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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낱 Mar 14. 2022

비 오는 날, 씁쓸한 커피

 20대 대선이 끝났는데도 큰 언니한테서 연락이 없었다. 분명히 문자가 올 텐데, 아니면 흥분해서 전화라도 할 텐데 조용했다. 나도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겠기에 기다렸다. 잠시 동안은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은 허탈한 기분.      


  부산 사는 언니가 드디어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실망했고 분노했고 다독였다. 언니에게 나도 하소연했다. “나는 선거가 끝날 때마다 너무 속상해. 사상 검증당하는 기분 더러워. 내가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다들 내가 누구를 찍었는지 궁금해하고 단정 짓는 말까지 해. 그게 너무 상처야.” 내가 나고 자란 곳과는 전혀 다른 지역에 와서 살다 보니 이런 불편도 겪는다. 언니는 그것도 그것대로 힘들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더한 시절도 있었으니 또 견디다 보면 지나가지 않겠냐며. 이럴 때일수록 분출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크로스오버 뮤지션팀의 팬인 언니는 4월에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크로스오버팀의 콘서트에 간다고 했다. 좀 부럽네. 그래, 그렇게 당분간은 다른 곳에 몰두하며 지내보자. ‘그런 의미에서’라며 언니가 노래 몇 곡을 공유해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크로스오버 곡.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하는 찌르는 듯한 고음을 자유자재로 뻗어내는 카운터테너와 진하고 씁쓸한 초콜릿 같이 묵직한 바리톤의 조화가 절묘한 ‘lo ti penso Amore’. 마침 창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드디어 봄날이 오나 보다. 봄비와 좋은 음악이 있으니 맛있는 커피가 당겼다.      

 

 언니는 점심 먹고 형부와 함께 봉하 마을에 간다고 했다. 형부도 너무 힘들어한다며. 다행이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부부라서. 하긴 형제 많은 친정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멤버는 언니네와 우리 집뿐이다. 요즘 새삼 마음 맞는 반려인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가치관, 종교, 정치색이 같으면 그나마 조금 수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추구하는 삶인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지, 어디를 지지하는지는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닿아 있기 때문에 반려인에 대한 고민을   간과할  없다. 이런 것들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결혼하기는 했지만 지나고 보니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딸에게도 이런 점들을  살펴보라며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그나마  가지는 맞다. 가치관과 정치색. 종교는 다르지만 적어도 태클은 걸진 않는다. 우리 부부는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오는 다른 점들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바닥에 깔려 있다.  또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반드시 온다. 차가운 겨울을 뚫고 오는 봄이 힘들어서 그렇지 반드시 오기는 온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또 다행히도 별일 없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지만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하는 오늘 커피는 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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