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1일그날.퍼즐의 한 조각
2011년 7월 11일.
장마가 온다는 소식에도 햇볕이 쨍쨍거려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지만, 난 집안의 커튼을 세탁하기 위해 분주했다.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더위에 질식할 것만 같은 바짝 마른날이었다. 의자 위에 올라가서 커튼을 걷어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가녀리지만 지긋한 목소리가 114 안내방송처럼 이어졌다. 대본을 읽는 것처럼 속사포를 쏘아댔지만 침착하게 할 말을 다 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누구? 동거녀라고요?”
내 질문은 하나였는데 수화기 너머 여인은 사연을 쏟아냈다. 아내가 있는 남자와 동거해 온 지 6년이 됐고, 이혼 후 단칸방에 살던 자신과 그녀의 자녀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줬다고. 지금도 같이 노래방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자꾸 여자들 문제로 속 썩여서 걷어낸 여자만 여럿 된다고. 이야기가 끝장 드라마 줄거리였다.
“다른 사람과 착각하시는 것 같아요.”
“당신이 뭘 알아! 나랑 헤어질 사이가 아니야. 당신을 사랑한다고 헤어져 달라기에 내가 나서는 거야, 정신 차려! 부인도 못 말린 우리 사이에 끼워 줄 거 같아? 난 안 헤어져. 여자 질에 돈질에 속 썩였어도 나한텐 내 남자야. 안 헤어져! 못 헤어져!”
카랑카랑 독이 오른 그녀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더는 들을 수가 없어서 전화를 끊었지만, 그녀의 독은 어느새 내게 옮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연락이 자주 안 되고 그때마다 변명들이 앞뒤가 안 맞아서 불안하기만 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이거였어!’
세탁하려 걷어 낸 커튼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부르르 떨며 두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