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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Oct 21. 2022

김치 수제비와 안국동 칼국수

아버지의 수제비는 얇고 투명하고 부드러운 수제비다.


날이 꿉꿉하고 흐린 날, 버지의 수제비는 엄마의 성의 없이 뜯긴 부추 수제비와 비견될 정도로 특별하다.

엄마의 무성의한 음식은 이상하리만치 정성이 들어간 음식보다 담백하게 맛이 있었다. 그와 달리 아버지는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정성을 다해 만들어도, 솔직히 엄마의 음식에 버금가는  컬러티가 나오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항상 그렇지만 엄마의 요리비법은 뭐든지 살짝 모자라게이다. 그 살짝 모자라게 만드는 것이 엄마만의 비법이자 손맛이다.

모든 음식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로 정성을 들이지만, 아버지는 수제비를 하나 끓여내도 정성을 다해 만들어 냈다. 엄마와는 정반대로 살짝 과하게...


미리 만들어 놓은 잘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정성스럽게 찢어지기 직전,  훤히 비칠 정도로 얇게 뜯어내는 게 아버지의 수제비 반죽의 비법이었다.  반죽을 더욱 쫄깃하고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소금과 식용유가 들어가지는 않아도 충분히 부드러웠다.  국물은 넉넉하다 못해  솥이 넘쳐 날 정도로 여유 있게 우려낸다.


비법이라고 까지는 없지만,  국물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들어가는 재료는 말할 것도 없지만, 국물을 우려내는 시간과 국물의 양도 무지 중요하다. 국물의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수제비는 맑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내지 못한다.

 아버지는  수제비를 끓여낼 때는 엄마가 보기에 항상 과하다는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료를 넣고 국물을 우려낸다. 국물요리의 가장 기본적인 비법이다.

거기에 잘 은 김장김치를 잘게 썰어 수제비 반죽보다 더 먼저 넣고 김치 고유의 맛을 낸다. 이때 김장김치의 속을 털어내고 김칫국물은 넣지 않는다. 자칫하면 국물의 맛이 김치 국물로 인해 텁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김치 수제비는 맑고 깔끔하다.


에 김치가 충분히 적응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정성이 시작된다.  종이장처럼  속이 훤히 비칠 정도로 얇은 반죽을 하나 하나 어내 국물 속으로 투하시킨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수제비들이 동동 떠 오르면, 가장 기본인 마늘과 국간장으로 음식의 맛을 정리한다.

드디어, 아버지의 시원한 김치 수제비가 완성된다.


자식들의 입에서 뭐가 먹고 싶다는  말이 어지기 무섭게 부엌으로 달려가는 아버지...

음식에 대해선 정말 진심이었다.

귀찮다는  한마디 없이 그 자체로 행복했던 부엌 앞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겐 전혀 낯설지 않은 경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숙적이 나타났다.


엄마의 짝사랑 남자가 서울 근처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인 안국동 근처에 떡하니 말이다.

안국동 현대빌딩 근처, 유명한 칼국수집 사장님그 주인공이었다. 그 아저씨가 엄마를 사랑한 남자였다는 사실을 나는 외숙모를 해서 듣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 같은 부모들 세대사랑이야기는 지금도 신기하고 재미난 에피소드다. 엄마를 유난히 사랑했던 아버지의 질투는 숨길수 없는 남자의 질투였다.


안국동 칼국수집 이야기를 알게 된 건 엄마의  다른 동창 아저씨에 의해서였다. 생각보다 보통의  인연들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수학이라면 경기를 으킬 정도로 순도 100프로 문과생인 나를 이유 없이 이뻐해 주던 수학선생님이었다는 걸 알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렇게 같은 동네 동창들과 연결이 되어 안국동 아저씨까지 연락이 닿았다.


반가운 마음에 엄마와 아버지는 엄마의 사랑이 아닌 동향 사람으로 안국동 칼국수 집을 방문했다. 아저씨는 엄마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 엄마의  손을 덥석 잡았나 보다. 엄마의 말로는 악수만 했단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보고 듣지도 못한  아버지의 날 선 신경질을 볼 수 있었다.


! 그 나이에도 질투가 생기는구나!


결혼을 해서 삼남매를 낳고 서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초로의 나이에도, 인간의 질투는 사그라들지 않는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에 나의 부모는 예외인 줄 알았다.


엄마를 너무 좋아했지만, 너무나 가난해서 포기했던 칼국수 아저씨의 가슴 아픈 사랑의 주인공이 우리 엄마고, 그 엄마를 데려다 개고생을 시킨 나의 아버지의 질투는, 그렇게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지금도 엄마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나는 아버지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혹여나 안국동 근처를 가도 내심 호기심이 생겼으나, 발길은  차마 그곳으로  들어가지지가  않았.

비록, 아버지와의 수제비와 비교할 기회를 놓쳤지만,  아버지의 수제비는 그렇게 칼국수의 맛을 보지 못한 이유로 언제나 나에게 국물요리의 일등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짝사랑에 대한  아버지의 질투는 또 다른 사랑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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