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백

by 누런콩

나는 3교대 근무자다. 오전, 오후, 야간으로 일한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24시간 돌아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교대로 일하기 위해선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며칠 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야간 근무는 아침 여섯 시 반에 끝난다. 그러고도 한 시간 반이 지난 8시에 회사 건물 내 위치한 의료센터로 가야 했다. 제일 빠른 예약이라도 그랬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근무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을뿐더러 퇴근 시간이 지나고서도 뜬눈으로 사무실을 서성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의료센터에서 주는 검사복으로 갈아입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사건은 심전도 검사를 받을 때 일어났다. 의사는 내게 “처방받은 약 없죠?”라고 물어왔고 나는 무심결에 “아빌리파이요”라고 대답했다. 의사가 “그게 어떤 약이죠?”라고 재차 물어왔을 때 나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정신증이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뿔싸. 여기가 회사 내 의료센터라는 걸 잊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의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무언가 계속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의사는 내게 한마디도 먼저 건네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 보려는 내가 “이거 원래 찌릿찌릿한 건가요?”라고 했을 때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반응한 게 전부였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신질환을 얻었다.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2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불안감에 시달렸다. 처음 발병했을 땐 정신분열 증상이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약을 먹는 동안엔 멀쩡하게 지냈다. 오랫동안 병원에 내 병명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의사는 더 두고 봐야 안다며 진단 내리기를 미뤘다. 처음 발병한 지 12년 만에 ‘양극성 장애’라는 진단명을 얻었다. 다른 말로 하면 조울증이다. (진단명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병원비를 청구하거나 다른 서류를 떼야할 때는 그냥 ‘정신증’이라고 적어 내고 말았다. 내가 복용하는 아빌리파이의 양은 새끼손톱의 반만큼도 안 된다. 의사와 상의 없이 두 번 단약 했고 그때마다 병증이 재발했다. 약을 빠짐없이 먹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야 지금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나는 꽤 솔직하고 협조적인 환자다. 외래에 빠진 적이 없고 병원에서 하는 말도 이제는 고분고분 다 듣는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아빌리파이를 처방받기는 했는데요, 정신증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때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기 전이었다.) 복용하는 약은 아주 소량이고요, 약만 먹으면 일상생활엔 전혀 문제가 없답니다? 뭐 이렇게 말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그곳이 다름 아닌 ‘회사’였기 때문이다.


회사에는 흉흉한 소문이 많이 돈다. 사람이 많아지면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둥 인력 감축을 위해 희망퇴직을 먼저 받을 거라는 둥. 우리 회사는 현재 인수합병 중이다. 요즘 같은 시기엔 나도는 소리 하나 그냥 흘려듣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내 심장이 턱 내려앉게 만드는 소문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를 이용하면 그걸 빌미로 회사가 퇴직을 권고할 거라는 것이다. 이건 합병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말이다. 퇴직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은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 행여나 고민이 생기더라도 밖에서 해결해야지 회사 안에서 해결하려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나 뭐라나. 나야 뭐, 입사 전부터 병을 달고 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에 와서 질병이 생긴 사람들은 어떡하나? 병은 회사에서 얻고 밖에서 내 돈 내고 몰래 조용히 해결해야 하나? 가뜩이나 정신과 상담은 진입장벽도 높은데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하고 어쩌냔 말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적인 자리에서 정신질환 이력을 밝히기는 어렵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암암리에 당사자에게 가해질 불이익 때문이다. 지난 사무실에서 나는 주말 1인 근무를 배제당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안 된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단약 후 사무실에서 병증이 나타나 병원에 실려 간 적이 한 번 있었다. 야간 근무만이라도 빠지기 위해 나는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게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몰라 불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제주도 지점으로 발령 낼 사람을 구하는 메일에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간다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보내지 않았다. 상황은 몇 번이고 반복됐다. 어느 날 인사 담당자와 면담하고 온 선배에게서 “1인 근무에 부적합한 사람이 있대”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더 말을 이어가다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아 그래요?”하고 말았다.

가끔 정신질환자에 관한 뉴스가 사무실 TV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면 “그래도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좀 무섭지 않아?”라는 반응이 나오곤 한다. 미디어가 정신질환을 다룰 땐 범죄에 연루되어 있을 때가 많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다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닌데, 다른 사회적 맥락도 같이 봐야 하는 건데……. 그러나 나는 말실수라도 할까 봐 입을 꾹 닫는다. 잘 숨겨온 정신질환을 굳이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한다.


정년까지 오래오래 회사에 다니고 싶다. ‘이번 합병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이번 위기를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남자’는 다짐으로 아등바등 살아가는 데 지쳤다. 좀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아픈 몸을 가지고서도 남들과 똑같이 부려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면 이 문장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던 나날이었다. 더 이상 약을 끊지 않을 것이다. 꼬박꼬박 병원에 갈 것이다. 10년을 버텼듯 20년도, 30년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내 말을 곧이 믿어주겠나.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조금 다르게 내게 떠오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두려워했다.

이전 11화새봄맞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