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단상 시
노인의 뇌 속에는
오랜 일기장이 들어있다
자잘한 것 다 거르고
결코 말로는 꺼낼 수 없었던
고민, 충격, 서러움이 걸려있다
상대방의 기억과 내 기억이
다르다는 것에 실망이지만
촘촘한 오늘의 굴레에서
하루를 펼치고 하루를 소진한 내가
흔들 그네를 타고 있다
권분자 시인의 ‘거미줄’은 매우 짧지만,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시를 분석하면서 각 행의 의미, 표현상의 특징,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섬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첫 행인 ‘노인의 뇌 속에는’ 시의 배경이 되는 인물, 즉 노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노인의 뇌는 흔히 경험과 기억의 보고로 여겨지는데, 이 행에서는 이러한 뇌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두 번째 행 ‘오랜 일기장이 들어있다’ 는 노인의 뇌 속에 일기장이 들어있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노인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나타낸다. 일기장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을 의미하며 이는 노인의 기억과 경험이
매우 개인적이고 소중한 것임을 암시한다.
세 번째 행 ’자잘한 것 다 거르고‘는 일기장의 내용을 선별하여 중요한 것만 남겼음을 뜻한다. 이는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노인의 뇌 속에는 사소한 일들은
사라지고, 중요한 기억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네 번째 행 ‘결코 말로는 꺼낼 수 없었던’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경험이 노인의 뇌 속에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 세계를 강조하며, 노인의 삶 속에서 감정적으로 중요한 순간들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다섯 번째 행 ‘ 고민, 충격, 서러움이 걸려있다.’는 노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감정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민, 충격, 서러움은 모두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감정으로, 이는 노인의 삶이
단순하지 않고 다양한 감정이 혼재했음을 나타낸다.
여섯 번째 행 ‘상대방의 기억과 내 기억이 다르다는 것에 실망하지만’은 기억이란 주관적인 것이며, 다른 사람과 나의 기억이 다를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이해의 차이와 그로 인한
실망을 표현하고 있다.
일곱 번째 행 ‘촘촘한 오늘의 굴레에서’는 오늘날의 삶이 매우 바쁘고 복잡하다는 것을 묘사한다. ‘촘촘한’이라는 표현은 현대인의 일상이 얼마나 뻑뻑하고 숨 가쁜지를 잘 드러낸다.
여덟 번째 행 ‘하루를 펼치고 하루를 소진한 내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과점에서 지친 자신을 나타낸다. 이를 일상 속에서 소진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강조하며, 노인의 삶이 이제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졌음을
나타낸다.
마지막 행 ‘흔들 그네를 타고 있다.’는 시의 마무리로, 인생을 흔들 그네에 비유하고 있다. 흔들 그네는 안정적이지 않지만, 그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는 노인의 삶이 이제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찾으려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인간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일상의 고단함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노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통해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고자 한다. 또한, 일상 속에서
소진되어가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노인의 뇌를 일기장에 비유한 것, 그리고 인생을 흔들 그네에 비유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독자가 시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하며,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흔들 그네’ 라는 비유가 다소 전형적일 수 있다. 조금 더 참신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면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는 욕심이 든다. 예를 들어, 인생을 거미줄에 비유하여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그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을 더 강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권분자 시인의 ‘거미줄’은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현대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이 시는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