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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망 Oct 19. 2024

#2 새 학기 대소동

소설 연재 

수민이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태그 하자 직원 전용 마트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는 90,000이라는 잔액을 보여줬다. 


“점심시간 한 시간 빼고 하루에 9시간 일해서 받는 돈이 대략 97,000원, 점심은 무료고 기숙사비는 직원가로 매일 7,000원씩 공제되는 거구나. 휴. 이렇게 벌어서 언제 돈 모을 수 있는 거야. 살아있을 때나 죽어서나 살기 팍팍한 건 매 한가지구나. 이미 죽어서 4대 보험이랑 세금은 안 떼는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수민은 카트를 끌고 마트로 들어갔다. 

살면서 가본 마트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요한 모든 물건들이 깔끔하게 진열이 되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가격표였다. 


“샴푸가 만원이라는 거야. 백만 원이라는 거야?” 

모든 가격표에는 두 가지 가격이 기재가 되어 있었는데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이었다. 


“본인이 기숙사에서 쓰는 거면 만원이고, 지상으로 보내는 건 백만 원이라는 거예요.” 

약간 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마주친 관리자 최희숙이었다. 


“젊어서 그런가 샴푸도 좋은 거 쓰네.” 


“네? 아... 아직 써보지는 못했어요. 근데 관리자님. 왜 지상으로 보내는 건 이렇게 비싼 거예요? 그냥 샴푸일 뿐이잖아요.” 


“죽은 사람이 산 사람한테 물건을 보내는 거예요. 비싸지 않을 수가 없죠.”


“산 사람들 눈엔 안 보인다면서요. 어차피 쓸 수도 없을 텐데요.” 


“맞아요. 쓸 순 없죠. 하지만 지상의 있는 사람이 이 샴푸를 받게 되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이틀까지 복잡한 생각 없이 머리가 개운해져요. 가족이나 친구가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한병 보내줘요. 어제인가 와서 아직 백만 원은 없을 테니 일단 이건 아가씨가 써요.” 

희숙이 샴푸 한통을 들어 수민의 카트에 넣었다. 


수민은 잠시 정훈이에게 샴푸를 보내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쯤이면 부고 문자가 정훈이한테도 갔을 테고 내가 죽었다는 걸 알았겠지? 이거라도 보내면 하루이틀이라도 편하게 자지 않을까.


“세상에 피부도 좋네. 키도 크고.” 

희숙은 요리조리 수민을 살피며 연신 젊어서 그런가라는 말을 반복하며 칭찬을 해댔다. 


“하루 이틀 반짝 효과 있는 거 말고 더 강력한 건 없을까요?” 


“강력한 거라뇨?”


“힘든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영원히 잊을 수 있는 거요.”      




봄의 전령 3월, 물류센터 콜센터에서는 천사들 중 가장 낮은 품계라는 9품 천사들이 전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다른 콜센터와 다르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듣기만 하지 대답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마침 신입 천사 민가엘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제가 가야 할 길이 이 길 맞나요? 벌써 3년째라고요. 맞는 길이 아니라면 알려 주세요. 네?” 


민가엘은 기존 상담 이력을 살펴봤다. 진로 고민, 진로 고민, 진로 고민 지난 삼 년 내내  같은 문의사항으로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전 상담사들의 처리 내역 역시 방법은 달랐지만 취지는 모두 같았다. 

<증조할머니 섭외 후 꿈 촬영>, <면접 당일 지각 생수 배송>, <가짜 오늘의 운세 주 1회 발송>


“선배님, 이 사람 너무 안 됐어요.” 


민가엘이 묻자 옆에 앉아있던 선배 천사는 심드렁했다. 

“안되긴. 저런 애들 수백 만명도 더 된다. 온갖 방법으로 그 길 아니라고 알려줘도 못 알아먹고 계속 지가 엉뚱한 짓만 골라해요. 그래놓고 내 말을 안 들어준다. 너무한 거 아니냐. 생떼 부리는 놈들이야. 그냥 동일 내용 문의라고 써서 위에다 올려.” 


“네...” 민가엘은 GPS 기능이 탑재된 위치확인 버튼을 눌렀다. 지도 위에 전화를 건 사람의 현 위치와 목적지라고 쓰여 있는 깃발이 보였다. 지도 위에 사람은 목적지의 정반대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고 있었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예요. 그쪽이 아니에요.” 

천사의 답답함 반, 안타까움 반의 목소리가 지상의 그에게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천사의 목소리는 사람에게 가 닿지 못한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목적지로 가는 길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알게 될 테니.      


같은 시각 그린아파트 106동 1001호 문 앞에는 생수와 섬유유연제가 1002호에는 두루마리 휴지와 액체 세제가 가득 쌓여 있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1001호의 문이 활짝 열리자 눈에 보이지 않는 택배들이 집안으로 날아들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아빠가 노란 가방을  아이를 안고 뛰어나온다. 


