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만 봐도 알 수 있는 크루즈선
거리의 수많은 종류의 차가 있지만 우리는 '저 차는 벤츠, 지프, 모닝, 아반떼, 코란도네'라고 쉽게 구별한다. 자동차 회사의 로고나 이름을 보고 구별하기도 하며, 차체를 보고 구별하기도 한다. 크루즈도 마찬가지이다. 크루즈 선사는 자신들의 로고를 가지고 있고, 크루즈선 상단이나 선체에 주로 회사 로고나 이름을 새기기 때문에 그것들을 보면서 '저 배는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이네, 아자마라 크루즈네, 프린세스 크루즈네.' 하고 구별할 수 있다. 또한 자동차처럼 크루즈 선체를 보고 구별할 수도 있다. 그리고 크루즈 선사별로 크루즈선의 특징이 있고, 선사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눈에 띄게 자기만의 색을 띠고 있는 선사가 있다. NCL이라는 짧은 이름으로 더 잘 불리는 크루즈 선사, 바로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Norwegian Cruie Line)이다.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크루즈선들은 멀리서 봐도 저 배가 에픽호 (Epic) 인지, 조이호 (Joy) 인지,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호 (Pride of America) 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만큼 특징이 뚜렷하다. 선체만 봐도 무슨 크루즈선인지 구별할 수 있는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들의 크루즈선의 특징은 바로 다름 아닌 '선체 아트(Hull Artwork)', 즉 그림이다.
떠다니는 화실, 바다 위의 가장 큰 캔버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들의 크루즈 선체의 그림들은 유명화가가 그린 그림도 있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은 2002년 노르웨지안 다운호(Dawn)에 처음으로 선체 아트 콘셉트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지안 다운의 선체 아트는 런던의 SMC 디자인에서 디자인된 그림으로, 독특한 문양과 컬러풀한 그림을 그리면서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적극적이고, 생동감 있는 회사 이미지를 표현했다. 노르웨지안 다운의 선체 아트를 시작으로 노르웨이지안 크루즈 라인의 대부분의 선체에 선체 아트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노르웨지안 에픽호(Epic). 에픽의 선체 아트는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 자체 크리에이티브 팀이 디자인한 아트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에픽호만이 유일하게 자체 디자인팀이 그린 선체 아트를 몸에 새기고 있어 다 같은 식구라도 좀 더 귀하고 이쁘게 여기고 있는 크루즈선이 기도 하다.
2013년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은 이 선체 아트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강구를 하였고,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세계 유명한 아티스트를 찾아 그들의 시그니처 그림을 새 크루즈선에 그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 출발은 노르웨지안 브레이크 어웨이호 (Breakaway)로 시작된다. 브레이크 어웨이호의 선체 아트는 컬러풀하고, 팝 아이콘 스타일의 그림으로 유명한 그리고 뉴욕시로부터 최고 찬사를 받기도 한 화가 피터 맥스(Peter Max)가 그렸다. 아마 브레이크 어웨이호의 선체 아트는 그가 그린 그림 중 가장 큰 사이즈의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은 마이애미 화가 David Le Batard(Lebo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를 찾아 노르웨지안 게이트 어웨이호(Gateaway)의 선체 아트를 부탁했다. 화가 Lebo는 그 만의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력을 동원해 상상의 나라에서 막 나온 듯한 인어공주, 야자수, 펠리컨을 선체에 그려 넣었다.
그다음으로 화가의 손길이 닿은 선체가 바로 노르웨지안 에스케이프호(Escape)이다. 에스케이프호는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첫 번째 브레이크 어웨이 플러스 클래스(Breakaway Plus Class)의 첫 크루즈선이다. 론칭 세리머니를 할 때 역시 이러한 첫 클래스의 첫 크루즈선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선체 아트 역시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이유는 자메이칸 해양 야생보호 아티스트이자 환경 보호 활동가인, Guy Harvey가 바닷속의 아름다움을 선체에 그림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바닷속”이라는 그림 때문에 더 특별한 의미도 있었지만, 당시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이 Guy Harvey 해양보호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음으로 향후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동 서명을 함으로써 그 의미가 더 짙어졌다.
여기 또 하나 특별한 선체 아트가 있다. 크루즈 선체에 그림을 그린 첫 아시아 화가의 작품, 바로 노르웨지안 조이호(Joy)이다.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은 중국의 상해, 천진을 모항으로 항해를 계획 중인 크루즈선이었고, 그 의미로 중국 유명 화가 Tan Ping을 찾아가 선체 아트를 부탁하였다. Tan Ping은 조이에 신화 속에 나오는 봉황과 연꽃을 그림으로서 중국적 색채를 더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크루즈선은 노르웨지안 블리스호(Bliss). 블리스호에는 아주 이쁘고 멋진 고래가 그려져 있다. 이 '고래' 그림은 다름이 아닌 하와이 로컬 예술인 커뮤니티와 해양 생태계 보호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 중 한 명이며,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고래 보호 운동가이자 예술가인 Myland가 그린 것이다.
'하긴 Myland가 아님 누가 고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2019년 6월 알래스카 크루즈를 타러 갔다가 마지막 기항지인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항구에서 때마침 같은 항구에 정박해있던 노르웨지안 블리스호를 만났다. 비록 당시 내가 탔었던 크루즈선과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지만 멀리서 고래 그림을 보고 바로 "블리스호다!"라고 외치며 흥분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지도 못하게 만나 직접 내 두 눈으로 Myland의 고래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Myland가 블리스에 그린 그림을 보면 작은 고래 여러 마리와 큰 범고래 두 마리가 햇살이 비추는 바닷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그리고 선두에는 큰 범고래 한 마리가 한 작은 고래를 입으로 밀어 올리며 마치 '넌 뛸 수 있어' 라며 바다 밖으로 헤엄쳐 뛰어오를 수 있게 돕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그리고 특히 범고래가 그려진 이 크루즈선이 알래스카를 항해한다니 Myland의 그림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었다.
개인적으로는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크루즈선 중에서 블리스의 선체 아트를 가장 보고 싶었지만, 그 그림을 두 눈으로 보고 나니 다른 선체 아트들도 직접 보고 싶어 졌다. 크루즈 선체에 그려진 그림으로 어떤 크루즈선인지 알 수 있고, 그 그림에 숨겨진 의미와 스토리를 알아간다는 것. 이 또한 크루즈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세계여행을 하다 어떤 항구에서 선체에 멋진 선체 아트가 그려져 있는 크루선을 발견한다면 한 번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어라, 노르웨지안 브레이크 어웨이 (Breakaway) 네?"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선체 아트를 보고 그 배의 이름을 맞추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Written by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