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짠 Mar 28. 2021

시간의 언어 4

십 년전처럼 이곳에 그 남자도 있다


“도착했어.’

남편이 시동을 끄며 깨운다.

눈을 조심스럽게 뜬다. 여전히 2011년에 있다.

집으로 서둘러 들어가니 내가 살던 그 공간이었다. 쓰던 가구와 물건들이 보였다. 눈물이 울컥 맺혀왔다.

돌아왔다. 알 수는 없지만 10년 전의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자고 있었다.

“민지야, 엄마 왔어.”

아이의 토실한 엉덩이를 토닥거리다 부둥켜안았다. 다시 어린 너를 안을 수 있다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통을 받기 위한 벌인 지,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린 딸을 다시 안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어!’

아이를 안고 편안하고 깊은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고 십 년 전으로 돌아온 일상을 인정하며 딸을 마주하고 앉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십 년을 살다가 다시 돌아온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남편도 딸도 엄마가 달라진 걸 모른다.

난 달라진 것이 없었다. 39살의 모습이었다.     


등교 준비를 세심하게 챙겨주고 같이 학교까지 걸어가니 아이가 좋아했다.

“엄마, 왜 달라졌어?”

“엄마가 달라진 거 같아?”

“응, 예전의 엄마로 돌아가서 좋아”

"예전의 엄마?"

걸음을 멈추고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아이는 알아챈 걸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민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매일 바쁘다고 했잖아. 그런데 오늘은 학교도 같이 가고. 다시 착한 엄마가 됐어."

아이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와락 나를 안으며 종달새처럼 속삭였다.

"엄마를 칭찬해."

그 순간,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이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감출 수 없는 눈물은 어떻게든 티를 내야 했는지 어깨마저 들썩이게 했다. 울먹임을 다림질하듯 재빠르게 펴고 민지의 칭찬에 응답했다.

"엄마도 민지를 칭찬해."

그리고 말없이 민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에 기도를 담아 쓰다듬었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 먼 길을 돌아왔어. 너에겐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면 좋겠어. 너를 안을 수 있으면 된 거야. 뭘 따지겠어? 죽은 것도. 꿈도 아니야. 이건 기적이야. 주어진 기적을 감사하면 되는 거야.’


그때 휴대전화가 웅 웅 웅 진동했다.

그 남자다.

십 년 전처럼 이곳에 그 남자도 있다.

그러나 다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달라진 건 나야.’

그때도 이것을 알았더라면.         


#단편소설 #사랑 #이별

이전 03화 시간의 언어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