는 신경이 쓰이는지 앞머리와 옆머리를 만지고 또 만지며 내 눈을 피한다.
“나 머리 이상하지?”
나는 수민이를 위로하고 싶지 않다.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 아이를 보고 지금 솔직하게 느끼는 말을 하고 싶다.
“예쁘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