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내적인 평온 만들기-의식과 무의식의 정렬

융이 가르쳐준 진정한 나 찾기 - 선행될 일은 바른 자아의 정립

by 신윤상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헤세는 <데미안>에서 온 생애를 걸고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업은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안에서 확고해지는 것이라 말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아정체성을 찾는 것은 결국 자기가 만들어 놓은 대극의 상황 즉, 선택받은 자아와 억눌러버린 그림자자아를 인지하고 자신만의 특수한 관계맺기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융은 이것을 개성화라고 하였다. 헤세는 지독스런 우울증을 앓았는데 이때 융의 제자에게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융심리학이 데미안의 곳곳에 상징으로 드러나는 이유이다.


데미안에서는 두 세계를 말하고 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보호 아래에 있었던 밝음의 세계와 거칠고 두렵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어둠의 세계이다. 이것은 자아와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며 두 가지 측면이 자신 안에 엄연히 존재하고 그것을 모두 끌어 안을 때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점차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모두 포용하는 신이며 두 세계를 통합하는 신인 것이다.


나도 착한 아이로 성장해온 청소년기를 지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 옳다고 믿는 것들의 절대적인 것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의 도덕을 포기할 수 없기에 양극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기분이다. 내가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기준이나 나의 기준에 의해 정립된 지극히 에고적인 수준의 것일지라도 마치 진리인 것처럼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내면에서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이 옳은 것일까?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마치 정답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답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만일 융이 나의 상황을 보았다면 의식과 무의식을 정렬하고 내적인 평온을 이루려면 어떻게 하라고 말했을까? 융심리학은 만일 내가 눌려있는 어떤 징후를 만나게 된다면 일단은 그것을 누르고 있었던 이중성을 넘어가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붙잡고 있는 자아를 놓아주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상황을 문제로 여기는 저항을 멈추고 그 일이 가진 의미를 찾아보는 방향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불교의 교리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고통은 괴로움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추게 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창조적고통 속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어나야 할 일이었고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을 인정할 때 나는 조금은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일은 내가 그림자로 밀어 넣은 나의 한 쪽일 가능성이 큰 것이고 내 안의 필요성을 담은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이다. 이것을 인정하기 싫어 계속 방황하고 괴로워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인정하고 나면 선택을 할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내 안의 그림자가 원하는 것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그림자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것인가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림자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들어주고 따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더 넓은 시야에서 선택을 하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융은 이것이 바로 개성화(전인격화)이고 나만의 윤리를 따르는 삶이라 말하고 있다.


이때 자아의 기능이 중요해진다. 경험적 인격인 자아는 무의식이 의식으로 올라올 때 이것을 우리 인격의 중심에 있는 자기(셀프-정신의 전체성, 신적 본능)로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융심리학의 핵심은 내 안에 신성한 자기가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여 전체정신으로 나아간다면 원만한 인격을 이루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자아는 자기를 만나기 위한 전제가 되기에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하며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책임을 진다. 의식으로 불러올 수 있는 나만의 윤리, 나만의 개성을 찾지 못하면 언제나 방황하는 모양새가 되는것 같다. 자아가 지독히 에고적인 오류에 빠지지 않고 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으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내면의 신성이라 할 수 있는 자기는 드러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천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생각이나 판단은 자아의 전형적인 활동작용이라 하겠다. 이는 나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누르고 있는 그림자와는 분리되어 진정성을 잃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윤리며 인습이며 나만의 철학이며 방어기제들이 그림자자아가 말하고 있는 요구와 필요성을 외면하기 쉽다. 그러니 우리는 바른 자아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 열려있는 마음으로 무의식영역 특히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바른 자아의 정립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명상학자 잭 앵글러는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무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아를 먼저 이루어야 한다고. 바른 자아의 길도 참으로 어렵게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을 믿어본다. 내 안에는 신성이 있으며 직관이 바른 자아를 따르도록 해준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 - 데미안 중 싱클레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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