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한 가지 걱정이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딸의 등교.
평소 아침 등교는 남편이 데려다 주지만 남편은 출장을 가버렸다. 여기서 몇 가지의 문제가 생긴다. 첫째, 나는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에 익숙하지 않다. 둘째, 나는 운전을 싫어한다. 셋째, 복잡한 출근 시간에 초행길인데 지각하지 않게 데려다 줄 수 있을 것인가.
예전 집 같았으면 통학버스를 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이사를 온 집에서 등교 시간 통학버스는 나한테 타라고 해도 못 탈 것 같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먼 곳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며칠 전부터 딸에게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아침에 통학버스 타려면 평소보다 훨씬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다짐을 받아 놓고는 있었지만 내심 내가 데려다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계속 머릿속으로 길을 상상하며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자꾸 하다 보니 왠지 데려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일찍 깨우고 채비를 시켰지만 학원 숙제 때문에 늦게 잤다며 아직 잠에 쩔어 있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내뱉었다. “엄마가 데려다줄까? 일찍 출발해서 천천히 가다 보면 지각은 안 하겠지.” 딸은 좋다며 다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침대에 누웠을 것이다).
긴장의 시간이 흐른 후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머릿속으로 그렇게 그려보던 길은 우리 집부터가 아니었다. 대로를 달리는 모습만 상상했던 것. 결국 직진해야 할 길을 좌회전해 버리는 바람에 조금은 돌아가야 했지만 길은 어디든 통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내비게이션을 따라 조심조심 운전했다. 초행길 치고는 그럭저럭 잘 도착했고 심지어 시간이 너무 남았다. 딸은 거기서도 10분만 더 앉아, 아니 누워 있다가 가겠다고 했다. 덤프트럭과 예민한 출근 차량들에 뒤섞여 내가 해냈다. 자칫 잘못하면 충청도로 넘어갈 뻔한 도로도 무사히 비껴가며 학교에 데려다준 것이다. 나는 허들이 낮다. 작은 성공이 큰 성취감을 준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딸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다들 고통스럽다며 아우성쳤지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딸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는 중학교가 맥락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중학교를 12지망까지 써서 내라고 하는 통지서를 받았을 때 본격적으로 학교 투어를 했다. 우리 집에서 통학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얼마나 오래되었나, 주변 환경은 어떤가. 여러 가지 선택지를 두고 학교들을 둘러보며 ‘학생도 없는데 이런 곳에 중학교가?’라는 의문을 가졌던 곳은 지금은 원도심이라 불리고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동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도시도 강산이 몇 번이나 흐르는 동안 개발되고 발전했다. 지금은 이 작은 도시에도 아파트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자연히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은 이동하고 원래 시가지들은 늙어가고 있었다. 요즘은 원도심 살리기 프로젝트나 문화 거리 등을 조성해서 관광지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기는 하다.
딸이 다니는 중학교도 원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가장 핫한 동네에 있다. 주말마다 관광객들이 전국에서 몰려온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자 사람들이 자연이나 국내 소도시를 찾게 되면서 더욱 인기가 높아진 듯하다. 원래 부산 사람들은 해운대에 잘 안 가고 서울 사람들은 남산 타워에 안 간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 사람들도 그런 것 같았다.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지지만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라 새로운 것이 조성되었다고 해도 굳이 가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사람 많은 복잡한 곳, 주차하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오래 살아도 원도심을 가는 것은 아직도 낯설고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이게 뭐라고 작은 도시 안에서 20~30분이면 끝에서 끝까지도 갈 거리를 망설여야 하는 나는 쫄보다. 그런 내가 시간이 여유로워 언제든 도착만 하면 되는 상황이 아니라 지각을 하면 안 되는 중학생의 등교를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생각에 부끄럽지만 살짝 자랑하고 싶어진다. 아침에는 빈속에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오늘 아침은 스스로에게 축하하며 커피를 내렸다. 원도심에 있는 ‘컨츄리맨’에서 구입한 ‘콜롬비아 수프리모’. 친구에게 선물받은 ‘아로마 보이’로 내려 아침을 즐겨본다. 과하게 무겁지 않으면서 약간의 산미가 입안에 맴돈다. 그러면서 이제 자주 나갈 용기도 낸다. 까짓 거 별거 아니네.
나이가 들어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고집이 세져서 사람이 떠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청나게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자꾸 새로운 것, 안 해 본 것은 시도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진취적이라는 말이 늘 따라붙던 나였는데도 말이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빠지고 쪼그라든다고 하는데 마음도 그런 것 같다. 마음도 쪼그라든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팽팽하던 마음은 바람이 빠지고 쪼그라들어 쉽게 주눅이 든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 나의 작은 도전은 이런 쪼그라드는 마음을 조금은 펴 주었다. 매일 작은 도전을 올해 목표로 삼아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몸의 근육도 마음의 근육도 붙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