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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12. 2024

아이 덕에 취직하다

나는 대치동 학원 실장이다.

시작은 극성맞은 엄마의 계산이 용기로 이어지면서였다.

아이는 중학교 때  과학 소논문 자율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대표 엄마가 소논문을 모아 책을 출판해야 하는데 제발 누가 해주세요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고..난 할 수 있는데...속으로 이야기하다 결국 나서서 저요~ 제가 할게요. 하는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 동아리는 나를 빼고 서로 다 아는 엄마들인 상황이었다. 나서서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이리저리 밤새 구르고 궁리하다 손을 들게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동아리 차기 대표를 있는 기회를 얻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누가  떠밀지 않아도 앞으로 성큼 나설 있는 힘을 주다니. 엄마는 용감하다는 말을 이런 수 있으려는가.

그렇게 21세기 들어오면서 손 놓고 있던 한글 편집 프로그램을 다시 하니 새록새록 기억났고 재미가 있기까지 했다. 어라~ 아직 살아있네. 하며 내친김에 학원 교재 편집하는 아르바이트를 지원해 일을 시작했다. 그 학원은 시간이 흐르며 중등 수학학원을 하나 더 운영하게 되었고 실장 일을 의뢰했다.

그렇게 얼결에 대치동 수학 학원 실장이 되었다. 수포자로 학력고사 원수의 과목이었다. 그런데 대학을 서너 계단 내려앉아 쓰게 한 수학을 다루는 학원에서 실장이라니.  세상의 많은 실장들의 비전문성을 몸소 증명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지금까지 대치동 수학학원 실장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은 정녕 맞다. 나도 모르게 실장일이 철썩 몸에 붙고 배운 일이 되었다. 어색해서 전화 한 통 받으면 절절 기던 사람은 사라지고 잘 몰라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위기를 모면하는 스킬도 늘었다. 쓸데없이 성질을 부리는 엄마들의 신경질적인 언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도 어지간히 생겼다. 다른 일을 하려고 도모하다가도 다시 결국 여기에 있다.

 


대치동 학원 실장이라고 하면 어머 그 텔레비전에서 보는 그런 사람이신 거예요. 한다.

하지만 나는 극성맞으나 유능하고 입시의 최전선에서 학원 일을 컨트롤하는 그런 사람일 리 만무하다.

사실 경력단절녀 엄마들에게 문턱이 낮아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이 직업이다.

몇 달 전 모 매머드급 학원의 실장 면접하러 간 적이 있다.

또각또각 저 멀리서 오는 누가 봐도 커리어우먼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로 다가온 부원장은 내가 그동안 해온 실장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따뜻하였으나 좁은 것인지를 1시간 동안 알게 해줬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저희 아이 둘을 드러나지 않은 좋은 선생님들과 연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아이의 입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지요. (아마 의대를 간 모양이다.) 이 직업은 허들이 낮아서 많이들 시작하지만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최근 저희 학원에 한 명이 그만뒀는데 그 사람은 스스로 그만뒀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한 달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혀서 그만둔 겁니다. 그것조차 몰랐다는 것이 그 사람의 무능의 증거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다이어리에 빼곡한 그만두었던 실장의 문제점 적은 페이지를 보여줬다. 어라. 뭐야 나한테 왜 이래.


"태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물병을 제가 저기 놓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 저기 놓아야 해요. 2회 차가 될 때까지 수강료를 안 내면 아이 핸드폰으로 직접 엄마한테 전화해야 합니다. 물론 기분 나쁘게 하면 절대 안 되지요. 수강한다고 하고 안 나타나는 것도 책임져야 해요. 저는 상담 성공률 100퍼센트랍니다. 학원에서 퇴근해도 항상 일이 있으면 대응하고 진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아 저는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제 생각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런 게 나아요. 한다고 하고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문제죠"


그러면서 월급은 220을 주고 그것도 수습 기간에는 덜 준단다.

주 5일이 모자라 집에서도 항시 대기에 저런 마귀 같은 사람한테 시달리는데 실화야? 이건 진정한 착취다. 속으로 미친 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하며 한 시간 동안 시달린 후 헤어지는 순간 물어보았다.

"부원장님은 몇 년 이 일을 하셨어요?"

"5년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이룬 자의 득의만만한 표정을 뒤로 하고 나온 나는 어찌나 혼이 빠졌던지 차를 거꾸로 타 다음 일정에 늦고 말았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과장 아니야 하는데 진짜 실화라고 오히려 더욱더 심한 말도 많이 들었지만 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대치학원을 잘 모르는구나. 아 정말 알고 싶지 않아. 이런 세상은.


스카이캐슬을 보면서 어랏 과장이 심하네 저런 거 난 못 봤는데 했던 것은 어쩌면 내가 잘 몰라서일 수도 있다.

처음 대치동에 왔을 때 cms 실장은 내게 그랬지

"잘 모르시지만 대치동 아이들은 초5때부터 달립니다. 지금부터 이러저러한 것을 해야 그때 제대로 달릴 수 있어요."라고 했었지, 그래.

나는 그런 실장 아니어요.

아무래도 여기서 전문가가 되긴 힘들 거 같다. 영재고 팀 수업을 핸들링하는 실장들은 떼돈을 벌고 건물을 산다는데. 나는 적은 돈 받으며 친절하기만 한. 꼭 이걸 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그럭저럭 미지근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전문적인 실장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결국.

뭐 그래도 이런 태도가 이 안에서 나름의 다른 쓸모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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