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고, 시간은 짧고, 마음은 절박하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사업에 선정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경쟁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기사*에 따르면 '24년 기준으로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교수의 선정률이 약 25% 정도라고 하니, 결국 네 명이 지원하면 세명은 떨어지는 셈이다.
기관에서는 평가와 선정을 아래와 같은 절차로 진행하는데, '예비'선정 단계에서 선정될 과제를 미리 공개하고, 어떤 과제가 표절이거나 이미 연구가 진행되었던 중복과제인지를 신고받는다. 그런 과제는 '최종' 선정에서 제외시킨다.
또, '예비'선정 단계에서 탈락된 과제 중에서도, 이의 신청을 받아서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진 과제는 추가로 '최종'선정 과제에 포함시켜 선정하게 된다.
접수 > 평가 > 예비선정 > 최종선정
탈락한 과제의 이의신청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10일 정도의 기간을 주고 접수하고 있는데, 보통 기관에서 안내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ㅁ 재단의 명백한 행정오류(평가절차 등)의 경우
ㅁ 평가자의 평가의견 중 평가결과가 번복될만한 결정적 오류가 발견된 경우
우선, '명백한 행정오류'라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 인정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예상 가능한 것을 생각해 보자면 평가와 관련해서 재단의 행정적 오류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불이익)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발표평가를 하는데 재단으로부터 제때 안내받지 못해서 다른 신청자에 비해 현저히 준비할 기간이 부족했다거나, 재단에서 연구계획서 양식을 잘못 알려줬다거나, 답변을 잘못해서 연구계획서를 잘못된 방식으로 썼는데 그걸 평가자가 지적해서 평가의견으로 썼다거나, 재단에서 공고한 신청요강 자체에 오류가 있어서 연구계획서를 잘못 작성했다거나, 평가자가 본 내 연구계획서가 평가 진행과정에서 훼손된(일부가 삭제되었거나, 그림을 추가했는데 깨졌거나 등..) 것을 가지고 평가하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거나 등등의 사례가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재단이 행정적인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서, 잘못을 하여 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주장과 그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단은 매일 하는 업무이다 보니, 이런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사람이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다만 행정적 오류가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면, 이의신청을 통해 확인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의제기 하는 것을 추천한다. 요즘은 외부에서 의혹을 제기하면, 철저하게 조사하고 확인해서 처리한다.
그렇다면, 두 번째, '평가의견 중 평가결과가 번복될만한 결정적 오류가 발견된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는 이의를 제기할 만한 거리는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연구를 A라는 일정을 가지고 하겠다고 썼는데, 평가자가 'B라는 일정으로 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아쉬움이 있음' 이런 식으로 계획서의 내용을 혼동해서 평가의견을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평가자가 여러 과제를 평가하다 보니까 정말 과제를 헷갈려서 내용을 잘못 본 걸 수도 있고, 단순히 평가의견 입력하는 부분을 잘못해서 입력한 경우일 수도 있다. 후자처럼 단순히 평가의견 입력하는 부분을 잘못해서 입력했다면 이건 기관에서 확인하고 교체해 주면 될 일이고, 이걸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다소 어렵다. 왜냐하면, 평가를 잘못한 것은 아니고, 안내를 잘못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꽤나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아무래도 평가하는 과제의 수가 몇천 과제이다 보니..).
다만, 그게 아니라 전자의 경우처럼 평가자가 여러 과제를 평가하다가 연구계획 내용 자체를 헷갈려서 나는 그렇게 쓴 적이 없는데 다른 계획서의 내용을 가지고 내 과제를 평가했다고 하면 이것은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 사례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을 이유로 이의신청이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기관에서는 그러한 이의신청 내용을 감안해서, 평가자가 제대로 다시 평가했을 때 해당 과제가 탈락에서 선정으로 바뀔만한가를 따진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평가결과가 번복될 만한 결정적 오류가 발견된 경우'라고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 오류가 선정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가?를 따진다. 평가자가 잘못 봤다고 해도, 제대로 봐도 어차피 떨어질 과제였다고 하면 이의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평가자의 실수는 아쉽겠지만.
그렇다면 이의신청서는 어떻게 써야 할까?
이의신청서를 쓰기 전에 이의신청한 과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절차는 굉장히 공정하게 진행된다. 이의신청된 과제는 우선, 기존의 평가자가 아닌 새로운 평가자가 평가하게 된다. 이로써, 기존의 평가 결과를 번복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할 수도 있고, 제삼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새로운 평가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단계) 타당성 검토는 쉽게 말해, 이의신청 할만한 내용인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의신청 내용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조건 '행정적 오류', '평가의견에 오류가 발견된 경우'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의신청서에서 자기 연구가 얼마나 학술 생태계에 필요하고.. 중요하며.. 자기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며.. 지원받기를 바라며.. 선처를 구한다는 내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아쉽지만 이러한 내용은 대표적으로 타당성 검토에서 기각되는 사례이다. 물론 안타깝고,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들겠지만, 그렇게 써서는 안 된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사례에 해당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내가 이의신청하는 것은 당신들이 말한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2단계) 정밀 재평가는 위에서, '아 이 이의신청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겠군~'하는 것들을 모아서 새로운 평가자가 심도 있게 살펴보는 것이다. 자세히 보고, 왜 추가로 뽑아야 하는지 혹은 그대로 탈락시켜도 될지를 자세히 판단한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평가자가 본다고 하더라도, 다른 평가자가 탈락이라고 판단한 것을 선정해야 한다고 새롭게 주장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의신청서의 내용에 왜 이 과제가 받은 평가의견이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 얼마나 부당하게 낮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평가가 아니었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아 선정될 만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써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써야 한다.
(3단계) 종합평가는 앞에서 진행한 두 번의 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었는지를 다시 또 다른 외부사람들이 살펴보는 것으로, 이의신청한 내용을 제대로 평가했는지 연구자의 권리를 보장했는지를 살펴보는 단계이다. 앞의 절차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의신청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게 되고, 대체로 학술진흥법에서 제21조에서 정하고 있는 바에 따라 30일 내에 그 결과를 확정하고 연구자(대학)에게 통보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의신청을 인정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번 누군가 평가한 것을 뒤집으려면, 중대한 오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평가의견에 대한 이의신청은 모두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또 신청자는 이의신청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타당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이의신청을 하는 것은 신청자의 당연한 권리이다. 타당한 사유라고 하면, 기관에서는 공정하게 재검토를 진행해 줄 것이고, 이로 인해 신청자가 받는 불이익은 전혀 없기 때문에 제출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인정받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굉장히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