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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좋아 Nov 16. 2024

아내의 나무

한국형 마술적 리얼리즘 단편 소설

아내의 나무


아내가 죽자 유골함을 들고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형이 전화로 노발대발했다.

“너 이 새끼, 무슨 개수작이야? 치매 걸린 노인네 등쳐 먹으려고?”

나는 화가 치밀었다. 그게 자식 된 사람이 할 말인가? 어머니는 뭔가를 자주 잊곤 했지만, 사리 분별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형이 모시고 왔더라면 아내의 장례식에 못 오실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그 날, 어머니를 볼 수가 없었다. 형이 어머니와 나 사이를 의도적으로 떼어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재개발이 확정된 서울의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혼자 살고 계신다. 마을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됐으나 평생 그 마을에서 살아온 어머니는 못 나간다며 고집을 부렸다. 형은 아파트가 다 지어질 때까지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실 생각이었다. 당연히 새 아파트는 자기 소유라고 생각할 것이다. 난 어머니 재산 따윈 관심 없다.

화장터에서 아내의 유골함을 받은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리 내며 울었다. 급정거하는 앞차를 따라 브레이크를 깊게 밟은 직후였다. 조수석에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유골함이 혹여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운전하고 있었다. 유골함이 넘어지기 바로 직전까지 기울어지자,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울면서 유골함을 바로 세웠다. 아내는 죽어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앞으로 모든 게 변해버릴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집안에 남겨진 아내의 흔적을 지워야 할지, 남겨둬야 할지 생각하며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가 즐겨 신던 검은 색 단화가 보였다. 키가 컸던 아내가 나에게 키를 맞춘다며 신던 굽이 낮은 신발이었다. 아내는 자신의 키가 큰 게 잘못인 양 미안해했다. 그 순간 나는 이미 가슴 깊이 새겨진 것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녁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 수술만 잘 마치면 집 근처에 새로 문을 연 이탈리안 식당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사달라고 했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아내는 유골함에 담겨 집에 돌아왔다. 나는 현관에 서서 집안을 바라봤다. 그녀의 체취가 스며든 옷들이, 취향대로 사 모은 그릇들과 머그잔들이, 여행지에서 써 보낸 엽서들이 붙어 있는 액자가 나는 두려웠다. 유골함만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이라고는 내가 나고 자란 집, 어머니가 살고 계신 그 집밖에 없었다.


어머니 집에 들어서자 갑자기 개가 짖어댔다. 나는 멈칫했다. 전에 못 보던 하얀색 개였다.

“골목 끝에 상민이네 있잖니. 그 집이 나가면서 못 데려간다고 주고 간 개야.”

어머니가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손길에 개는 언제 짖었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그래도 얼마나 착한지 몰라. 집도 잘 지키고. 그 새끼들이 나타나면 잘도 짖어. 그런 나쁜 놈들은 다 쫓아버려야 해.”

‘그 새끼들’은 아마 재개발 조합에서 보낸 사람들일 것이다. 이 골목에 살던 사람들은 이미 다 이주를 마친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을에는 아직도 어머니처럼 이주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더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어머니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며칠 후, 시장에서 큼지막한 수박 한 통을 사 왔다. 어릴 적 툇마루에 앉아 수박씨를 누가 멀리 뱉나 형과 시합했던 생각이 났다. 형을 이기고 싶은 마음에 수박을 한껏 먹고는 씨를 많이 모아 놨다가 입안에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나는 기관총처럼 씨앗을 뱉었지만, 저격수처럼 한발씩 툭툭 쏘는 형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자다가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서 어머니한테 혼났다. 날이 밝자 이웃에 소금을 받으러 다녀야 했다.

