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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Oct 18. 2022

크리스마스와 생쌀 볶음

가난의 기억

 나의 어린 시절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라서 체감적으로 더 춥게 느껴졌을 수도 있던 시대였다. 마음의 온도가  가장 따뜻해야 할 겨울 한가운데에 있는 크리스마스 무렵의  추위는 어린 여자아이의 드랍고 연한 볼이 견뎌내지 못하고  터져나갈 정도로 절정에 다다 매서운 추위였다.


지금에서야 거리에 넘쳐나도 너무 넘쳐나는 물건들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시대라,  풍요로움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결핍이 그렇게 결핍인지 모르고 살았다. 앞집 뒷집이 저마다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딱히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당시에도 서민들과는 별개로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세상을 탐닉할 만한 공식적인 루트가 없었다. 그러니 질투랄 것도 탐욕이랄 것도 없었다.


 유난히 길었던  어느 겨울,  유일하게  집안의 경제적 책임자였던 아버지의 실업은,  어린 나에게도   엄마의  신경질적인 소리가 늘어나면서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었다.

  방 하나라도 연탄비를 아끼기 위해  외풍으로 인한  윗 공기가 바깥의 온도와 별반 차이가 없어, 입으로 입김이 나올 정도로 냉랭한 방안에 이불 하나를 나누어 가지며 누워 있었다.

한 사람이 이불을 들썩이기라도 하면 그 차가움이 이불속으로 들어와 몸을 오싹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이불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 당시 유행하던 과자 러미가 네모난 종이상자 안에 담겨,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초록과 빨강이 섞인 종이로  포장된 선물 상자는  그 당시 어린아이들에게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집안 어느 한 구석에도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작고 초라한 방안에서도 그 선물꾸러미는 어린 나의 눈에 띄지 않았다. 눈은 알 수 없는 섭섭함으로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어린 나의 가슴은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꾸꾹 참아내고 있었다. 마치 눈물이 나오면 옆에서 사춘기의 반항도 사치라고 여기는, 말없이 이 서러움을 온몸으로 누르고 있는, 오빠의 감정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울면 알  것 같았던 집안의 분위기는 일곱 살의  어린 마음에 서러움의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평상시처럼 어리광을 부릴 수가 없었다. 항상 막내딸의  어리광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자신을 보고 있듯 마냥 받아주던 나의 아버지... 항상 아버지의 무릎은 내 차지였을 만큼 말이다.


아버지의 인자함은 길고 지친 생활의 무기력 앞에 가려져 있었다. 불쌍하고 처량한 모습을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싫은 게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나약해지는 것이  싫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그 가난의 중심에 있던 아버지를 싫어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난이라는 고난보다 사랑이 훨씬 컸기에, 단지  사람을 작게 만들고 초라하게 만드는 그 가난이 싫었을 뿐이었다.




돈 때문이었는지 그날 크리스마스 아침에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 하나 이불속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있던 오빠와 언니는  이불속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날,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그들의 서러움과 나의 서러움의 크기가 같았을까?

어린 나는 서러움이라는 단순한 감정이었지만, 사실 나보다 훨씬 더 세상을 경험한  그들에게는 서러움보다는 모멸감이 더 들었을까?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이 알고 있을 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나의 기대는 실망으로 가득 찰 무렵, 서러운 입김만이 그날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던 즈음, 갑자기 아버지가 이불을 박차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삼 남매의 눈은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아버지가 나간 문밖을 응시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간 문 밖에서는 아마도 우리 삼 남매가 기대했을 기대감 대신, 비좁은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나기 시작했다. 그 고소함이 드디어  안으로 완전하게 들어왔다. 아버지의 손에 들려진 한 소쿠리의 그 고소함의 정체는 바로 쌀이었다. 집안에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쌀을 박박 긁어서 생살을 싰어 기름을 붓지 않은 프라이팬에 젖은 이 마르고 노릇하게 튀겨질 때까지 볶아내는 생쌀 볶음.  그 쌀이 그렇게나 고소하고 맛있는 줄 몰랐다.


아직 프라이팬의 온기가 가시지 않은 노릇노릇한 쌀알들이   내 작은  손 안으로  한 소복이  올려져 있었다.  쌀이 내 입안에 들어가 오도독 씹힐 때의 고소함, 그 고소함과 나의 서러움이 뒤범벅이 되어  입안에서 사라졌다. 유난히도 치아의 성능이 좋았던 나는 그 단단한 이로 오도독 야무지게 씹어댔다. 그 고소함이 서러움을 다 덮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야물 지게 씹어 댔지만, 시간이 흘러  그 고소함은 사라지고  그 서러움은 어린 소녀의 기억 속에 남았다.




그 해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갔다. 어린 일곱 살 소녀의 가슴에 한평생 점하나를 박아놓고 말이다. 아버지의 지혜인지 사랑인지는 모르나,  한 이불을 나누어 덮고 추위에 긴 입김을 불어내며 그 서러운 겨울을 보냈던 우리 삼 남매는 다행히도 잘 자라주었다.


해마다 아무리 화려한 크리스마스가 돌아와도 나에게는 그 해의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여운을 주는 해를  경험하지 못했다. 어떤 화려한 고명도 양념도 되지 않은 쌀 한 톨로 오롯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듬뿍 들어간 아버지의 레시피. 비밀이 아닌 온 세상에 퍼져나가도 상관없는 아버지의 레시피다.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의 자존감은 절망의  순간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기력보단 나란 사람의 가치를 나타내는 자존감은 이미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름할 수 없는 사랑을 대신한 아버지의 사랑을 그 무엇보다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말이다.





오늘 문득 이 간단하고도 아무것도 아닌 음식을 추억을 핑계 삼아   내 손으로 만들어 보았다. 살을 씻어 물기를 빼고 난 후, 달구워진 팬에 쌀을 넣고 물기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저어준다. 저어도 저어도  고소한 빛깔의 노루스름한 색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이 음식의 비법은 쌀이 누르스름하게 볶아질 때까지 단순하게 한 동작을 반복해서 계속 저어야   나오는  끈기와 인내의 음식이었다. 요령이 통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이불속에 남겨진 세 아이의 눈망울뒤로하고 이 끝없는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아버진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때 웅크리고 앉아 음식을 하던 아버지의 나이가 된 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면서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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