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품음
의도치 않게, 그러나 매 순간 의도한 대로 순간의 여러 겹을 지나고 보니, 어느새 직장인에서 심리상담사로 그리고 한 사람의 부모가 되어 있네요.
이 브런치 북은 지금도 매 순간 느끼는 고립감과 성찰 중독자로서의 시선, 아이를 키우며 지나온 터널과 성장,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느낀 상처와 회복의 순간들에서 얻은 배움의 묶음입니다.
그리고 사적 고백입니다.
심리학은 책 속 이론으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삶의 순간에서 체득하는 것 일 거예요.
이제는 이해와품음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는 상담사가 되어, 마음의 안내자가 되어,
내가 나를 안전하게 이해하고,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데에, 누구나 조금이나마 용기를 갖길 바라며 적습니다.
<서툼과 버팀으로 알게 된 이해와 품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앞 서 이해와품음과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이해, 품음>
이 두 단어는 제가 살아온 시간 동안 가장 절실히 원했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경험, 그리고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경험.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돈을 벌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맞는 친구와 신문배달을 하자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속삭였답니다.
끝내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시도만으로도 어린 저에게 기특하다 말해주고 싶습니다.
책임보다 자유가 더 익숙했고, 서툴렀지만 세상에 참여하고 싶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가족의 흔들림은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에서 왔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윗 세대 도움 없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내신 전형적인 분들이었습니다. 힘들어하시면서도 또 묵묵하셨죠.
삶의 무게를 모든 가족 구성원이 분담한 것이라고 이제 이해합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시급이 1,800원에서 2,1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급하면서도 서툴게, 성인이 되었지요.
저는 불안하고 조급한 아이였습니다.
기대와 의욕만큼이나 부끄러움과 억울함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때는 세상이 요구하는 모범적인 공식을 따르는 것이 당연했던 시기였고, 저 역시 부지런히 모나지 않게 우등생처럼 살아내려 조바심 내던 시기였습니다.
졸업 후 스물다섯, 직원 세 명뿐인 작은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겨울이면 발에 담요를 둘러야 하는 소박한 사무실이었지만,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이 저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스물일곱에는 대기업 외국계 은행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습니다.
두 해를 버텨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고, 다시 두 해 뒤에 승진했습니다.
계약직으로 시작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승진까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
더 이상 신입을 뽑지 않는 지금의 시대가 오기 전,
운 좋게도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서툴렀고, 잘 해내고 싶은 그 마음, 자라온 환경도 본성도 다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인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게 가능한가 싶은데, 모든 것이 가능했던 곳이구요.
그 전쟁터에서 좋은 친구도 만나고 무엇보다 제가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단단히 발견한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저를 보호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거든요.
2015년, 서른다섯. 결혼과 동시에 퇴사, 그리고 심리치료대학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하고, 아주 잠깐 기뻤는데, 대학원 입학 2개월을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사회가 원하는 모범생이라는 역할에 몰입하다 보니, 그저 코앞으로 다가온 오늘과 내일이라는 현실을 살아내느라 바빴던 거 같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무게인지 전혀 알지 못했구요.
많은 분들이 그런 현실 앞에 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출산 2개월 전까지 왕복 4시간 광역버스를 타며 학업과 상담, 수련을 이어갔습니다.
스스로를 몰아봍이는데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그러다 결국 잠시 멈추고, 천천히 걷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향해 답이 없는 질문을 해야 했습니다. “아이와 내 미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 답 없는 선택 앞에서 마음은 금세 시들었고, 산후우울과 번아웃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일로 많은 상담을 받았답니다.
저에게 상담은 스스로 얻은 소중한 삶의 경험이에요.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저를 다시 다잡아준 것은 심리학 공부였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상담사와 내담자들이었습니다.
터널에도 끝이 있다는 것, 그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인생에서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나의 애착 패턴과, 달라지고 싶다면 뼈를 깎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아이를 키우는 우리 육아동지들이라면 다 아시겠죠.
그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성장한다는 것도요.
그리고,
추억과 미련으로 많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길에서 살아내는 많은 분들의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삶은 애도의 연속이고,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겪어내지 못하면 마음속에 짐처럼 남겨두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10여 년간의 직장생활,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또, 상담을 삶에 들여온 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무게를 함께 지면서,
이리 애쓰는 나의 손을 내가 다정히 잡아주면서, 다시 서서히 이끌어 오게 되었네요.
나의 간절함은 어떤 것이었는지 깨달으며 삶에 대한 애정으로 결국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기에,
지금 이렇게 부모이자 학생으로, 상담사로 살아가는 저를 마주하게 된 것이겠지요.-
저는 저는 종종 아니 자주 스스로를 탓하곤 했었습니다.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조금만 더 최선을 다했더라면…” 그러나 곱씹어보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서툼을 겪으면서도 늘 나대로 버텨왔고, 그 버팀이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해하고 품으니 마음이 많이 편해집니다.
제가 살아온 시대와 지금 세대는 다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감당했던 저희 세대와, AI의 물결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지금 세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어쩌면 더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용기 내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제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집니다.
결국 우리가 걷는 길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서툼과 버팀을 안고 발버둥질로 살아갑니다.
그 서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버팀을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서툴러도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이 모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내가 나를 토닥이면서 살아내고 있는 당신을.
응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