“늦었다, 늦었어.” 


지난밤 아빠와 나린이는 한숨도 자질 못했다. 나린이가 대성통곡을 하며 엄마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본 적도 없는 엄마인데 어쩜 저렇게까지 그리울까? 아빠는 밤새 나린이를 안고 달래며 생각했다.  헐레벌떡 아파트 입구로 달려가니 긴 생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늦어서 죄송해요, 선생님.”


“아니에요. 오셔서 다행이에요. 안녕 나린아.” 

나린이는 선생님이 엄마인 줄 아는 듯 방긋 웃으며 안겼다. 


아빠는 그런 나린이에게 안타깝고 미안하면서도 내심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실수 투성이라 그렇겠지? 먼저 떠난 아내가 더욱 생각나는 날이다. 오늘 이 모습을 같이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내가 있었으면 저렇게 꼬질꼬질하진 않을 텐데. 


 아빠의 서투른 실력 때문에 나린이의 머리는 집에서 나온 지 10분도 안되어 산발이 돼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손으로 눌러보지만 쉬이 가라앉을 곱슬머리가 아니다. 

“출근하시나 봐요? 나린이 머리는 제가 다시 잘 묶어 줄게요.” 


“첫날부터 신세를 끼쳐서 어쩌죠.”


“신세라뇨. 걱정 마시고 얼른 가보세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린아 아빠 빠빠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잠시 후 1002호에서 젊은 부부가 보이지 않는 택배를 밟으며 문밖을 나선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정문에 다다르니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보인다. 한 여자 아이가 선생님 품에 안겨 방긋방긋 웃고 있다. 귀엽고 통통한 팔다리, 자기 몸만 한 노란 배낭을 메고 빠빠 손을 흔든다. 


눈치 빠른 남편은 아내가 미소를 띰과 동시에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뭘 그렇게 봐?” 


“우리 열무도 태어났더라면 저렇게 유치원에 갔겠지?” 아내의 눈이 그렁그렁 해졌다.       


물류센터는 이른 아침부터 넘치는 주문량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빴는데 특히 집품팀은 직원들은 발에 불이 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그들의 PDA가 빨간 경광등 알람을 번쩍거리며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집품팀 사람들은 진열팀을 재촉했다. 


띵띵띵! 

“알겠어요. 비킬게요.” 


뻥 뚫린 선반을 다시 채워야 하는 것은 진열팀이건만 그럴 새도 없이 쉴 새 없이 벨을 울리며 비켜달라는 집품팀 때문에 수민은 오늘만 벌써 열 번째 자신의 카트를 통로 밖으로 빼내어 길을 터주었다. 


“한두 시간 정도는 제대로 일하기 힘들 거야. 그냥 통로에 나와있어.” 

환섭이 카트를 끌고 수민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왜 이렇게 주문량이 많은 거예요? 이걸 다 여기 사람들이 사서 보내는 거예요?”


“우리가 그럴 돈이 어딨어. 몇 달에서 일 년은 모아야 겨우 보낼 수 있는데.”


“그럼 이 물건은 다 누가 주문하는 거예요?” 


환섭이 검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위에서. 각자의 인생에 맞게.” 


그때 시퍼런 섀도와 시뻘건 립스틱을 바른 미경의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돼! 무거워 죽겠네.” 


그녀는 팔레트에 산더미처럼 깔린 2L 생수 6개 묶음과 대용량 섬유유연제를 초대형 카트에 싣고 또 실었다. 그러다 잘생긴 남자 직원이 지나가면 귀밑머리를 뒤로 넘기며 무거운 척을 했다. 

 

수민은 문득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생수나 섬유유연제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쓰는 물건이잖아요. 요 며칠 유독 많이 나가는 것 같은데요?” 


“새 학기잖아. 생수는 물먹듯 하게 되는 지각이고, 섬유유연제는 향긋한 설렘이자 그리운 이의 체취지.”


미경이 이번엔 두루마리 휴지와 대용량 액체 세제를 담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활짝 웃으며 몸을 베베 꼬고 있었다. 아까 그 잘생긴 직원이 싣는 걸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거는요? 두루마리 휴지는 슬픔이고 세제는 상실감인데요?” 


“입학을 축하하고 축하받는 이런 날,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수민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날, 새 책가방, 새 공책, 새 친구들을 만나는 날. 그런 날에 슬픔과 상실감을 배달받는 사람들이라.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환섭이 멍하게 서 있는 수민을 불렀다. 


수민은 밥을 먹는 내내 정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민의 죽음을 알게 된 정훈에겐 모두가 들떠 있는 이런 날이 지옥 같은 날들 중 하루일 테니. 


