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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24. 2021

시간의언어 2

2021년을 살고 있던 내가 2011년의 그를 다시 만났다.

 ‘고속도로가 아니야.’

여긴 십 년 전 사고를 냈던 그곳. 찬찬히 사고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때 거기야!’

십 년 전 사고를 냈었다. 정지신호에 멈추지 못해 앞차를 치었고 따라오던 뒤차가 내 차와 충돌하는 삼중 추돌 사고였다. 

‘그런데 난 왜 여기 다시 있는 거지?’

요동치는 심장마저도 숨죽이는 듯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른다. 

곧 구급차가 오더니 피해차량에 탑승했던 사람들을 싣고 황급히 달려갔다. 나는 구급차가 아닌 경찰차에 태워졌다. 

‘이 사고를 또 보다니, 십 년 전 일인데, 왜? 오늘 사고는 고속도로에서 났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한 상황은 아랑곳없이 교통사고 처리는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운이 좋아요. 운전석 범퍼가 그렇게 망가졌는데도 다친 데가 없으니, 다행히 다른 분들도 크게 다친 곳이 없답니다.”

욕을 해대거나, 나무라거나, 비난하거나 그런 것 없이 사건을 요약해 주는 경찰의 업무적인 말투는 차라리 위로되었다. 

경찰서에 도착한 후 교통사고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십 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질문에 성실하게 진술할 뿐, 오늘과 다시 돌아온 과거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건 나를 구하러 달려올 남편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오늘도 그날과 똑같이 남편이 오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두렵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두렵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은 그도 해결할 수 없을 테니까. 

    

“7월 11일. 2011년 맞아요? 2021년 아닌가요?”

경찰이 내민 서류에 사인하며 물어봤지만 2011년이 맞았다. 더는 꿈이라고 여길 수도 없었다. 나는 과거에 왔다. 

‘핸드폰!’

조사를 마치고 덩그러니 앉아 있으니 그때야 휴대전화와 소지품이 생각났다. 

‘그것들은 지금의 내 것일까? 돌아온 이곳의 것일까? 옷차림은 똑같은데.’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가방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었다. 

“제 가방과 핸드폰은요?” 

“여기 있습니다. 차 안에는 이 가방만 있었어요. 핸드폰도 가방 속에 있습니다.”

가방은 오늘 아침 들고 나온 게 아니었고, 휴대전화도 역시 지금의 내 것이 아니다. 

2011년 사용하던 가방과 휴대전화. 

‘그럼 나는?’

소품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서 얼굴을 쳐다봤다. 모든 것이 십 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남편이 나를 알아볼까? 미래에서 왔다는 걸. 아니, 다시 39살로 돌아온 걸 알까? 그도 나처럼 다시 돌아왔다면 정확한 날짜를 알지 않을까? 타인은 몰라도 가족인 그는 이 놀라운 일의 정체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종잡을 수 없는 질문들이 맴돌 뿐 분명한 것은 없었다. 남편을 기다리며 시간의 반복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했다. 

사고가 나고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 무렵 그가 경찰서로 뛰어들어 왔고 난 너무나 반가워 포옹을 할 뻔했다.

“민지 아빠!”

다가가 그를 반겼다. 그도 39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옷이 젖을 만큼 급하게 달려온 것과는 달리 차가운 눈빛을 보곤 알 수 있었다. 그는 2011년을 살고 있다는 것을. 

2021년을 살고 있던 내가 2011년의 그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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