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진실에 입을 다물고 그것을 땅 아래 묻으면 진실은 거기서 자라날 것이다.
진실은 행진하고 있으며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
에밀졸라 Emile Zola
문이 열린다. 벽인줄 알았는데. 밀거나 당기지도 않았는데 툭 열렸다. 벽이 문이 된 것이다. 열린 문 사이로 알지 못한 공간이 보인다. 당황스럽지만 반갑게 고개를 내밀어 본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수록 문이 늘어난다. 단단한 생각에 균열이 생기고 몰랐던 나의 마음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작지만 고운 나의 망치들에게 고맙다. 그렇게 나는 나를 부수는 생산적인 파괴자의 팬이 된다.
목동에 살았다. ‘가축을 치는(牧) 동네’라는 이름 때문일까. 학교를 가고 군것질을 하고 피아노를 치고 숙제를 하며 단계에 맞게 길러지는 어린 가축처럼 생장했다. 중학교를 배정받던 날, 나의 울타리에 구멍이 생겼다. 벽인 줄 알았던 자리에 문이 생긴 것이다. 중학교 배정은 뺑뺑이라 불리던 추첨으로 결정되었다. 목동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 동네 안에 있는 중학교에 배정되었고 나머지는 시내와 가까운 옆 동네 중학교로 배정되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자기가 그 ‘소수’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여긴 벽이었잖아. 저 문은 가짜야. 나가지 않을래’ 내 방에 중학생이란 푯말이 붙은 문은 단 하나였다. 열네 살이 되면 그 문을 열 줄 알았다.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는 길에 도레미떡볶이를 함께 들리는 우리 반 친구들과 그대로 중학교에서 가서 교복을 입고 공부하는 모습이 열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옆에 예상치 못한 문이 생겨 버렸다. 울음이 났다. 6학년 3반 우리 반에서 오직 나뿐이었다. 친구들은 흐느끼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려고 도왔다. “너희 엄마가 놀라실 거야. 우리가 잘 설명해 드리자” 민지는 책가방을 싸고 소영은 신발가방을 챙겼다. 힘없는 다리로 느리게 걷는 나의 손을 양쪽에서 잡아 주었다. 복도로 나와 계단을 향해 걷다 보니 6학년 2반에도 한 명, 1반에도 한 명이 나처럼 친구들이 에워싼 가운데 주저앉아 있었다. 나랑 같이 열린 문 사이로 몸을 밀어야 하는 친구들이었다.
중학교는 시내와 가까운 선화동에 있었다. 이번에도 ‘시내’라는 이름 때문일까. 아이들이 사는 동네는 동서남북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처럼 시의 가운데로 배정된 친구들이었다. 낯선 동네에서 모르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니 두려웠다. 게다가 선화동에 있는 중학교는 공부에 관심 없고 불량한 태도를 가진 학생이 많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실제로도 개성이 넘쳤다. 정확히는 목동스타일이 아니었다. 머리를 분홍색으로 염색한 아이도 있었고 교복을 몸에 딱 맞게 수선한 아이도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휠라에서 파는 가방끈이 짧은 가방을 멘 친구도 있었다. 교과서가 많아질 걸 대비해서 산 큰 나의 가방과 대비되었다.
낯선 두려움은 잠시,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떤 방에서 살고 있었을까, 왜 나와 다를까. 3월 입학부터 교실을 채운 찬 공기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온전한 여름이 되었을 때, 나는 남아있는 벽을 열심히 부수고 채광을 하느라 바빴다.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문은 없는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전교 꼴찌라는 이유로 어른들의 걱정을 독차지하던 영란이는 엄마가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해 불행에 빠질까 걱정하는 속 깊은 아이였다. 짧게 수선한 교복 치마를 들키지 않으려고 등하교할 때마다 체육복 바지를 입던 선혜는 우리를 웃겨주던 다정한 아이였다. 다른 학교에 비해 평균 점수가 낮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았을지 몰라도 불량한 아이들이 많다는 소문은 수정이 필요한 사실이었다.
고정관념은 잘 변하지 않는 생각이다. 무의식적으로 말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이 열리고 방이 등장하는 건 고정된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건 옳다고 믿는 것이 진실로 옳은가 질문할 소중한 기회다. 책은 벽을 문으로 바꾸는 가장 쉬운 도구다. 아이들과 나는 책을 펴고 벽을 부순다.
「늑대와 양에 관한 진실」에 등장하는 양들은 오래전부터 ‘양은 늑대를 막을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양 ‘오토’는 왜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양 한 마리의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다른 양들이 오래된 믿음을 의심하게 된다. 양이 늑대를 막을 수 없는 이유를 차근차근 분석하기 시작하고 해결에 나선다. 나와 아이들도 오토처럼 용기 있게 질문한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순신이 몇 척의 배로 왜구를 이겨낸 일,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싸워 백신을 만든 일처럼 역사적인 사건부터 점수가 낮은 과목을 공부해서 백 점을 만든 자기의 경험까지 꺼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결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았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너도나도 손을 번쩍번쩍 드는데 현섭이가 조용해졌다.
“현섭아, 무슨 생각이 떠올랐어?” 현섭이는 진지하게 말했다. “고정관념이 사라지면 진실도 알 수 있나요?” 현섭이는 지난주 읽은 「에밀졸라씨 진실이란 무엇인가요」의 내용이 떠오른 것이다. 책은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차별해서 간첩으로 만들고 누명을 씌운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다. 프랑스인에게 존경받는 소설가 에밀 졸라는 정의를 위해 나서다 국가의 배신자가 되어 버린다. 현섭이는 에밀 졸라를 만나고 진실을 알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런데 양들이 늑대를 쫓아낸 이야기를 보니 우선은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하는 한다는 가설이 세워진 것이다.
경험의 양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운다고 믿었다. 이 문 저 문 열어보고 과감하게 방에 들어갔다 나오고 벽을 부숴 문을 만들면서 삶을 배운다고 말이다. 경기도 오산이었다. 질문도 사람을 키운다. 양 오토, 프랑스 작가 에밀졸라, 그리고 현섭이가 그랬듯이 거짓을 가려내고 진실을 알기 위해 물어야 한다. 그렇게 물음표로 채우다보면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마인) 삶을 살아갈 기술(크래프트)이 다져지는 것이다.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해요, 현섭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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