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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Aug 28. 2023

90년대 한국음식을 맛보려면 LA로 가세요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1990년대 한식의 맛


미식가는 아니지만 직업적인 관심과 맛을 느끼는 감각이 조금 남달라 한국에서도 맛집을 찾아다닌 편입니다. 한국에서 겪었던 쓰라린 과거의 일들이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진 채 살아온 까닭에 캐나다에 온 후 20년 가까이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와이프는 집안 일로 그리고 아이들은 가끔 방문해서 친지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도 했지만 매년 휴가계획을 상의하다 한국 방문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자연스럽게 유럽이나 남미로 향하는 일정으로 덮어버리곤 했습니다.


"가족 4명이 한국에 가는 비용으로 유럽을 가면 훨씬 근사하게 여행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표현 가족들의 의견을 묻는 것 같지만 내면에는 '나는 반드시 유럽으로 갈 거니까 알아서 결정해라'하는 의미가 진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랬던 저였지만 인터넷과 IT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혜택으로 한국에서 방송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방송  바로 볼 수 있거나 심지어 라이브로 스포츠 중계를 동시에 보는 시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보는 것도 반가웠지만 먹방을 통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트렌드가 되면서 자주 방송에서 한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수구초심 때문인가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제 마음이 한국음식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민 오던 때만 해도 토론토의 한국 식당은 거의 동네 분식집 수준이었습니다. 한식에 사용하는 식재료의 공급에 어려움이 많았고 전문 셰프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캐나다에 이민 와서 음식 하나는 잘한다고 자부하는 분들이 직접 오픈해서 영업하는 식당들 대부분이어서 특별히 시간 내서 찾아갈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경부터 요리사 직업군이 이민 프로그램에 포함되고 또는 해외 취업으로 토론토로 유입되는 전문 셰프들이 많아지면서 음식이 업그레이드되고 식사업도 치열한 경쟁터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나 자연스러운 입소문을 통해 맛깔난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한식에 대한 만족감이 늘어났지만 한편으로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즐겼던 예전 음식의 맛이 기억에서 떠오르며 더 간절하게 그 맛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가 찾는 그 시절의 맛을 구현하는 식당들은 캐나다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한번 가야겠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코로나가 발병하기 바로 일 년 전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한국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음식점이야'

'엄마와 연애할 때 자주 가던 단골집이야'


하며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가야 할 음식점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추억의 맛집 방문'을 이번 여행의 메인이벤트로 했습니다.


리스트를 만들면서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 강남에 위치한 사무실 덕분에 단골집으로 자주 가던 양곱창곰바위,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우래옥, 논현동 만두집 그리고 업무관계로 시내로 가면 근처에서 하는 친구들과 점심식사로 즐겼던 하동관, 일식당 삼원, 오장동 함흥냉면, 저녁에 만나서 한잔하던 연희동 중식당 목란 등이 생각나고 그곳들 음식이 떠오르며 저도 모르게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우래옥의 불고기 (출처: National Geographic)




가족과 함께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19년 만에 찾아간 음식점에서 아이들에게 아빠와 엄마의 오래된 추억을 이야기해 주고 그렇게 그리워했던 음식들을 맛보는 일정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방문했던 모든 음식점들에서 식사하면서 한 가지 석연치 않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음식맛이 괜찮았니?"

"네, 너무 맛있었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답하지만 저에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음식에 100% 만족할 수 없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음식맛이 변했구나'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 입맛이 변한 게 아닐까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찾아가는 음식점마다 느끼는 바뀐 음식 맛은 제 기억 속의 남아있는 맛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식재료와 음식에 미세한 변화가 쌓여왔지만 20가까운 세월을 한 번에 건너뛴 제게는 한 번의 큰 변화로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실망감과 허전함에 이 을 보려고 것이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습니다.




식품에서 맛과 풍미의 변화를 줄 때에는 아주 미세하게 천천히 주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미국의 식품 대기업 Kraft Nabisco에서 생산하는 '오레오 (Oreo)'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크림 샌드 쿠키가 있습니다. 1912년에 처음 출시되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잘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입니다.


Oreo Cookie (출처: Google)


특히 이 제품은 생산 중에 모양이 균일하지 않아 샌딩 한 상태가 불량하거나 공정 중 생긴 크랙이부서진 쿠키를 별도로 모아 유명 아이스크림 업체나 패스트푸드 업체(쿠키 앤 아이스크림 & 맥 플러리) 공급하기 때문에 버릴 것이 거의 없는 정말로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입니다.


이미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쯤 거의 10년 주기제품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 찾아왔는데 모두 원료와 트렌드의 변화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트랜스 지방으로 인한 팜유로 만든 마가린의 사용, 물엿과 고과당의 사용변경, 쿠키에 사용되는 초콜릿과 용량등 제품의 맛과 풍미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미세한 변화를 주면서 오래된 소비자들이 바로 느끼지 못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그런 끊임없는 노력이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제품의 수명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캐나다로 돌아온 후 지인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한국방문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음식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감이 컸습니다."

"무엇기대했었는데요?"

"80, 90년대 그때의 맛을 기대했는데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오신 분이 묻습니다.


"그 시절 음식 다시 보고 싶으세요?"

"물론이죠."

"그럼 미국 LA에 있는 한인타운의 식당에서 찾으실 수 있어요. 그곳은 아직도 80, 90년대 맛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 음식점들이 많이 있어요"

"그렇습니까?"

" 시절 한국음식의 맛을 보려면 LA로 가세요." 


드디어 해답찾은 것 같습니다. 다시 설레기 시작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LA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옛날 음식 먹으러."


전면 사진 (출처: TripAdvi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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