“오늘 정훈이네 집 앞에도 두루마리 휴지와 액상 세제가 배달되었으면 어쩌지. 빨리 오천 만원을 모아야 되는데...” 


벌써 수민이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된 지도 삼 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모은 돈은 삼백만 원. 처음 한두 달은 몸 쓰는 일에 적응이 안돼 쉰 날이 많았고, 나름 아낀다고 아꼈는데도 여기저기 새어 나가는 돈이 적지 않았다. 입고 관리자 희숙은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영원히 잊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초강력 표백제를 보내는 것이라 귀띔했다. 그런데 오천만 원이라는 가격을 듣고 좌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받는 일당으로는 최소 삼사 년 이상은 걸릴 테고 지금 가장 괴로워할 정훈이가 좋고 괴로운 기억 모두를 앞으로 몇 년은 떠올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트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앙!” 

그때 수민의 고막마저 찢어 트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집품팀의 혜미님과 아기였다. 그녀는 아기를 위아래로 흔들어 달래다 수민과 눈이 마주쳤다. 

“죄송해요. 너무 시끄럽죠? 오늘 일이 바빠서 아침을 제대로 못 먹였더니 짜증이 날대로 났나 봐요.”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아기가 우는 건 당연하거니까요. 그런데 중간중간 기저귀도 수시로 갈러 화장실 가시는 것 같던데. 휴게실에서 시간 맞춰 밥도 먹여야 하고, 낮잠도 재워야 하고. 일하기가 쉽진 않으시겠어요.”


“쉽진 않죠. 일하는 시간이 짧아서 일당도 소액이에요. 쓰는 돈은 많고요. 여기서 일한 지 벌써 5년인데 돈이 안 모이네요. 이래서 물건을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저도 그래요. 받는 일당은 잘 오르지도 않는다면서요?” 


“절대 안 올라요. 그런데 물건 값은 계속 올라요.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어요.” 


“이모들 그만 얘기하고 나 밥 좀 줘요. 배고파요.” 


“지금 누가 말한 거예요?” 수민은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말한 거예요.”


“처음 들어요? 아기가 말하는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이 들리는 거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혜미가 환섭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분만 아시겠지 허허.” 


수민은 혜미에게 똑같다고 칭찬을 하며 웃다가 새어 나온 눈물을 훔쳤다. 그리곤 혜미 뒤에 업혀 있는 아기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선 본 아기는 한 줌 손에 쥐면 부서질 만큼 작고 연약했다. 아직 머리털도 나지 않은 말 그대로 핏덩어리였다. 그런 몸으로 일을 하고 있어. 목이 쉴 때까지 울어가면서. 


“일하는 거 힘들지 않아?” 


“힘들어요. 나는 걷지도 못하고 물건을 들 수도 없어요. 밥도 혼자 못 먹고 화장실도 해결 못하죠. 잠도 너무 많고요. 그래서 아마 오래 걸릴 거예요. 그래도 끝까지 해내고 싶어요.” 


“누구를 위해서?”


“우리 엄마, 아빠요. 많이 슬퍼하고 있을 거예요.”


수민은 입술을 깨물어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안돼 애기 앞에서 울면. 화제를 돌리자.  

“근데 이름이 뭐야? 매번 아기라고 부르기가 좀 그래서.” 


“난 이름이 없어요. 엄마 아빠가 이름을 고민하는 사이에 죽었거든요.” 


“그랬구나... 그럼 그냥 아기라고 부를게.” 


“이름은 없지만 태명은 있어요.”


“그럼 그걸로 부를게. 태명이 뭐야?” 


“열무요.”     


늦은 오후 시간, 화물 트럭들이 낮배송을 마치고 물류센터도 들어왔다. 배송된 물건들이 만든 공간엔 반품된 물건들이 가득 자리를 잡았다. 기사들이 저마다 뒷문을 열자 반품팀 직원들이 이동식 컨베이어 벨트를 끌고 와 연결시킨다. 윤기사가 화물칸으로 점프하듯 뛰어올라 재빨리 물건들을 컨베이어 위로 밀어낸다. 얼마나 물량이 많은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이 없다. 하나 둘 다른 트럭들의 물건은 모두 정리가 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박기사가 매미고리라 불리는 잠금장치를 채우고 다가왔다. 


“윤기사 오늘 반품 부자 당첨이네.”


유니폼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은 윤기사가 이마와 인중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항상 박기사님이 당첨이셨는데 오늘은 운 좋게 제가 됐네요.” 


박기사가 점프하듯 화물칸으로 뛰어오르자 윤기사가 말린다. 

“두세요. 제가 할게요.”  


“자네가 도와준 게 있는데. 어디 날 몰염치한 인간 만들려고.” 


