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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24. 2021

시간의 언어 1

살아간다는 건 매일 어디론가 출발해야 하지만

어디론가 출발한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세미나를 가기 위해 나서는 길이지만 동행 없는 일상보다 차라리 달리는 차 안이 외롭지 않아서일까. 

낯선 곳으로 운전하는 게 좋았다. 태어나서 잘한 게 뭐냐고 물으면, 그중 하나가 운전일 만큼 그 순간이 편안했다.

나의 작은 우주선이 오직 한 사람의 고객을 태우고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세미나는 핑계고 다른 도시로 오랫동안 운전하며 가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일기예보도 무시하게 했나 보다. 

가자, 다른 곳으로.      

   

폭우다! 고속도로는 한 치 앞을 보기도 어려웠다.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기분은 사라지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상보다 심하게 쏟아붓는 비에 비상등을 켜고 운전하지만,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긴장감은 동공을 커지게 했고, 심장도 차렷 한 채 두근거림마저 조심스러웠다. 쏟아지는 빗물을 와이퍼가 쉼 없이 닦아냈지만 차 앞 유리창에 구멍이 뚫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느껴지고, 안갯속 마냥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어디론가 출발해야만 하지만, 이런 폭우에 세미나를 가겠다고 출발한 선택이 후회됐다. 하지만 위험을 알면서도 출발했으니 무조건 달려야 한다. 폭우 속이라도 계속 달려야 안전한 곳에 도착하지 않는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듯 마음도 불끈 용기를 잡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퍼붓는 폭우에 고속도로는 폭포 속을 가로지르는 듯했다. 

‘퍼붓는구나.’

혼잣말이 비명처럼 나오는 그 순간 물탱크에서 대책 없이 물을 부어대는 듯 차 위로 빗물이 쏟아지고 이내 차는 물속에 휩쓸려 휘청거렸다. 물의 흐름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드르륵드르륵 찌 이직 

차가 빗길을 미끄러지며 고속도로 위에 날카로운 고음을 일으켰다. 

“아악.”

쾅쾅쾅 지이익

쇳소리를 지르며 차는 멈췄다. 나는 게슴츠레 눈을 뜰뿐 의식이 몽롱하다. 

‘사고가 났구나. 몸이 마비된 건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핸들에 고개를 박은 채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심장이 대책 없이 뛴다. 

‘결국, 사고가 났구나, 크게 다친 건가? 어쩌지? 나 좀 구해줘요. 도와줘요.’

목소리가 안 나와서 속으로 외치고 있는데 누군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경찰이 보였다. 

‘아, 됐다. 살았다.’

경찰의 부축을 받고 겨우 차에서 내렸다. 

‘어? 비가 그쳤나?’ 

비도 오지 않았고 고속도로도 아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도심 사거리 교차로였다!

범퍼에서 연기가 났다. 견인차와 구급차, 경찰차와 사람들로 혼란스러운 사고 현장이었다. 시야에 들어온 장면이 빠르게 원을 그리며 회오리처럼 돌았다. 

‘이거 뭐야? 내가 왜 여기?’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꿈을 꾸는 건가? 죽은 건가?’

찰나에 많은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경찰이 나를 부축해 일으키며 현실로 안내했다. 

“괜찮아요? 사고 난 거 기억나세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직접 운전하신 거 맞나요? 움직일 수 있어요?”

알고 있다. 난 이 일을 알고 있다. 

믿을 수 없지만 십 년 전 그날이니까. 십 년 전 그날로 다시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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