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이 가르쳐준 진정한 나찾기-그림자를 의식으로 올리는 작업은 온전성회복
융에 의하면 그림자란 개인이 가진 성격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반대되는 특성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개인의 특성과는 달리 의식되지 않은 어두운 자아는 무의식에 눌려 있으며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것을 담고 있다. 그림자는 시시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모든 삶의 여러 부분에서 발현되어진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는 이유를 알기 어려운 경우에도 자동적으로 나오는 행동의 패턴이 있다면 그것은 그림자의 작용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자는 개인의 경험 뿐 아니라 집단적인 경험에 의한 집단무의식까지 담고 있기에 사회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기준으로 억압된 많은 감정, 욕구가 담겨 있다.
내 안에 담겨있지만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고 눌러버린 그림자영역은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투사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유도 없이 싫은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한다. 예전에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어떤 선생님을 몹시 싫어한 경험이 있다. 함께 수업을 준비하는데 성의를 보이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면모에 몹시 화가 났었다. 나는 일어나는 격한 감정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스스로에게 몇 번을 물어보다가 문득 노력하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모습을 수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안에는 '너는 공부가 필요해. 너는 부족한 존재야.'라고 말하는 그림자가 있어서 노력하지 않는 그분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투사는 결국 나에게 향하는 감정이었다.
최근에 이상한 불편함을 느낀 일이 또 있었다. 소위 돈도 잘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을 보며 저항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함께 해야하는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마음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무조건 모임에 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내 안에 그림자 하나를 의식으로 올릴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돈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그걸 쫒지 않으려는 이상한 도덕관념과 욕망이 모두 있었다. 그러니 돈을 잘 벌어야 인정을 받나하는 마음에 불편함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은 시기심의 다른 모양새였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은 내가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그로인해 인정까지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우리의 정신세계는 의식만이 아닌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가 있건만 이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나는 전체로서의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늘 착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고, 성인군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 같아질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눌러버린 무의식은 누르면 누를수록 커진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넌 부족한 사람이니 계속 공부를 해야한다고 하고, 넌 돈욕심을 내지말고 검소해야 한다고 계속 말한다면 오히려 자기과시의 심리가 커지고 돈과의 관계가 왜곡되어 소비심리가 발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분노와 좌절을 묻어버릴수록 나는 부서져 간다.
그렇다면 무의식으로 내가 눌러버린 여러 욕구와 감정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림자로 눌러버린 영역을 포함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온전해지고 확장되어진다고 한다. 나는 과거의 순진하거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창조자가 된다. 내 안의 선과 악을 모두 인정한 후 비로소 숨을 내쉬며 자유로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착해야만 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착하기로 선택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융은 그림자자아와 자아와의 통합, 즉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으로 우리는 신의 영역이라 할 자기(self)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린 안에는 신성이 있으며 그림자영역을 자신의 것이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생명력, 꿈과 욕망을 허락하는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두려움을 걷어낸 자리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는 그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인정해주는 귀한 기회임을 잊지말자.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무엇이 이런 마음이 들게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유를 알게 될 때 난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라고 인정해주자. 그리고 이젠 어떻게 할까라고 새로운 선택을 하자. 이제 난 자유인이자 내 인생의 창조자임을 잊지 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