“그건 그렇네요. 그럼 사양 않겠습니다.”


실없는 농담을 하며 박장 대소하는 두 사람. 


“내일 가시죠? 축하할 일인데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게. 그렇게 오랫동안 이 날만 기다렸는데. 막상 그날이 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네.” 


“이제 말해주셔야죠. 무슨 물건인지 알려주시기로 했잖아요.” 


“윤기사가 먼저 갈 줄 알고 대충 둘러댄 건데 여태 남아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자네도 대단해. 아무튼 약속은 지켜야지. 내가 보낸 건 1회용 은박 담요야.” 


“죽을 고비를 딱 한 번 넘길 수 있게 해 준다는 그거군요.” 


“우리 마누라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툭하면 아프고, 아들놈은 오토바이 타고 쏘다니지, 딸내미는 캠핑인가 한다고 빨빨거리지. 내가 겨울산 구경 갔다가 조난당하는 바람에 얼어 죽었잖아. 비상용 은박 담요라도 있었으면 살았을 텐데. 가족들은 나처럼 죽으면 안 되잖아. 쪼끄만 게 얼마나 비싼지. 세 개나 사야 돼서 오래 걸렸잖아.”


“정말 좋은 선물이네요. 가족들이 나중에 알게 되면 정말 고마워할 거예요.”


“윤기사도 맨날 문자 보낸다고 콜센터에 돈 갖다 바치지 말고. 열심히 모아서 은박 담요나 사. 그깟 문자가 뭐가 중요해. 목숨이 중요하지.”


윤기사는 물건이 다 빠져나간 트럭 뒷문을 잠그며 생각했다. 

그래 문자는 매년 보냈으니까...


“가자고 내가 한턱 쏠게. 어차피 돈 남겨봤자 내일부턴 무용지물이야.” 

박기사가 윤기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하역장을 빠져나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 뒤론 수민과 환섭 그리고 진열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수민이 걸어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환섭에게 묻는다. 

“저건 또 무슨 공정이에요?” 


“배송 기사들이야. 포장팀하고 반품팀이면 몰라도 우리 같은 진열팀은 배송팀이랑 같이 일을 안 하니까 굳이 얘기 안 했어.” 환섭은 고개를 돌려 느릿느릿 뒤따라오는 진열팀 직원들에게 말했다. “자자. 얼른 가자고. 늦게 가면 반품팀한테 욕먹어.” 


관리자는 집품팀 때문에 아무래도 진열이 어려울 것 같다며 반품팀 지원을 가라고 했다. 환섭의 말로는 지각 생수를 받았음에도 자유 의지가 강한 인간들은 기적의 아침인가 하는 책으로 정신 무장을 하고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지각을 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반품된 생수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반품팀은 같은 물류센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장소 같았다. 이곳은 공정이 훨씬 더 많아 보였는데 특히나 눈길을(정확하게 말하면 후각에 이끌려) 끈 공정은 폐기팀이었다. 반품된 물건 중 깨지거나 액체가 새어 나온 물건들을 처리하는 곳인데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수산시장에서 입을법한 긴 가죽 앞치마를 입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으악. 이게 무슨 냄새야.” 

수민은 긴 바늘로 코를 찔러 뇌까지 뚫어 버리는 듯한 악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직원들은 다 깨진 까나리 액젓을 한 곳에 쏟아붓고 있었다. 

“더 부어! 다 비운 통은 세척해서 재활용쓰레기장으로. 자 어서.” 


관리자에 지시에 따라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진열팀 사람들은 코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자 또 다른 폐기팀이 무언갈 쏟아붓고 있었다. 이번엔 사람들이 코를 막지 않았다. 꽃 향기가 나는 섬유 탈취제를 폐기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만발한 꽃들의 축제 같은 향기가 까나리에게 습격당한 코를 치유하는 듯했다. 환섭을 포함한 진열팀 식구들은 모두 으으음~이라는 감탄사를 뱉으며 웃어 보였지만 수민은 그럴 수 없었다. 분명 정말 좋은 향임에는 틀림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메쓱거움이 올라오면서 속이 울렁울렁거렸다.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만 같았다. 수민은 코를 막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도망치듯 뛰어간 곳엔 소은이 있었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소은은 미친 사람처럼 반품 택배에 붙은 송장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치 반품되어서는 안 되는 물건을 이 잡듯 찾는 것 같았다. 소은은 지난 3개월 동안 수시로 뭐 생각난 것이 없다며 나의 죽음에 대해 물었다. 난 여전히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솔직히 오천만 원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왜 죽었냐는 것에 신경을 덜 쓴 것은 사실이다. 자기를 죽인 살인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야근에 철야까지 하는 소은을 보고 수민은 머릿속으로 가설을 세워봤다.


“만약 나도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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