나는 혼자 툇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예전처럼 씨를 마당에 뱉어 댔다. 그러다 장난기가 솟아 마당 한 켠 개집에 묶여 있는 흰 개를 맞히기로 했다. 내가 그러든 말든 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자 흰 개의 등에 까만 점이 몇 개 생겼다. 개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재미가 없었다. 나는 다 먹은 수박 껍질을 집어 개를 향해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워있던 개는 깜짝 놀라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짖었다. 그 바람에 등에 묻어 있던 수박씨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날 밤, 어머니는 일찍 잠이 들었고 나는 거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디선가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이 번쩍 떠졌다. 마감 뉴스에서 앞으로 며칠간 서울 밤하늘에 유성우가 떨어질 거라고 전했다.

“별똥별이 사라지기 전까지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비슷해 여자 앵커를 잠결에 아내로 착각했다. 텔레비전 옆 책장에 고이 모셔둔 아내의 유골함이 보였다. 아내의 이름과 태어난 날, 그리고 죽은 날이 적혀 있었다.

‘여기가 서울에서 밤이 가장 어두운 집이니까 유성우를 볼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헛된 상상인 줄 알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밤마다 툇마루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미친놈’ 한 마디만 던지시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날아드는 모기를 피하려고 곳곳에 모기향을 피웠다. 매캐한 공기 때문에 눈과 코가 따가웠다. 처음엔 개도 모기향 냄새가 싫었는지 계속 짖어대더니 지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졸려서 저절로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또 부릅뜨며 잠을 쫓아냈다.

새벽이 되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간간이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도 멈췄다. 세상에 움직이는 것들이 모두 멈춰 선 것 같은 적막함이었다. 그때 별똥별이 한 개 떨어졌다. 그렇다. 우주는 한 번도 움직임을 멈춘 적이 없다. 그 불빛이 내 눈 안으로 들어와 심장까지 전달되어 전기 충격을 가한 것 같았다. 가슴에 손을 얹어도 심장 박동이 진정되지 않았다. 빨리 말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별들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 한쪽 구석에서 다시 한번 번쩍했다.

“아내를 다시 살려주세요.”

빛의 꼬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내던진 말이 허공을 갈랐다. 분명 내 말이 더 빨랐지만,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내가 정말 더 빨랐을까? 혹시 느렸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어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졸음을 내쫓으며 한참을 기다리니 다시 기회가 왔다.

“아내를 만나게 해주세요.”

재빨리 내뱉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빛 꼬리가 사라졌다. 이번에도 의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둘 중 한 번은 성공했겠다는 안도감도 찾아왔다. 나는 끊임없이 감기는 눈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잠이 들었다. 우주는 계속 움직여 아침이 되었다.


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곧바로 개가 짖어댔다. 형이 들어왔다. 형은 자신을 향해 으르렁대는 개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발길질하는 시늉을 했다.

“뭐야, 이 개새끼는.”

형이 위협하는 모습에 대항하듯이 개는 계속 짖어댔다. 집 안에 있던 어머니는 재건축 조합에서 보낸 사람들이 또 온 줄 알고 문을 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리 썩 꺼져, 이 새끼들아. 난 죽어도 안 나가.”

“엄마, 나야, 큰아들. 안 나가긴 왜 안 나가요. 다 쓰러져가는 이 집에서 정말 죽으려고요? 우리 집으로 어서 가자니까. 엄마 손자 민석이 안 보고 싶어요? 우리 집에서 그냥 편하게 살아요.”

형은 툇마루에 누워있는 나를 벌레 보듯이 훑어보더니 신발을 벗고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따라 들어갔다.

“엄마가 안 간다고 하잖아.”

“넌 빠져, 이 새끼야.”

형은 뒤돌아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형은 이번에는 꼭 어머니를 모셔가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것 같았다.

“엄마, 빨리 짐 챙겨요. 민석이랑 민석 애미도 같이 왔어요. 밖에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요.”

형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의 팔을 잡고 끌다시피 데리고 나왔다.

“누군데 왜 그래요?”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형뿐만 아니라 나도 당황했다. 어머니 상태가 갑자기 이렇게 안 좋아진다고?

