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법서 파헤치기
McKee의 'Story'는 1997년에 나왔지만 지금도 할리우드에서 바이블로 통한다.
왜일까?
단순한 공식을 팔아먹는 게 아니라 스토리의 본질을 파헤치기 때문이 아닐까?
로버트 맥기가 던지는 가장 강력한 한 방.
"구조는 캐릭터고, 캐릭터는 구조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무슨 말 일까?
내가 경험하고 깨달은 그 핵심을 나의 레퍼런스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참고로 이 책은 466페이지다. 두껍다. 벽돌만하다.
읽고 나면 당신의 시나리오는 더 두꺼워질 거다. 고칠 게 너무 많아서.
맥기는 두 가지를 구분한다.
겉으로 보이는 ‘캐릭터 라이제이션'과 '진짜 캐릭터'
‘캐릭터 라이제이션'은 외면이다.
'나이, 직업, 말투, 옷차림, 성격.' 우리가 누군가를 관찰해서 알 수 있는 모든 것들.
번역하면 '인물 구축' 이나 '인물 묘사' 다.
하지만 '진짜 캐릭터'는 인물 앞에 닥친 어떠한 선택의 순간에 드러난다.
압박 앞에서, 딜레마 앞에서, 그 사람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 그게 진짜다.
록키 발보아는 필라델피아의 삼류 권투선수다. 사채업자 밑에서 일 하고, 말도 더듬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다. 이게 캐릭터 라이제이션이다.
하지만 아폴로 크리드와의 경기 제안이 닥쳐온 순간, 그는 선택한다.
두려움 앞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링에 오른다.
"난 그저 끝까지 서 있고 싶을 뿐이야."
닥쳐온 순간에 능동적 선택을 한 이것이 ‘진짜 캐릭터’ 다.
맥기는 말한다.
최고의 작품은 진짜 캐릭터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내면을 변화시킨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가 목이 찢어져라 말하는 ‘캐릭터 아크다.’
그렇다면 구조는 어떤 역할을 할까?
맥기는 명확히 정의한다.
"구조의 기능은 점점 더 강한 압박을 제공해서 캐릭터를 점점 더 어려운 딜레마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점점 더 어려운 위험부담이 큰 선택과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 점진적으로 그들의 진짜 본성을, 심지어 무의식적 자아까지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다.
월터 화이트는 평범한 화학 교사였다. 그런 그가 폐암 진단을 받고 마약을 만들기 시작한다.
초반엔 "가족을 위해서” 라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압박은 강해진다. 경쟁자들, 마약 조직, DEA, 가족. 그리고 각각의 압박 앞에서 월터는 ‘선택’ 한다.
시즌5 마지막에 가면 그는 아내인 스카일러에게 고백한다. "나는 그걸 나 자신을 위해서 했어. 그게 좋았어. 난 그걸 잘했고, 진짜로 살아있다는 느낌이었어."
이게 캐릭터 아크다. 평범한 화학교사에서 하이젠버그로의 변화.
구조가 압박을 만들고, 압박이 선택을 강요하고, 선택이 ‘진짜 캐릭터’ 를 드러내고, 그게 쌓여서 변화(캐릭터 아크)를 만든다.
맥기는 스토리를 작은 것이 뭉쳐서 커지는 패턴의 연속으로 본다.
비트(beat)는 가장 작은 단위다. 여러 비트가 모여 씬(scene)을 만든다. 씬은 더 큰 변화를 만든다. 가치의 전환이 일어난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사랑에서 증오로. 여러 씬이 모여 시퀀스(sequence)를 만든다.
시퀀스는 더 큰 극적 변화를 만든다. 여러 시퀀스가 모여 액트(act)를 만든다.
액트는 주인공의 세계를 뒤집는다.
라이언 스톤 박사는 우주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다.
첫 액트에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ISS로 간다. 간신히 도착하지만 산소가 없다.
두 번째 액트에서 그녀는 중국 우주 정거장으로 향한다. 도착하지만 추진력이 없다.
세 번째 액트에서 그녀는 산소(삶)를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코왈스키의 환영이 나타난다. 그녀는 선택한다. 삶을 이어가기로.
각 액트마다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뒤집힌다. 이게 맥기가 강조하는 구조의 역할이다.
로버트 맥기에게 스토리 이벤트는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다. 가치의 전환이다.
가치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자유와 속박, 진실과 거짓, 용기와 비겁함, 충성과 배신. 이러한 인간 경험의 중요한 것들이다.
스토리 이벤트는 이 가치를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또는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시킨다. 그것도 갈등을 통해서.
윌리엄은 평범한 서점 주인이다. 안나는 세계적인 스타다.
처음 만남에서 평범함(-)이 설렘(+) 으로 전환된다.
언론 노출로 행복(+)이 수치(-) 로.
안나의 거짓말로 신뢰(+)가 배신(-) 으로.
기자회견에서 절망(-)에서 고백(+) 으로.
각 씬마다 가치가 전환된다. 이 전환들이 쌓여서 큰 이야기를 만든다.
맥기는 Classical Design, 즉 Archplot 을 가장 강력한 구조로 본다.
그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단일 주인공' 이다.
왜 주인공은 하나여야 할까?
관객이 감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주인공’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와 함께 숨 쉬고, 함께 두려워하고, 함께 기뻐한다.
주인공은 명확하다. 매기 피츠제럴드다.
프랭키는 중요한 조연이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우리는 매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매기의 ‘선택’을 따라간다.
우리는 매기가 링에 오를 때 응원하고, 매기가 돌아설 때 긴장하고, 매기가 쓰러질 때 그녀와 함께 무너진다.
[*Save the Cat (세이브 더 캣): 주인공이 초반에 고양이를 구하는 등 선한 행동을 보여줘서 관객이 즉시 그를 응원하게 만드는 기법. Blake Snyder 가 명명한 용어로, 주인공을 응원받게 만드는 모든 장치를 의미한다.]
주인공이 최고의 압박 앞에서 딜레마에 직면한다.
A를 선택할 것인가, B를 선택할 것인가.
둘 다 대가가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선택한다. 행동한다.
그 행동의 결과로 돌이킬 수 없는 가치가 전환된다.
토니 소프라노도 그렇다. 잔인한 마피아 보스지만 공황장애로 심리치료를 받는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오리를 사랑한다. 이 모순이 그를 살아있게 만든다.
시간여행이라는 능력이 있지만 결국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특별함과 평범함의 모순. 이게 그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로버트 맥기의 'Story'는 스토리의 본질에 대한 책이다.
‘구조와 캐릭터’ 는 분리될 수 없다. 구조가 압박을 만들고, 압박이 선택을 강요하고, 선택이 진짜 캐릭터를 드러낸다.
주인공은 명확해야 한다. 하나의 중심, 하나의 여정.
주인공은 응원받아야 한다. 악당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관객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클라이맥스가 전부를 결정한다. 마지막 선택, 마지막 행동, 마지막 변화. 그게 스토리의 의미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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