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나는 루저였다. 방탄소년단이 2년 반 만에 대면 콘서트를 한다는데 표를 구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입덕한 늦덕이자 늙덕은 디지털 세상 속의 방탄소년단을 좋아할 뿐이었다. 코로나19로 대면 콘서트가 몇 번이나 무산되고 카메라만 세워둔 채 진행됐던 온라인 콘서트와 내 손이 닿지 않는 미국 LA 콘서트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데 이번에 대면 콘서트를 한다고 공지했고 좌석 수는 이제까지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한 회당 1만 5천 석. 3일 공연에 4만 5천 석. 그 전에도 성공하기 힘들어 피가 튀는 피켓팅이라고 불리는 아티스트의 공연 티켓팅이지만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내 자리는 꼭 있을 줄 알았다. 믿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바로 ‘초심자의 행운’. 예매 당일 성능 좋은 PC방에 갈 시간이 없었던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모든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결과는 처참했다. 3일 공연이면 4만 5천 석인데 대기 인원이 96만 명이었다. 물론 허수도 많았겠지만 뚫기 힘들었다. 몇 번이나 튕겨 나오며 오류가 났다. 말로만 듣던 피켓팅을 체험하고 나서 ‘나 정말 대단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렇게 취케팅(취소표 티켓팅), 취취켓팅을 기다리며 며칠을 새벽 3시 넘어 잤더니 일상생활의 리듬이 무너지기도 했다. 너무 간절히 가고 싶었지만 못 가게 되니 이 속상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고 표도 못 구하는 나의 무능함에 화가 나기도 했다. 콘서트에 같이 가기로 굳게 약속했던 덕메(덕질 메이트)님은 성공했는데 나는 표를 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가득이었다.
티켓팅 사이트에 수시로 들락날락거려도 절대로 잡히지 않는 표에 좌절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화와 속상함을 내려두고 미리 예매해 두었던(보험 장치) ‘라이브 뷰잉’에 집중하기로 했다. 라이브 뷰잉은 전 세계 특정 극장에서 공연을 실시간 스트리밍해 주는 서비스다. 같이 가기로 했던 덕메님은 라이브 뷰잉을 못 가게 되었다. 두 자리를 한 번에 결제했기 때문에 따로 취소가 되지 않았다. 두 자리를 취소하든지 한 자리를 버리든지.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고민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딸을 데리고 같이 보라고 했다. 흔쾌히 자신이 왔다 갔다 픽업해 주겠다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좋은 공연을 보면 중학생 딸의 스트레스도 좀 풀릴 거라고도 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지금은 아니지만 원래 딸은 ‘아미’였다. 그다지 탐탁지 않아했지만 그러마 하길래 안심하고 있었다.
라이브 뷰잉 당일인 오늘, 같이 가기로 약속했던 딸은 출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일어날 생각도 않고 잠만 자고 있었다. 조심조심 비위 맞춰가며 겨우 깨워 갈 준비를 마쳤다. 남편은 장거리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 모녀를 전주까지 데리고 가야 하고 거의 4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데려가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출장 후 피곤할 남편도 마음에 걸려 라이브 뷰잉을 포기하고 취소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속이거나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가기 귀찮아하던 딸은 시작하자마자 감동했으며 ‘구 오빠’들이 아직도 건재함을 깨닫고 재 입덕으로 이어졌다. 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황홀한 시간을 보내며 행복했다. 비록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현장에 있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물론 현장감을 100 퍼센트 느낄 수는 없었겠지만 취소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몇 번이나 스스로를 칭찬했다. 솔직하길 잘했다.
어설픈 배려는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한 아미의 덕질을 위해 온 가족의 희생이 필요했다. 피곤했을 텐데도 흔쾌히 전적으로 지원해 준 남편과 가기 싫은 데도 억지로 따라나서 준 딸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디테일한 상황들은 다 다르겠지만 가족의 지원이 필요했던 건 우리 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어제까지, 아니 오늘 오후까지도 루저였지만 공연 이후로 세상 다 가진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대반전의 날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비록 주경기장이 아닌 우리 동네에서 온갖 굿즈를 가방에 덕지덕지 달고 최애가 프린팅 된 담요를 두른 채 돌아다니는 엄마를 딸은 조금만 부끄러워하며 사진을 찍어주고 흥에 겨워 같이 춤도 추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모습을 본 남편은 ‘함께 공연을 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이라며 우리의 뒤풀이를 이해해 주었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 주위 모든 카페는 문을 닫았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편의점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딱히 맛있다고 할 수는 없는 커피지만 내게는 완벽하게 행복했던 오늘 하루를 마무리해주는 무결점 커피였다. 내 특별한 하루는 편의점 커피와 함께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 커피는 오늘 팔린 수십 잔의 커피 중 최고로 완벽한 커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