“저요. 엄마 큰아들이요.”

“거짓말하지 마, 이놈아. 그놈들이 보낸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어머니가 형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어머니를 방 밖으로 끌고 나왔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나서 형에게 달려들었다.

“엄마는 안 간다고 하잖아.”

“넌 빠지라고 새끼야.”

형은 나를 밀쳐서 넘어뜨렸다. 나는 거실 텔레비전 앞까지 굴러 넘어졌다. 엄마는 내 걱정이 되었는지 얼른 방 밖으로 달려 나왔다.

“이 못된 자식아, 너는 부모 형제도 없냐? 어디 와서 난동을 부려 이 썩어 죽을 놈아. 난 죽어도 꼭 내 집에서 죽을 테니까 알아서들 해.”

형은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마당에 있던 흰 개가 목줄이 풀린 채 형에게 달려들었다. 의외의 기습에 형은 개에게 다리를 물렸다. 일순간에 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잡고 있던 어머니의 팔을 놓치고는 마구 짖어대는 개와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흰 개는 다시 달려들다가 형의 발길질에 정통으로 맞아 나가떨어졌다. 그런데 개가 쓰러진 곳이 하필이면 아내의 유골함이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유골함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아내의 유골이 사방에 흩어져버렸다. 그중 일부가 쓰러진 개의 털에 묻어 버렸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되는대로 유골을 손으로 쓸어모았다. 내가 금세라도 죽일듯한 눈빛으로 째려보자 형도 당황하는 것 같았다. 형은 개에 물린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당으로 뒷걸음을 쳤다.

“내가 그런 거 아니다. 저 개새끼 때문이야, 어? 내 잘못 아니라고.”

어머니는 그런 형에게 소리쳤다.

“썩 꺼지지 못해, 이 개만도 못한 자식아. 아이고 이를 어째.”

대문 밖으로 나가던 형은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다음에 또 모시러 올 거예요. 아무리 고집부려도 결국은 나갈 수밖에 없어요.”

어머니는 형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이리저리 흩어져버린 유골함 파편들을 모았다.

“다 깨져버렸으니, 이제 어쩌나.”

이게 둘째 며느리의 유골함이라는 사실을 어머니가 아는지 모르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별수 없죠.”

기왕 이렇게 된 거 아내의 유골을 마당 한 켠 땅을 파서 묻기로 했다. 내가 나고 자란 땅에 아내를 묻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착잡한 마음으로 삽으로 땅을 팠다.

“은정아, 미안해.”

아내의 유골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과 함께 아내를 마당에 묻었다. 이제 나에게도 이 집에서 절대로 나갈 수 없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아내를 묻은 다음 날, 온종일 제법 많은 비가 왔다. 나는 스산한 기운이 올라오는 툇마루에 앉아 아내의 유골이 묻힌 곳을 바라봤다. 개는 형에게 맞은 곳이 불편한 지 자기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개집까지 걸어가 밥을 안으로 넣었다. 종일 아내의 무덤을 보다가 문득 뭔가 달라진 걸 깨달았다. 어제 덮은 흙 위로 초록색 싹이 돋아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에 힘을 주고 쳐다봤다. 정말 새싹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맨발로 그 앞까지 갔다. 그 싹은 내가 보고 있는 와중에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전에 뱉어 버린 수박씨가 흙에 섞여들어 있었나?’

