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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아해방 07화

감정 중독자

디폴트 감정에 지배받는 삶

by 휘바

혹시 고통과 분노에 중독되어 있지는 않나요?


6년째 장기 연애를 해온 B는 1년 전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 걸 발견했습니다. 여자 친구는 진심으로 뉘우치며 후회했고 B도 오래된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그는 결국 여자 친구를 용서하기로 했죠. 그러나 감정들까지 용서한 건 아니었습니다. 티비나 매체에서 바람피우는 내용이라도 나오면 그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고 매번 그녀와 싸울 수밖에 없었어요.



B는 자신이 과거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람피우는 이야기를 더 찾아보기도 했죠. 잠자리에 들거나 운전을 할 때면 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어요. 기분이 절대 좋진 않았지만 어딘가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질투심과 배신감에 중독되어 있었어요.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버린 감정이지만 감정 중독자들은 그 감정에 자주, 쉬이 빠져버려요. 감정 소비가 술이나 약물을 섭취할 때처럼 우리의 뇌에 강력한 화학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중독된 감정은 안정, 위안, 도피처가 되어줘요. 충동적이던 감정이 반복되고 집착으로 자라나 결국 중독을 일으킵니다.


감정 중독자들은 감정의 의지해 살아가면서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디폴트 감정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그들의 경험과 세계관을 지배하고 이는 그들이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굳어집니다.



분노라는 감정에 익숙해져 있다면 불확실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분노로 대응하기 쉽겠죠. B처럼 분노 안에 자신을 가두고 나서야 정상적인 기분을 느끼고 안정을 되찾기도 합니다.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중독에 빠져있는 사이 그들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후회할 행동을 하며 자기 관리에 실패하죠. 감정에 휘둘려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망치는 것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해요.





감정 중독에서 벗어나기



1) 감정은 나의 친구


습관적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을 알아차리려면 일단 감정에 익숙해져야겠죠.


감정과 친해지는 법


중독이 오래될수록 체화된 감정이 나의 일부분이 되어 이 감정 없이는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감정에 예리해질수록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인식이 바로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입니다.


2) 되새김질은 소나 주자


B는 이미 머릿속에서 여자 친구의 배신을 수백 번 경험했어요. 불쾌했던 과거의 경험을 곱씹는 것은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죠. B가 여자 친구와 헤어진다 해도 감정에서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경험이 주는 감정에 다시 빠져있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게 좋아요. 운동이나 독서 같은 긍정적인 활동도 좋지만 감정에 집중하는 것을 멈출 수만 있다면 티비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3) 감정 프로그램을 재설계하자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감정의 힘이 나를 압도한다면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명상이나 기도를 통해 평정심을 되찾을 수도 있어요. 평소에 도움이 됐던 명언이나 만트라를 되뇌는 방법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4) 우리 모두 감정에 약한 동물


감정 중독에 걸려있다고 해서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어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지 내 잘못은 아닙니다.


원시 본능으로서 진화해온 감정은 당연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우회해 급발진하게 되어 있어요. 전두엽마저 구급차에 길을 비켜주는 차들처럼 얌전히 변연계에게 자리를 내어주죠. 감정을 이용해 투쟁 혹은 도주 판단을 내리는 변연계에게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5) 인내심은 필수


감정 중독을 알아차리기까지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중독은 무엇이든지 순식간에 벗어나기 어려우며 완전한 해방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단번에 고쳐지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고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즐기는 게 좋아요.






분노나 치욕 같은 감정은 편안함이나 안정감 같은 감정보다 훨씬 강력해요. 그 톡 쏘는 짜릿함은 탄산음료보다 중독적입니다.


탄산음료는 못 끊었지만 저는 더 이상 감정 중독에 시달리지 않아요. 문득 찾아온 불청객 같은 감정을 문전박대하며 전혀 새로운 종류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감정도 결국 내 생각의 소산입니다. 자신의 생각의 주인이 되는 순간 감정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치트키가 되어 줄 거예요.




*사진 출처: British Library, Ashkan Forouzani, Pch.vector,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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