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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Jan 14. 2021

같이, 잠자는 사이

난 앞으로도 자꾸 너에게 물을 거야. 같이 잘래?


     같이 , 잠자는 사이      


"같이 잘래?"

“...”

“같이 자고 싶어. 잘래?”

“어, 어, 아직은 우리 서로를 모르잖아?”

“알아야 같이 자? 같이 자면서 알아 가는 것 아냐?”

“야!”



나는 '리얼 연애 TV프로' 성우처럼 지난밤 있었던 일을 재현하는데 심취했다가 '툭' 휴대전화기를 내려놓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마주 앉아 있는 내내 인스타에 ‘좋아요’만 눌러 대던 J가 휴대전화기보다 더 재밌는 흥밋거리가 생긴 것이다.


“오, 이쯤은 돼야 흥미롭지, 했어?”

“야! 넌 그렇게 밖엔 못 묻니?”

“팩트가 중요한 거잖아. 했어? 좋았어?”

“잤느냐 안 잤느냐보다 그와 내가 어떤 사이인지 물어야지!”


J는 그녀 특유의 미간 찡그리기를 하며 소파 깊숙이 기댄다


“또 또 지랄 복잡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지만,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

썩어질 육체에 너무 많은 명분을 달고 시달리지 마라.

둘이 했어? 안 했어?”

“역시, 넌 자유로워. 분방한 건가?”

“네가 의미부여 과다증인 거야. 그 남자한테 솔직히 물어야지, 네 머릿속만 들여다보면 뭐하냐?

 암튼 그래서, 네 속에 담근 것들을 다 꺼내 봐. 들어줄게”



 

“야!”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 만큼 목소리도 한껏 올라가서 외마디를 내뿜으며 그를 나와 반대 방향으로 밀쳤다. 슬쩍 허리가 흔들의자처럼 뒤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시 나와 마주 보고 그가 있었다.

그의 눈은 하나의 뜻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다른 결정은 허용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있었다.


“네가 좋아. 너랑 가까워지고 싶어.”


나는 대답 대신에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술을 앙다물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그가 서둘러 잔을 맞대어 부딪쳐 왔다.


“건배.”



“슬슬 지루해진다. 다 그렇고 그런 과정 아니겠어? 갈등, 고민, 그러나! 느낌표로 불타는 밤. 난 갈등 다음이 궁금하다니까. 잘 생겼던데, 잘해?”

“야! 그도 너도 내게 ‘야’를 외치게 하는 건 똑같아.”

“진지충. 알았어. 네가 원하는 질문을 할게. 자자는 말이 불쾌했어?

널 가볍게 보는 거 같아서? 아님, 못했어?”


진지하더니 다시 그녀 다운 호기심을 드러낸다. 나라도 진지하기로 한다.


“불쾌한 거? 그건 아냐. 그와 난 친구 사이가 아닌 썸 타는 중이니까. 

자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 건 내가 매력적인 거 아니겠어?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까.

그냥 꼬시는 걸 수도 있고. 잤다가 그걸로 끝일 수도 있고.

머리를 냅다 굴려야 한다고.

이런 경우도 알코올 중독 체크리스트나 자존감 지수처럼 점수를 매겨 볼 수는 없나?

ㅡ 완벽남입니다. 당장 이 남자와 잠자세요!

ㅡ 애정도 90 이상입니다. 안심하고 오픈 마인드 오픈 보디.

ㅡ 단 체크리스트 결과는 개인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주의하세요.

ㅡ 20% 경고! 형편없는 쓰레기일 확률 높습니다. 여자만 보면 들이대는 수컷입니다.’

이런 거 말이야. 그린라이트가 켜진 그와 나 사이에 사이키 조명이 켜지든 은은한 침실 등이 켜지든 

자연스러운 전개 아니겠어?

