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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댓츠올 Jan 15. 2023

영원한 건 없고, 삶은 계속된다

나를 새로운 루틴으로 보내는 법



파주출판단지에서 꽤 오래 근무했다. 파주에서 근무한다면 외근을 나간다 해도 대개 서울에서 하고, 가져갈 짐이 많지 않다면 파주에서 서울까지 나가는 길은 대중교통이 더 편리하고 가깝다. 물론 차가 있다면 편리한 점이 훨씬 많았겠지만, 면허를 따고서도 차를 사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끈질기다 생각하고 누군가는 무던하다 생각할 수 있는 통근길이었을 것이다.


난 무던한 편이었다. 외근을 나가면서 조금 불편하다 생각해도 여유 있게 나가서 여유롭게 미팅을 끝낸 뒤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와 집에 왔다! 환호하며 금세 잊어버리곤 했으니까. 그렇다 보니 내 평일 하루 루틴은 합정역으로 가서 통근버스 혹은 광역버스를 타고 자유로를 거쳐 파주 출판단지로 이동, 회사로 들어가 나인투식스 업무시간, 퇴근 후 통근버스를 타고 합정역에서 내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 외의 일과는 그날그날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므로 루틴으로 묶을 수는 없을 것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마포구 내에서 상황에 따라 이사를 했으므로 거주지는 그때그때 크지 않은 범위 내에서 달라지곤 했다. 하지만 어쨌든 출퇴근 거점은 합정역이다 보니 퇴근길에도 일정 루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이렇다. 2호선 합정역이 있는 사거리 교차로에는 긴 것 네 개, 짧은 것 네 개 총 여덟 개의 횡단보도가 있다. 그중 신호등이 있는 것은 여섯 개이고 나머지 두 개는 없다. 오래 출퇴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버스를 타러 가거나 혹은 내릴 때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나름의 루틴이 생겼다. 건너편 길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 짧은 횡단보도를 건넌 후, 그 김에 이어지는 큰 횡단보도까지 건널 수 있도록 신호가 이어졌으며, 그다음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기까지는 달리지 않는 이상 통과하기 어려우므로 다음 대기신호를 한 번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대각선 도로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 A 지점에서 B, C, D 지점으로 건너가기까지 몇 개의 루틴이 있다.


루틴을 언제부터 익힌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리듬을 깨닫고서는 집에서 나가는 시간을 분과 초 단위로 면밀히 계산해서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타곤 했다. 그런데 (2022년) 7월부터 이 루틴이 깨졌다. 이전부터 깨졌을 수도 있지만, 깨달은 건 7월 즈음이었다. 몇몇 구간의 신호등 패턴이 바뀐 탓이다. 패턴이 단순화되어 빠르게 건널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세 번의 신호를 다 기다려야 하는 꼴이 되었는데, 짧은 횡단보도 두 개를 신호 때문에 기다리고 있자니(하나쯤은 이어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이 합정역 사거리를 건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요소로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그걸 깨달은 뒤부터는 종종 지하철로 들어가 계단을 통해 건너간다. 기다리면 된다지만 가만히 서 있느니 차라리 움직이겠다는 급한 성격 탓이다.


왜 바뀌었지? 나처럼 습관처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다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교통사고가 날 것을 고려한 구청 혹은 시청의 계획일까?


궁금했다. 비슷하게 합정역 주변에 거주하거나 합정역을 자주 다니는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다들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는 루틴 따위는 없었다는 양 멍한 얼굴로 “아, 그랬었나?” “그게 그렇게 이어졌어?” 했다. “정말 그랬다니까” 하며 “너무 당황스러워!” 흥분하여 말하는 내 말은 그 시점 지나간 과거가 되었으므로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증명하더라도 당황스러운 건 좀 오버 같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별스러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깨달은 후부터, 이 변화에 너무나도 사로잡혀서 궁금해하고 괴로워하곤 했다.


합정역의 신호 체계가 바뀐 것에 계속해서 의문을 품던 중 최근 그 의문이 다소 해소되었다. 역 근처에 자리한 분식집에서 만두보다 맛있는 쌀떡볶이를 먹고 건너오는 길에, 반대편으로 건너려 멍하니 서 있다가 깨달은 것이다. 여기에 없던 횡단보도가 새로 생겼다는 것을! 게다가 그 횡단보도가 신호등을 보유한 횡단보도였다는 것을! 없던 횡단보도가 생긴 건 그전 해에 합정역에 역세권 청년주택이라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완공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아무래도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 이들이 집에서 나와 반대편으로 빠르게 건너고 싶었을 테니 시민의 안전을 위해 횡단보도가 추가로 만들어졌겠지. 정말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그럴듯한 추론으로 생각된다.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런 것들은 너무 당연하게 변한다. 때로는 편리에 따라 때로는 실익에 따라 때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이유로 인해.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잠깐은 이상하다 생각하더라도 곧 납득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금세 내 루틴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영원히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주었으면 좋겠으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익숙한 루틴 속에서 낯선 변화가 될 수도 있겠지. 당연하게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십 년을 넘게 이어져 온 나의 출퇴근 루틴이 바뀐 것 또한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와 맞닿는다. 출근할 때는 횡단보도 몇 개를 건너서 출퇴근 버스로, 퇴근하고 나서는 횡단보도 몇 개를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며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이 일상이, 내가 파주출판단지를 벗어나고부터는 전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신호 체계의 변화는 내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으나, 출판단지로 출퇴근하지 않게 되자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출퇴근 루틴이 없어도 가끔 다른 일과를 위해 횡단보도는 필연적으로 건너야 하므로 교차로에 서 있을 때면 여전히 그때의 루틴을 생각한다. 일분일초라도 늦게 출근하고 빨리 퇴근하기 위해서 내가 면밀히 계산한 경로에 대해서. 나의 생활 속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짧은 횡단보도와 긴 횡단보도를 차례차례 건넌 후,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면 그때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곤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이 아니라서겠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달려온 방향은 여전하여 오래 잊지 못하겠지만 다시 새로운 방향을 정하고 그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그리고 새로운 루틴 속에 나를 편안히 풀어두다 보면 이전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언제나 그 순간인 듯 선명하면 좋겠지만 나의 기나긴 삶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간다. 지나간 것이라 해서 그때의 순간이 사소한 것이었다고 터부시할 수는 없다. 이윽고 희미해질지라도 과거는 과거대로 그림자를 뒤로 길게 늘이고 있고, 그 끈을 팽팽하게 잡아끌고서 나는 앞으로 걸어갈 테니까. 바뀌는 신호 속에서도 곧 적응하고, 변화의 원인을 감지하고,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나만의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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