“아니지. 아무리 수박이라도 이렇게 빨리 자랄 순 없어.”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정체 모를 그 식물은 점점 굵어지더니 초록색 줄기가 갈색으로 바뀌었다. 가지에서 감나무 잎을 닮은 진한 초록색 잎도 자라났다. 수박이 아닌 게 확실해졌다. 이건 분명히 나무였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빗줄기가 점점 약해졌다. 아내의 무덤에서 자라난 나무는 하루 만에 키가 일 미터 정도 되었고 옆으로 뻗은 가지가 개집에 닿을락 말락 했다. 밤이 깊어지자 비가 그쳤고, 나무가 자라는 것도 멈춘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마당으로 나간 나는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개집에서 어제 본 초록색 싹이 돋아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내의 무덤에서 자라난 나무가 나무로 만든 개집과 서로 연결됐다. 마치 서로 접붙인 나무들처럼. 죽은 나무가 다시 살아나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개도 자기 집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주변을 돌며 낑낑거렸다. 그때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나와서 개집 앞에 놓았다. 어머니는 이 놀라운 광경을 보지 못한 듯했다.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어머니를 불러서 보여드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이 정체 모를 나무가 아내의 무덤에서 싹을 틔웠기 때문에 아내의 나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내의 나무는 어제 종일 자란 것에 비해서 밤새 별로 자라지 않았다. 어제는 종일 비가 내리다가 밤에 그쳤으니 자라려면 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정아, 화장터에서 너무 뜨거워서 목말랐지? 내가 물 줄게.’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힘껏 돌려서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았다. 대야를 들자 물이 첨벙거려 옷이 젖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의 나무에 물을 주었다. 그러자 개집에서 돋아난 싹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자라는 싹을 보며 문득 화장터 화로에 들어가던 관이 떠올랐다. 그 안에 아내가 누워있다.

‘은정이가, 우리 은정이가 목이 말랐구나.’

어느덧 개집의 새싹들도 갈색 줄기로 바뀌더니 잎이 돋아났다. 가지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개집 출입구가 가지들로 막힐 것 같아서 집 안에 있던 개를 밖으로 끌어내야만 했다. 새로 돋아난 많은 가지 중 한 개가 툇마루 쪽으로 손을 내뻗기 시작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더위가 한풀 꺾이며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흙냄새가 실려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요하던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어딘가에서 시커먼 연기가 용오름처럼 하늘로 치솟더니 곧 탄 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마을 어귀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재개발 이주가 끝난 마을에는 잘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보일러 같이 떼어 나가기 곤란한 것들을 노리고 오는 좀도둑도 있다고 한다. 골목마다 함부로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수북이 쌓였다.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는 쓰레기가 꽁초에 불붙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뉴스 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이 마을에서 불이 났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곳은 없었다.

비가 오지 않자 아내의 나무도 성장을 멈췄다. 물을 줘야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물주기를 망설였다. 아내의 나무는 곧 툇마루까지 연결해 버릴 기세였다. 툇마루가 연결되면 나무는 순식간에 집안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내의 나무를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뉘 집 감나무이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감나무가 아니라고 말했다.

“누굴 바보로 아나, 이파리를 딱 보아하니 감나무만. 근데 댁은 누구요?”

이제 어머니가 나까지 알아보지 못했다. 형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했지만, 무척 빨랐다. 나는 당황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둘째 아들이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마른 입에서 침을 모아 삼키고는 차남이라고 말했다.

“이름이 차남이야? 우리 차남씨, 매일 우리 개한테 잘해줘서 고마워.”

어머니가 내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며칠 뒤, 아내 목소리를 닮은 여자 앵커가 한반도를 향해 초대형 태풍이 올라온다는 뉴스를 전했다. 폭우가 예상되므로 상습 침수 지역 주민들은 대피해야 한다고 한다. 이 동네는 지대가 높아 침수 걱정은 없지만, 폭우란 말에 나는 가슴이 벌렁거렸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어 버리자, 대낮인데도 빛을 한점도 찾을 수 없었다. 비는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내렸다.

첫날엔 아내의 나무가 팔을 길게 뻗어 결국 툇마루와 연결되더니 툇마루에서 싹이 돋았다. 개집 문이 가지에 막혀 버려서 흰 개는 툇마루 밑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나는 내리는 비를 멍하니 쳐다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튿날, 툇마루 싹이 갈색 줄기로 크게 자라나더니 거실로 들어오는 문과 연결되었다. 오후가 되자 거실로 가지를 뻗어 유골함이 놓여 있던 책장과 연결되었다. 다행히 가지가 아래로 뻗지 않아서 툇마루 밑에 있던 개는 두 번째 보금자리를 잃지 않았다.

