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seniya Oct 29. 2022

제삿밥과 떡국

아버지는 고리대금 업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나의 할아버지는 마을의 가난한 사람이나 머슴들에게 땅이나 쌀을 빌려주고 되돌려 받는 고리대금업자였다고 한다.

옛말에 고리대금업자의 자식들은 죄 많은 자식이라고 하여 그들의 팔자가 좋게 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엄마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의 옛날이야기는 거의 엄마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는데, 말수가 적고 차가운 엄마에게서도 저런 면이 있나 싶게 이야기꾼이었다.


아버지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사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되자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죽기 전, 할아버지의 유언이 담보로 가지고 있던 문서를 모두 태우라는 지시였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모든 문서가 불이 태워지는 것을 보고, 글을 읽을 줄 알았던 할머니는 그 문서의 당사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몰래 두 집의 문서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할아버지가 죽자 끝내 돈을 갚지 않았다고 한다.


황소가 여덟 마리가 죽어 나갔다는 친가의 마당은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마당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죽으면서 태어난 아버지는 말 그대로 유복자가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는 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할머니의 손 아픈 아들이 되었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아들이었다. 그 당시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있는 것 중에 아버지는 지금도 보리밥을 씹지 못한다.

어린 시절 엄마는 두 가지 밥을 해 댔는데,  보리밥이 없는 하얀 쌀밥과 보리밥 섞인 두 가지 밥을 매 끼니마다 해댔다.


청상과부가 된 할머니는 강하고 독했다.

고된 시집살이에 첫 며느리가 도망을 가고 난 후, 이웃동네 군수 집 딸을 재취로 맞아들였지만, 어리석고 둔한 큰엄마 역시 할머니의 시집살이를 피하진 못했다.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큰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과부가 된 큰엄마는 할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재산에 아버진 관심이 없었다.

형이 죽고 난 후, 그 많은 땅과 토지에 욕심내 하지 않았다.

결국은 이웃에 사는 음흉한 사촌 형이  엄마를 꼬들겨  하나둘씩 자신의 재산으로 둔갑시켜 놓았다. 어리석은 큰 엄마의 아들 넷이 그 집의 음흉한 아들 둘을 못 당해냈다. 그 일로 그나마 멀쩡하던  둘째 아들이 미쳐나갔다. 할머니가 지킨 이 사촌 형에게 넘어가 그들의 부모가 모셔진 땅을 보며 아버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과응보였을까?

아버지의 사촌인 육촌 당숙은 눈이 멀어 자신의 묏자리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왜 그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까? 이상하리만치  아버진 집안의 재산에 관심이 없었다.

자식은 서울에서 키워야 한다고 짐을 싸고 서울로 향할 때 할머니가 논 두 마지기를 팔아 노자돈을 마련해 준 것이 아버지의 전재산이었다. 그 이상은 탐을 내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고단한 생활로 할머니를 자주 찾아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슬픔은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달려간 그날, 한이 되어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목놓아 불러댔었다.

며느리의 방치로 문간방에서 굶어서 죽은 할머니...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아, 아버지는 몰래 할머니의 기일만 되면 소박한 제사상을 차리곤 했었다.

몇 가지 나물과 탕수, 비싸지 않은 동태찜이 다 였지만, 정성을 다해 할머니를 모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제사음식이라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나도 아버지의 음식을 아버지의 제사상에 차려 낼 것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으로 마음껏 차려낼 것이다. 아버지의 음식은 내 음식이기도 하기에...


아버지의 제삿밥

제삿날이 아니라도 먹고 싶은 밥이다.

제사 비빔밥 중에 한 가지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이 생미역줄기 무침이다.

주로 기일이 겨울이라 그 당시에는 생미역을 시장에 흔하게 팔았다. 그 생미역을 조물 조물 문질러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마늘과 파를 넣고 조선간장으로 무치면 나물 사이에 여 묘한 맛을 내곤 했다.


그 안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이 탕수다.

조개국물에 갖은 해산물을 넣고 끓인 탕수는 비빔밥의 백미다.

제삿밥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생선인데 조기와 함께  동태를 말려서 찜통에 찐 동태찜과 함께 먹으면 그날의 제사는 끝이 난다.


그 많던 재산을 탕진하고 자식들이 하나같이 망해 나가던 큰엄마가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것을 알고 나자, 그 제사를 뺏어가 버려서 그 이후로는 제사를 지내진 않았지만 명절이 되면 일부러라도 해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음력설이 다가오면 이 탕수가 또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한다.

장가간 아들도 돌아오게 하는 우리 집 떡국은 탕수가 주인공이다.

해물이 잔뜩 들어간 이 탕수를 국물로 해서 떡국을 끓여 내는데  그 떡국에 고명은 반드시 흰자와 노른자가 나뉘어야 한다.

조개와 각종 해물이 다 들어간 탕수에 방앗간에서 갓 뽑아낸 가래덕을 꿋꿋하게 말린 다음 칼로 썰어내 만든 떡을 넣고 노란 지단과 흰자 지단을 각 넣어 김가루를 뿌려 내면 우리 집 떡국이 완성된다.

오빠는 장가를 가고 난 후에도 이 떡국 맛을 못 잊어 퇴근길에 들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인생은 내 대로 행하지 않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땐 통쾌할 가 있다.

나는 인과응보를 믿는다. 무조건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유독 착한 사람에게는 약하다.


할머니가 큰엄마에게 당했던 인과응보가 다시 되돌아가 큰엄마에게로 갔다.

아버지의 고희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버지를 위하여 소공동 롯데호텔 뷔페집에서 화려한 만찬을 준비했다.

가슴에 두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초대했다.


작은 아버지의 성공한 딸의 인과응보를 보면서 엄마의 인 사촌언니의 한마디는 아직도 나의 뇌리에 박혀있다.


  "엄마는 도대체 뭐했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