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임장을 한다

#07. 신들의 부동산

by 목양부인



나는 호불호 중에 불호만 강한 편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제일 좋은 건 없다.


나 같은 사람은 선택 장애가 온다.

뭘 좋아하는지, 뭐가 좋은지를 모르니

몇 개 골라내서 집중하는 것조차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똥을 피하고 최악과 차악을 거르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면서

선택의 폭을 조금씩 좁힐 수밖에.


전반적인 시세와 평균치의 감이 없으므로

전체적인 느낌과 눈대중로나마 대세를

익혀보려고 랜선 임장을 시작하게 됐다.






물론, 일일이 발품을 팔면서 공기와 바람을 느끼고 그 지역 특유의 냄새를 맡고 땅의 질감을 밟아보고 주변을 살피며 상가는 어떤 브랜드의 몇 층짜리가 있고 주차장과 화장실은 편리해 보이는지, 버스는 몇 개의 종류가 몇 분마다 몇 대씩 지나가는지, 건물은 고개를 얼마나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지, 양지바른 정도와 스산한 기운과 소음과 쓰레기 등 환경은 어떠한지, 실제로 체감하는 인구 구성과 밀집도, 놀이터와 공원 등 편의시설까지 모두 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리멸렬한 호불호 속에

끝내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였으니

나는 오늘도 지도 앱을 켜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세 파악에 나선다.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 이제 뭘 해야 할지

방황하던 나는 맞고의 세계에 잠시 빠졌다.


사이버머니는 인심이 좋아 게임에 접속만 해도

언제나 섭섭지 않게 지갑을 두둑이 채워줬다.

판돈을 다 잃고 게임방에서 쫓겨나 빈손이라도

어서 재기하시라며 십만 원을 또 찔러주는 것.

덕분에 남의 돈이자 가짜 돈을 움켜쥐고

나는 5고를 하염없이 질러댈 수 있었다.


그런데 사이버 세상에도 계급은 존재했다.


평민 - 하수 - 중수 - 고수를 넘어

신 - 영웅 - 초인의 경지에 이르

점당 판돈이 말도 안 되게 뛰어오른다.

자산도 쉼표를 셀 수 없을 만큼 커진다.


평민과 중수 사이만 왔다 갔다 맴돌던 나는

당연히 게임에서 그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푼돈으로는 놀지를 않았으니까.


분명 누군가를 오링시키고 게임머니를

획득해가며 그 단계까지 올라갔을 텐데,

이미 노는 물이 한참 다른 것이다.


그 승리가 정말 실력인지 확률의 운인지

게임상 로직인지 접속 시간의 공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어쩌면 현질일지도 모르지)

그들의 자산은 말도 안 되게 극단적이라

현실감이 전혀 없어서 부럽지도 않았다.






랜선 임장으로 단지 시세를 둘러보면

그때 봤던 사이버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30억이 넘는 비현실적인,

맞고 게임 초인이 모은 재산과도 같은,

쉼표가 몇 개인지도 모를 집 값에 놀라며.


처음에는 신기해서 시세를 훑어봤지만

이제는 뭇 동네 자체를 아예 패스해버린다.

노는 물이 한참 다른 것이다.

물과 섞일 리 없는 콩기름 계층냥.








스마트폰으로 랜선 임장을 거듭할수록

패스하는 동네가 점점 어나고 있다.

호불호 없는 내겐 잘된 일이라 해야 할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내 손가락 강제로 접어주고 있는 것 같은...


인간계의 부동산 가격은 과연 얼마쯤일까?

지금 가진 자산으로는 하수나 평민은커녕

추노꾼이 쫓아다닐 각이다. 고독하구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