셋째 날에는 책장에서도 싹이 돋아나고 여러 줄기가 집 안 구석구석으로 뻗어 연결될 나무들을 찾아다녔다. 어머니가 계신 안방 장롱까지 연결되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마련해온 자개가 박힌 오래된 장롱이었다. 어머니는 누워 계시다가 장롱에서 싹이 돋아난 것을 보시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뉘 집 감나무가 집안까지 들어왔어?”

한바탕 비를 쏟아낸 태풍이 사그라지자 그 위에 숨어 있던 청명한 가을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의 나무에서 줄기가 곳곳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있어 집안이 마치 정글 같았다. 나무줄기를 피하려면 허리를 숙이거나 큰 보폭으로 넘어야 했다. 다음에 또 비가 오면 이제 담장을 넘어 옆집까지 연결될까 두려웠다. 나는 차마 아내의 나무를 톱으로 자르거나 불로 태울 수 없었다. 아내를 불 속에서 두 번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집안에서조차 돌아다니기가 불편해지자 주로 안방에 누워 계셨다. 나들이 다니기 좋은 날씨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좀처럼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말수도 줄었다. 어머니가 걱정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머니 밥상을 차리는 것과 개밥 주는 일을 거드는 정도였다.

또 비가 오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갈 길이 막혀 버릴 것 같아 걱정되었다. 나는 아직 아내의 나무와 연결되지 않은 화장실 문짝을 뜯어냈다. 여차하면 화장실로 피신할 계획이었다. 화장실 내부를 휙 둘러보았다. 벽은 타일로 되어 있으니 걱정 없었다. 그러나 창틀이 나무로 된 것을 깨달았다. 커다란 장도리로 창틀도 다 뜯어내고 비닐로 막아 놨다. 노동을 막 끝내고 나니 이마에 땀이 흘렀다. 거실의 굵은 나무줄기에 앉아서 손으로 땀을 닦으며 물을 마셨다. 입꼬리를 타고 물이 떨어질까 봐 조심스레 마셨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아내가 환생한 것이 맞긴 할까? 별똥별이 내 소원을 정말 들어준 걸까? 아내는 언제까지 자라는 걸까? 나는 그 어떤 물음에도 답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방에서 구부정하게 앉아 밥을 먹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차남씨, 일로 와서 저것 좀 봐.”

어머니는 담요 위에 앉아 떨리는 손가락으로 장롱을 가리켰다.

“감나무꽃은 저렇게 안 생겼는데. 색깔도 야시시해.”

장롱 가운데 문짝에서 검붉은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줄기와 잎들을 헤치고 가까이서 보니 마치 장미꽃봉오리처럼 생겼는데 크기가 내 머리만큼 컸다. 아내의 나무에 물을 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자라난 건지 모르겠다.

이튿날 새벽녘에 기습적으로 비가 내렸다. 빗소리에 나는 번쩍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어머니 방으로 향했다. 거실의 불을 켰으나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과 냉기로 가득 찬 거실에서 나무줄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으며 한 발자국씩 움직였다. 그러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잠시 후, 이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소매로 이마를 대충 훑어내고 다시 어머니 방으로 향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여 희미하게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사람보다 큰 꽃이었다. 주무시고 계신 어머니 바로 위에 만개한 꽃이 잎을 쫙 벌리고 있었다. 꽃 중앙의 암술대가 어머니 가슴에 닿아 마치 핥는 것처럼 움직였다. 암술대가 어머니 밑으로 파고들어 허리를 휘감더니 순식간에 꽃이 어머니를 집어삼켜 버렸다. 어떻게 손 쓸 틈도 없이 어머니는 꽃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만개했던 꽃잎이 다시 봉오리 상태로 돌아갔다. 나는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꽃 속을 파헤치려고 했으나 꽃잎에서 분비된 점액질 액체 때문에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꽃잎은 찢을 수도 떼버릴 수도 없었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비가 그치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연장이 담긴 서랍장에서 접이식 톱을 꺼냈다.


