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좌석버스 의자에 앉았는데
앞 의자 등판에 내걸린 광고는
인간사(人間事) 다 엿본다며
이사문제 자녀문제 결혼운이 궁금하신 분은
전화하라며 부추긴다
앞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나는
앞사람의 뒷통수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보고 싶었다
그리하면 버스 안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하겠지
달리던 버스는, 지구대 앞에 정차하겠지
누군가의 발길질에
파괴의 흔적 껴안고 살아간다 믿었던 불구
중첩된 우울을 이젠 결박하고 싶다
인간사 다 엿본다는 전화번호를 달고
만원의 사람들 상처를 질질 끌고 버스는
지구 표면 길이 세워 둔
채집망 걸친 가로수 사이를 유유히 굴러가겠지
내게 뒷통수를 얻어맞은 앞사람은
누구일까? 석가나 예수나 장자일지라도
내게 무슨 항변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머지않아 뒷자리에서
내 뒷통수를 후려칠 달이
자꾸 버스를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