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 장소를 정해달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장소를 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는 장소가 없다.
밤 시간대의 외출을 한 것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모든 것이
낯설다.
출근 때 입었던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나, 평소에 입던 편한 복장도 아니다.
난 그 사이 어느 구간인가에
어중간하게 멈춰버린 옷차림으로
거리로 나왔다.
집에서 창문으로 바라본 밖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러나 거리는 밝았다.
소란스러움은
거리의 불빛에
실제보다 더 많은 광량을 부여하고 있었다.
악수를 마친 그는
웃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그는
블랙이다.
실루엣은 흐리다.
여전히 아는 장소는 없다.
그를 기다리며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머리가 아프다.
늘 가는 곳으로
나는 발걸음을 향했다.
밤의 그 곳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여전히 오른쪽에 서서 걷는다.
가는 곳은
첫 만남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번잡스럽고
시끄럽고
대충 사람들로 인해
에너지는 고이지 않고 흩어져버리는 장소니까.
오래된 건물의 지저분한 엘리베이터
그 앞에는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는 입구의 계단을 채 올라오기도 전에
나를 쳐다본다.
나의 시선은 아래로 떨어진다.
여전히 웃는 낯이다.
검은색 군화는 10cm가 넘었었나.
그는 시선을 여전히 발에 두고 물어본다.
“이런 건 어디서 사요?”
“네? 아...”
그는 다시 구두 이야기를 한다.
“예전에 이런 걸 신었던 것 같은데.”
그와 나 사이의 공기에는
미세한 금속성의 직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딱히 어디서 샀다고 하기도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다시 유행이래요.
닥터 마틴이라고.”
검은 군화에 노란색 스티치가 선명하다.
그 선명함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어쩌면 선명함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람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말 대신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확인했다.
차가운 금속의 엘리베이터 출입구는
유광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건물의 연식을 가늠할 만큼의
미세한 스크래치들의 형태로 인해
붉은색 숫자는 멈춰 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분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