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진실을 찾는 과정
이웃들은 악명 높은 '니양이'라는 이름 대신
'삐약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 고양이를 부르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삐약이 엄마」 백희나
매일 초등학생을 만나 책을 매개로 떠들며 하루를 보낸다. 아이라는 딱지를 뗀지 오래된 어른들은 초등학생을 초중고의 첫 단계로 묶어 버리지만 사실 각 학년의 차이는 크다. 한 살의 차이가 만드는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초등학교 사회 최고령, 6학년은 모험가 얼굴이다. 6학년의 세상은 숙제, 친구, 외모, 모든 것이 별일이다. 마지막 레벨까지 도달한 여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에서 새 세상을 발견한 듯한 눈빛을 가졌다. 3학년은 드디어 어른들이 서랍 깊숙이 숨겨둔 ‘반기’를 찾아낸 나이다. 열 살이 되기까지 익힌 사회적 윤리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 흐릿한 회색의 영역을 발견한다. 이들은 가끔 확신이 필요한 혁명가의 눈빛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1학년은 집 안과 밖 사이에 경계선을 발견한다. 삶의 영역이 집에서 넓어지고 그에 맞는 태도를 요구받는다. 사회 초년생이다.
그렇게 초년생의 힘겨운 적응기도 두 계절이 지났다. 쉬가 마려워도 참을 수 있고 지퍼락에 챙긴 과자의 개수는 자신의 몫 곱하기 인원수가 됐다. 준영이는 그날도 지퍼락을 꺼냈다. 쌀과자는 이 곱하기 오, 열 개가 들어 있었다. 준영이는 자신의 것과 친구들 세 명, 어른 한 명의 것까지 챙겨왔는데 태풍으로 두 명이 결석한다는 말에 광대가 한껏 올라갔다. “그럼 우리 하나씩 더 먹어도 돼요?” 1학년의 또 다른 변화는 존댓말 사용이다. 준영은 당장 입에 넣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또박또박 존댓말로 물었다.
귀엽기도 하지. 작은 생채기도 순식간에 신선한 새살이 삼킬 듯한 피부, 경계가 또렷한 눈동자, 솜털 같은 눈썹, 무언가 붙어있는 코.
더 먹어도 되냐고 존댓말로 허락을 구하는 사회 초년생의 질문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고백을 해버렸다.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눈빛과 진심을 다한 목소리로. “준영아. 사랑해”
준영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익숙하다는 듯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었다. “눈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거야?” 물으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러자 오매불망 지퍼락만 쳐다보던 지안이가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요?” 나는 또다시 정성을 다해 눈빛을 꾹꾹 눌러 말했다. “지안이두 사랑해” 지안이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응, 이모. 아니아니 네, 선생님”
지안이는 능숙하게 집 밖의 규칙을 지키던 자신이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처럼 되어버리자 당황했다. 집 밖 여자어른이 집 안 여자어른의 공기를 내뿜자 학습된 습관이 흔들린 것이다. 나는 지안의 반존대가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사랑이 가능한 대상에 없던 존재를 사랑하게 됐다는 파격이 짜릿했고 사랑을 감지하자마자 교감했다는 만족감에 취했다. 그러더니 겸손이 찾아왔다.
오늘의 사랑은 감정의 새로운 데이터였다. 사랑을 정확히 규정하려던 과거의 시도들이 얼마나 무의미 했던가. 만약 정확한 정의가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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