꽃봉오리가 달린 줄기를 자르려고 톱질을 시작했다. 손으로 만질 때는 다른 나무줄기와 다를 바 없는데, 톱질만 시작하면 쇠처럼 단단해졌다. 장롱을 부숴버리려고 톱질과 망치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톱날이 다 나가버렸다. 다음으로 라이터를 꺼내서 종이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아내의 나무에 갖다 대 봤지만 검게 그을기만 할 뿐 불이 붙지 않았다. 나는 실의에 빠진 체 툇마루에 털썩 앉아 버렸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내 옆에 흰 개가 나란히 앉았다.

이튿날이 되자 꽃잎이 생기를 잃고 푸석푸석해졌다. 미끄러운 점액도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꽃잎을 떼어내려고 잡아 뜯었으나 여전히 불가능했다. 그다음 날, 꽃잎이 저절로 떨어졌다. 한 장 두 장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우수수 다 떨어졌다. 꽃봉오리 속에는 커다란 짐볼 만한 연두색 열매가 있었다.

‘저 안에 어머니가 있으리라.’

나는 칼로, 망치로 열매를 열어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이번에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을 뿌려댔다. 하지만 아내의 나무는 이제 자라지 않았다.


그다음 날 새벽에 개가 요란하게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조심스레 툇마루에 나와서 흰 개가 짖고 있는 마당 저편을 보니 희미하게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반쯤 감긴 눈을 비비고 고쳐 보니 젊은 여자가 발가벗은 채 서 있었다. 여자는 이제 막 물속에서 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젖어 있었다. 젖은 머리칼이 봉긋한 두 가슴 옆에 붙어 있었고, 몸 중앙에 음모도 풍성했다. 어머니 방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 연두색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으깨어져 있었다. 분명히 열매로부터 나온 사람 같은데,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내도 아니었다. 나는 이불을 가져와 여자의 몸을 감싸고 욕실로 데려갔다. 나는 여자에게 이것저것 물었으나 알아듣지도, 말도 하지 못했다. 여자는 추워서 떨고 있었는데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받아 여자를 씻겼다. 내 손이 그녀의 얼굴과 가슴, 엉덩이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아내 생각이 났다. 우리는 이따금 욕조에 같이 몸을 담그고 서로의 몸을 씻겨주곤 했다. 목욕이 끝나자, 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말리고 어머니의 옷을 찾아 입혀 주었다. 그녀는 순순히 내가 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어머니 방에 떨어진 열매를 치우고 다시 이부자리를 깔아 주었다. 동녘이 밝아 올 때까지 여자를 어머니 방에 머물게 했다.

어머니일지도, 아니면 환생할 아내일지 모른다. 그냥 아무도 아닐지도 모른다. 여자를 씻길 때 만져본 몸은 풍만하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여자를 품고 싶은 욕정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고뇌와 번민에 휩싸였다. 어머니일까? 아내일까?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아, 잠깐. 아까 그 개. 개가 여자를 향해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깨지 않았던가. 개는 어머니를 향해 짖지 않는다. 맨날 자기에게 밥을 주는 주인을 향해 짖는 일은 본 적이 없다. 아내는 그 개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개가 낯선 사람한테 짖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나 형이 이 집에 처음 발을 디딜 때도 짖지 않았던가? 정말 아내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아내는 유골에서 싹틔운 나무로 시작해서 어머니의 몸을 빌려 살아 돌아온 것이다.

