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야겠니?

더 넓게 보는 세상과 조금 다른 형태의 아프리카 그룹투어

by BOSS


"아프리카? 하필이면 왜 아프리카로 결정했니?"


3주 동안 아프리카 4개국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는 큰아이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나온 질문입니다. 이곳저곳 전 세계에 가볼 곳도 많은데 굳이 아프리카를? 위험할지 모르는데 가는 게 괜찮을까? 이런저런 기우가 저도 모르게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웬만한 곳은 다 가봤고 아프리카 여행이 제 위시리스트 (Wishlist)에 있어요. 혼자서 하는 여행이 아니고 그룹 투어 형식으로 가는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룹 투어 형식이라고 하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는데 캐나다에서 같이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사는 멤버 각자가 지정된 아프리카 도시의 한 곳에 모여 투어를 시작하고 일정이 끝나면 흩어지는 방식이라고 알려줍니다. 큰 아이는 한 지붕 아래 같이 살 때도 일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더니 3년 전 조그만 콘도를 사서 독립해 나가면서부터는 자신의 개인 생활을 아주 체계적(?)으로 즐기는 모습입니다.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혼자 돌아다니는 모험과 여행을 많이 하고 철저한 YOLO (You only live once)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반대한다고 가지 않을 아이도 아닙니다.




"투어형식으로 가니까 자주 연락드리고 다녀와서 아빠 생신 때 만나요."


공항에 내려주고 돌아서는 저를 안아주며 이야기합니다. 다 컸구나... 다리 아파서 못 걷는다고 안고 업어 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와이프는 늦어지는 결혼을 또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빨리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되는데 시간만 나면 렇게 밖으로만 도니 걱정이네"


저는 와이프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인생에서 물론 결혼이 중요하지만 꼭 부모나 주위의 성화에 밀려서 할 필요도 없고 전문 기술의 직업이 있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가능하다면 싱글로 사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큰 아이는 그동안 지냈던 일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프리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금 거친 황무지와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사파리가 전부가 아닌 남미의 아마존을 방불케 하는 녹색과 강렬한 원색의 꽃들이 어우러진 장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 놀랐던 것은 투어 멤버 8명이 전부 유럽과 북미에서 온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었고 2명의 현지 가이드와 함께 SUV 차량을 이용해 호텔, 리조트, 때로는 야외에서 텐트로 숙식하며 다니는 그야말로 현장 체험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멤버들 대부분은 아프리카를 포함해 1년간 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사파리의 야생 동물들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다니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본인이나 부모가 부자인 모양이네"

"그렇지도 않아요. 돈 많은 멤버도 있지만 그동안 모은 돈으로 휴직하고 온 사람도 있고 직업도 다양해요."


실제로 현직 간호사, 전문 포토그래퍼, 교사, 마케터등 다양한 직업이었고 이 투어를 끝으로 큰 아이와 다른 한 멤버는 그룹에서 빠지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장소로 이동해 새로운 투어 멤버와 합류하게 됩니다. 이런 형식으로 여행을 반복해서 일 년간 전 세계를 돌면서 하게 되는데 늘 일반적인 여행을 했던 저에게는 많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인 한 멤버가 촬영 장비를 가지고 다니며 찍은 영상들을 세계의 유명 잡지사에 보내며 여행 중에도 틈틈이 자신의 일(수입)과 연결시키며 여행을 계속하는 이야기도 제게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함께한 투어 멤버들 (Serengeti National Park)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와 함께 집에서 대형 TV화면에 올린 이번 아프리카와 예전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90년대 말 개인 비즈니스로 바쁘게 해외를 돌아다니던 시기에 국내 업체와 함께 동유럽 불가리아에 급히 출장을 갈 일이 생겼습니다. 그곳 업체와의 프로젝트 상담과 방문 사전 준비를 위해 저는 먼저 출발하게 되어 항공권을 구하려고 보니 불가리아까지 직접 가는 항공편이 없고 한국에서는 예약도 하기 어려워 독일에 도착해서 티켓을 사기로 했습니다.


새벽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공항에서 직접 불가리아행 표를 사려니 일반석은 이미 매진됐고 비즈니스석 밖에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격이 비쌌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고 공항에서 출발까지 6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에서 기다리던 중 뒤에 서있는 일본인들 중 한 명이 제게 말을 겁니다.


"혹시 비자를 받았나요? 아직 비자를 받지 않았으면 저쪽 보이는 창구에서 돈을 내고 임시비자를 받아야 입국 승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비용이 비싸던데... 백 불 이상됩니다."

"네? 비자받는데 돈을 낸다고요?


출발 전 한국에서 비자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들은 적이 없었는데 과연 여기에서 받아야 하는지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비자 창구로 향했습니다.


"비자를 받으려고 하는데요."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한국이요."

"북한이요? 남한이요?"

"남한, 대한민국입니다."

"여권 주세요"


창구 안으로 여권을 넣어주니 스캐닝하고 잠시 살펴보더니


"그냥 가셔도 됩니다."

"네? 비자를 사야 되지 않나요?"

"필요한데 대한민국과는 임시로 무비자 협정이 되어 있어 지금은 필요 없습니다."


웬일인가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입국심사 줄로 돌아오자 아까 뒤에 있었던 일본인이 다시 묻습니다.


"비자받았나요?"

"아니요. 한국은 일본과는 다르게 불가리아와 무비자 협정을 맺어서 필요 없다고 하네요."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가슴에서 뭔가 뿌듯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초대받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불가리아 담당자로부터 지금은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국의 대기업이었던 대우의 공격적인 동유럽 사업 진출로 당시 대부분의 그 주변 국가들과 무비자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모든 공항에서 사용하는 카트도 협찬받았고 대우의 광고 사진과 회사 로고로 공항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대우의 로고 (출처: Google)


영욕의 삶을 산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평가에 대해서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다양한 시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서 작은 무역회사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성공신화 뒤에는 그의 사업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도전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만 시대를 함께 호흡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롤모델이자 멘토와도 같았습니다. 그의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동기부여가 많이 되었고 그가 이룬 성공을 꿈꾸며 젊은 시절 5대양 6대주를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바라보는 좁은 시각을 세계라는 큰 숲을 볼 수 있는 시각으로 넓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과 경험에는 나이와 때가 없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에 체험할 수 있다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길잡이 혹은 자산이 될 것입니다.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누비고 돌아다닌 저의 세대와는 달리 높아진 한국의 위상으로 이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세계로 나와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젊은 시절엔 시간과 경제적인 이유로 하고 싶은 여행을 못했는데 여유가 생긴 지금은 그 열정이 사라지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어 그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만 달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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