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이 생겼나? 식물의 중얼대는 소리가 들려오다니. 일과를 마치고 베란다에 서서 창밖 검푸른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지?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다. 단지 그곳에는 백량금 한 그루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속삭이듯 낮은 음성. 청각이 아닌 느낌으로 들려온다. 언뜻 ‘힘들고 외롭다’ 다는 뉘앙스다. 옆에 있는 백량금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혹여 상상인가 싶었지만, 분명 백량금의 신세 한탄이다. 내 어깨만큼 자란 그 나무를 오랫동안 내려다본다.
백량금은 십수 년 전 어느 지인으로부터 이사 기념으로 받은 식물이다. 집에 들어온 백량금은 하얀 화분에 앙증맞게 자리했다. 달리 만냥금으로도 불리는데, 공기정화뿐만 아니라 남다른 이름 때문에 재복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날 이후 지금껏 창가 베란다에서 터줏대감처럼 지내왔다. 겨울철 가지에 열리는 백량금의 붉은 열매는 고혹적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라고는 백량금 한 그루뿐이다. 아내는 반려동물이나 실내 화초에 관심이 없다. 나 또한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나무를 돌볼 겨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분갈이는커녕 영양제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했다. 참으로 무정한 주인이랄 수밖에... 학생들 앞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면서 정작 집에서 자라는 생명에게는 박절했으니, 할 말이 없다.
다시금 백량금을 바라보았다. 측은했고 미안했다. 오죽이나 외롭고 막막했으면 내게 말을 걸어올까. 그 심정이 와닿았다. 한때 내게도 지금의 백량금과 같았던 계절이 있었으니까. 대학은 졸업했지만 세상에 첫발을 내딛기란 쉽지 않았다. 공채로 입사했던 첫 직장을 몇 개월 만에 그만두고, 친척 어르신과 영광에서 LPG 충전소를 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벌써 사업을 하냐며 부러워했다.
위험 시설 충전소는 도심 밖 외곽에 있어야 한다. 사방이 들판인 작업장에서 종일토록 수백 개의 가스통에다 부탄가스를 충전해야 했다. 작업을 하는 충전원 대다수가 노약자들인 탓에 사무실에 있다가도 작업장으로 달리곤 했다. 당시 나의 근무 복장은 와이셔츠에 예비군 바지였고. 숙소는 회사 안에 있었다.
당연히 개인 생활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가스통이 구르는 금속음에 잠을 깼고, 오후 세 시면 은행으로 달려가 정유회사에 입금했다. 해가 저물면 주변은 어두운 논과 밭일뿐. 개구리울음도 외롭게 들려왔다.
서른도 안 된 청춘이었다. 하루는 지루했고, 다른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낯선 땅에 귀양살이하듯 지내야 하는 처지였건만 다른 길을 찾겠노라 어른들께 말하기란 힘들었다. 그 꿈이라는 것이 홀로 지내야 하는 종교인의 길이었으니. 부모님이 찬성할 리 만무했다. 그저 속앓이만 할 뿐이었다.
사면초가였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커다란 탱크 롤리의 시동음과 가스통 구르는 소리, 분주히 들어오고 나가는 택시들과 트럭의 경적. 거래처 기사들의 외침. 이런 소리와 함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결심을 했다. 영광을 떠나기로.
며칠 뒤, 거래처에 송금한 후, 여수행 버스를 탔다. 팔자에 없던 가출이었다. 당연히 직장과 집에서는 소동이 났다. 여수에서 만난 친구에게 사정을 말하고서 나의 돌출행동과 번민을 정리하려고 했다. 이틀 후, 부모님께 내 심경을 고했다. 다들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종교인에 대한 꿈은 접기로 했다.
돌아보니 세상을 배우는 수련기가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지금의 백량금도 그때의 나의 처지는 아닐는지. 물론 백량금의 하소연은 나의 상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무의식이 그런 식으로 튀어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읽었던 『식물의 정신세계』에는 식물에도 의식이 있다고 했다.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 설명이 맞다면 힘겨운 백량금이 내의식에 접속해서 메시지를 보낸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우리의 오감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백량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방법을 찾아보니, 무릎을 칠만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잠들고 있는 대원사 영가탑 근처로 옮겨심기로 했다. 전부터 영가탑 주변에 나무 두세 그루를 심고 싶었다. 백량금도 야외에서 여러 나무와 함께라면 기뻐할 것 같았다.
주말에 백량금이 심어진 화분을 들고 아파트 화단으로 갔다. 힘들게 나무를 화분에서 빼내다가 놀라고 말았다. 화분 속에는 백량금 뿌리들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화분에 든 내용물은 흙보다 스티로폼이 많았다. 견디다 못한 뿌리들이 스티로폼을 감싸거나 뚫고 있었다. 나는 백량금 뿌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4월 하순, 태양이 숲에 쏟아진다. 영가탑 좌우로 나무뿌리가 충분하게 들어갈 만큼 파기 시작했다. 작은 종묘 삽으로 땅을 파는 작업은 더뎠다. 먼저 표층에 덮고 있는 잡초를 제거한 다음 흙구덩이를 파냈다. 도중 삽에 부딪친 큰 돌멩이를 파내느라 굵은 땀을 흘렸다. 제법 넉넉한 구멍을 생겨났고 그곳에 나무들을 조심스레 옮겼다.
새로운 터를 잡은 백량금과 황금사철나무를 주변 흙으로 다졌다. 그 자리에다가 물을 듬뿍 주면서 말을 건넸다. ‘백냥금아. 함께 있는 두 그루의 나무와 친하게 지내렴. 그간 애썼다.’라고. 새소리와 개울물 소리. 그 위로 쏟아지는 수정 같은 햇볕. 괜스레 흐뭇해진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날 때쯤. 산에서 내려온 미풍이 백량금 곁을 스쳐 간다. 나뭇가지가 너울댄다. 좋아 죽겠다는 듯 연둣빛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