다만 안심 전개가 가능할 심증 너머의 검증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와 나 사이의 방에 붉은 등을 켜기엔 불안하다고”

그린라이트가 켜진 그와 나 사이에 사이키 조명이 겨지든 은은한 침실 등이 켜지든 자연스러운 전개가 아니겠어? 다만 심증 너머의 검증이 있어야 하는데...


“지루했다. 지루한 건지 복잡한 건지.”

 J는 모래를 씹은 표정이지만 몸은 내게로 다가왔다.

“그래도 집중해서 들은 거 알지? 마 우린 친구 아이가.”

“어이구 네가 내 친구라 다행이다. 내 친구 아니면 널 욕하고 다녔을 거야.

아냐, 미안해. 넌 솔직해.

무엇보다 담백해. 그래서 너에게 털어놓고 싶었어.”

“흠. 장황하게 늘어놓더니 아부까지 하는 걸 보니.

넌 이미 그 남자를 원해.

마음이 원하니까 몸도 '예스'하고 싶은 거고.

그런데 '예스'를 못 하게 만드는 네 안의 복잡성은 뭘까?

남녀의 사랑이 마음과 육체가 함께하는 건 알지만, 네겐 그걸 허락할 허용 수치가 필요한 거 아니야?

아직은 '귀한 나'를 허락할 그놈의 정성이 부족하다?

또는 그놈의 실체가 아직은 덜 치명적이다. 그거 아냐?”


J가 특유의 폭풍 전개를 펼치며 나를 몰아세운다. 지금은 내가 나에게 솔직해야 한다.

그녀 앞에선 솔직해지기로 했으니까.

친구라는 이름표를 서로의 인생에 허용하게 되는 순간, 솔직함은 우리의 전제조건이 된 거니까.

이 순간엔 그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솔직해져야 한다.


“그는 매력적이야. 그런데 가볍게 보이는 건 싫어서”

“두려운 거네!”

“두려워? 여자가 조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2020년을 살자. 친구야.

남자와 여자의 잠자리가 조심할 거니? 해로운 거야? 

일어나지도 않은 가설들로 노심초사하지 마.”

“복잡하다.”

“누구나 그래. 너의 두려움도 당연한 거야. 그러나 같이 잠잘 사이가 될까 안될까는 결정의 문젠 아니잖아? 그와 인연의 파도를 타기 시작한 것도 생각이 앞섰다기보단 느낌이었잖아. 파도를 타.”

“파도 타다가 파도 휩쓸려 바다에 빠지면?”

“얘가 욕구에 명분을 달려다 아재 개그만 늘었네.”

우린 동시에 웃어버렸다.

허용 수치 따지기보단, 인연의 파도를 타. 썸을 타기 시작한 것도 생각보단 느낌이었잖아.


한참을 깔깔거리다가 J가 다시 말을 건넨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니까. 네가 원할 때 같이 자. 그 남자가 좋아?”

“응 좋아. 그래도 더 지켜봐야.”

“됐다. 됐어. 연애마다 신랑감 찾기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연애를 누려. 이별도 누려. 개 같은 놈 만나면 너도 물고, 멋진 놈 만나면 같이 멋져지고.”

"넌 그래서 지난번 이별 때 콧물, 눈물범벅돼서 전 남자 친구 집 앞에서 울부짖었어?”

“아픈데 건드리네. 반칙이야. 우아한 이별이 어디 있냐? 사랑도 이별도 삼류답게 해야 미련 없더라. 그러면서 크는 거야. 연애도 자꾸 해야 늘지. 야, 말 돌리지 말고 잤니 안 잤니?”


대답 대신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거침없는 그녀의 솔직함 덕분에 내 조심스러움이 거추장스러운 걸 알게 되었으니까.     

사랑도 이별도 삼류답게 해야 미련 없더라. 그러면서 크는 거야.




“난 앞으로도 자꾸 너에게 물을 거야. 같이 잘래?”


그의 말이 다정하게 들려왔다.


같이 자는 사이가 되는 건 어떤 사이가 되는 걸까?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순간 난, 그에게 답한다.


“응, 나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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