여자는 밥상에 차린 밥은 먹지 않았지만, 컵에 담긴 물은 잘 마셨다. 젊은 여자가 여든 살 할머니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가, 나, 다 하고 천천히 말하니, 여자가 따라서 발음했다. 가르치면 여자도 말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놓인다. 여자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옷을 입은 채로 오줌을 싸버렸다. 기껏 씻겨 놨더니 다시 씻겨야 해서 화가 났지만, 물도 마시고 오줌도 싸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안심했다. 여자를 다시 욕실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씻겼다. 밤이 되자 여자는 하품도 했다. 오줌이 묻은 이부자리는 빨아서 마당의 나무줄기에 널어놨다. 여자를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함께 자리에 누우니 나는 여자를 품고 싶은 욕정이 다시 살아났다. 너무 오랫동안 여자의 살결을 잊고 살았다. 나는 슬며시 여자의 옷을 걷어 올리고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 여자는 싫은 내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호의를 보이지도 않았다. 여자의 한쪽 손을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내 음경으로 가져갔다. 음경을 감싸 쥔 여자의 손이 따뜻했다. 나는 여자의 팬티를 벗기고 음모가 무성한 음부를 손으로 애무했다. 동시에 여자의 목덜미를 핥고 또 얼굴을 핥았다. 나는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여자의 몸 구석구석을 탐닉했다. 여자의 음부가 뜨겁게 젖는 것을 느끼자, 나는 몹시 기뻤다. 그러던 중 내 방 책상에 열린 커다란 꽃봉오리가 시선에 들어왔다. 검붉은 색 꽃봉오리가 다시 맺히다니. 어머니가 꽃에 삼켜지는 장면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이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여자는 아내일까? 어머니일까? 나는 여자의 몸에서 내려왔다. 잔뜩 발기했던 음경이 줄어들며 여자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여자가 잠든 사이 나는 옆에 누워서 한참 동안 꽃봉오리를 바라봤다. 어머니를 집어삼켰던 그 꽃봉오리와 똑같이 생겼다. 나는 왜 아내의 나무에서 두 번째 꽃이 피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두 번 빌었다는 사실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직감적으로 이번에는 내가 꽃에 삼켜질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눈을 뜨면 내가 어머니의 차남이라는 인식은 사라지고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나는 눈을 딱 감고 꽃봉오리 아래 누웠다. 어느덧 꽃이 내 위에서 만개했다. 곧 암술대가 내 허리를 감싸더니 나를 천천히 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에필로그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아까부터 의아한 듯 백미러를 계속 쳐다보더니 차를 멈추라고 한다. 흰 개 한 마리가 자꾸 따라온다고 말했다. 나는 갓길에 정차한 후, 차에서 내렸다. 흰 개는 미친 듯이 달려와서 마치 내가 자기 주인이라도 되는 양 내 다리에 등을 비벼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어느 날 밤, 아내 목소리를 닮은 여자 앵커가 뉴스를 전했다. 서울의 모 재개발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주민들의 이주가 끝나서 집들이 모두 비어있고, 골목이 좁아 소방차의 접근이 어려워 화재에 더욱 취약하다고 말했다. 자료화면으로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불을 끄는 장면이 나왔다. 나무가 아주 많은 어느 집이 타고 있었다. ‘관리를 얼마나 안 했으면 나무가 저렇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나.’ 화면에 잠깐 비친 구경꾼 중엔 어딘지 익숙해 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잡고 서 있었다. 누군지 생각해내려고 해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젠가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누에고치 안의 나비가 되어 잠을 잤다. 내 옆에 아내도 같이 잠들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누에고치 등이 갈라지고 나비가 되어 나올 찰나, 나는 꿈속에서 빠져나왔다. 긴 잠에서 깨어나니 우리 둘 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탄탄한 근육과 탄력 있는 피부, 나는 온몸에 힘이 넘쳤다. 아내와 나는 밤마다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전생에서도 서로를 알아보고 이렇게 사랑했을 것이다. 아마 부부였을지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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