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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Mar 23. 2024

나는 소망한다 우리가 덜 일하는 것을

오늘도 밥을 마셨다. 회사에서 원칙적으로 점심시간은 1시간이지만 나 같은 교대 근무자는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그놈의 ‘24시간 운영’ 부서이기 때문이다. 매번 후다닥 밥을 해치운다. 나는 국내 한 항공사에서 일하는 운항관리사다. 하루는 오전, 오후, 야간근무로 나누어진다. 매 근무에 식사 시간 1시간을 포함하여 9시간씩 일한다. 다행히도 근무자의 피로 누적 방지를 위하여 오후 근무 다음 날엔 오전 근무를 할 수 없다. 야간근무 다음 날은 쉬어야 한다. 2017년 처음 입사했을 땐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었다. 피로관리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는 대상자가 아니어서 밤늦게 퇴근하고 다음 날 새벽에 출근해야 하기도 했다.


내가 참는 건 또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끊임없이 커피 ‘수혈’을 받다 보면 요의를 자주 느낀다. 그래도 커피는 참을 수가 없어서 두 번 갈 화장실을 한 번만 간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어떡하나. 나는 항공기가 잘 뜨고 내리는지, 별일 없이 잘 가고 있는지 감시하는 사람이다. 수십 대의 항공기가 동시에 떠 있는데 마음이 놓일 리 없다. 요의를 참느라 다리를 달달 떤다. 그래도 내 방광은 꽤 커진 것 같다. 참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퇴근 후 집에 가서 또 화장실을 참았다고 넋두리하면 엄마는 “너 그러다 오줌소태 걸려”라며 핀잔을 준다. 나는 바빠서 그랬다고 대충 둘러대고 만다.


회사의 모든 직원이 나 같은 건 아니다. 주어진 1시간을 넘게 식사를 즐기는 직원들도 많다. 대부분은 24시간 운영이 아닌 일반 부서 직원들이다. 그렇다고 내 성격이 모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대다수가 나처럼 한다. 사무실에 사람만 넉넉하다면야 나도 1시간을 꽉꽉 채워 밥을 먹을 수 있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참을 필요도 없다. 가당치도 않다. 안타깝게도 회사는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인력을 겨우 돌아가게 운용한다. 한 포지션에 6명으로 3교대를 돌린다. 주간은 그나마 할만한데 야간은 정말 못 해 먹겠다. 밤을 꼴딱 새우고 나면 집에 갈 힘도 남아있지 않아 택시를 잡는다. 교통비가 일당보다 많이 나올 지경이다. ‘제대로 먹고 싸지도 못하게 하는 이놈의 회사, 때려치워야지’ 하다가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차마 사직서를 내지 못한다.


코로나로 한동안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걸 금지당했다. 그만큼 항공 수요는 줄어들었고, 회사에서는 ‘고통 분담’이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의 출근일 수도, 월급도 줄여버렸다. 난데없이 급여를 빼앗기긴 했지만 늘어난 휴일의 맛은 달콤했다. 쉬는 날이 한 달에 겨우 3일 늘어났을 뿐인데 나는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 복용하던 신경안정제의 양을 줄였다. 푹 자고 두통 없이 일어났다. 운동을 시작하고 글쓰기를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셧다운(shut down)’이 해제되고 각 국가에서 여행객을 받기 시작하자 월급은 제자리를 찾았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예전엔 어떻게 버텼지?’ 싶을 정도로 출근하는 날이 잦다. 쫓기는 시간에 운동은 사치다. 집에 오면 드러눕기 바쁘다.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늘었다. 끊었던 수면제라도 다시 처방받아야 할 판이다.


‘24시간’이라는 말엔 누군가의 희생이 가려져 있다. 회사는 수당으로 근무자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지만 사실상 기대는 건 그들의 책임감이요, 직업의식이다. 언젠가 악에 받쳐 파업 계획을 짠 적이 있다. “우리 XX일에 파업할 건데 누가 시간 되지?” 그 와중에도 쉬는 사람을 찾고 있던 우리는 너털웃음을 짓고 말았다.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바깥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위하여 회사는 고용을 창출하고 근무 시간을 줄여야 한다. 밤 10시가 넘어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을 보면서 퇴근한다.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소망한다, 언젠가 우리가 덜 일하고 더 버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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